강태준은 그 노트를 발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가장 아끼는 백금 커프스링크를 찾기 위해 부부 공동 옷장 뒤편을 뒤지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차서윤의 겨울 부츠 뒤에 숨겨진 신발 상자 속 가죽 표지 다이어리에 스쳤다. 서윤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다이어리는 언제나 밝은 색이었고, 건축 스케치로 가득했다. 이건 평범한 검은색이었다. 그에게는 좀처럼 들지 않는 감정인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것을 열었다.
첫 페이지에는 서윤의 단정하고 깔끔한 글씨체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100점짜리 이혼 계획서’.
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아래에 적힌 규칙들을 읽었다.
시작 점수: 100점.
이 결혼이 실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점수를 차감한다.
점수가 0점이 되면, 예외 없이 이혼 서류를 제출한다.
그는 짧고 의미 없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장난. 아내가 하는 유치한 장난일 터였다. 그는 페이지를 넘겼다. 각 항목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고, 그의 소위 ‘잘못’들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1점: 그가 또 우리 결혼기념일을 잊었다. 그는 한아리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2점: 한아리의 개가 아프다는 이유로 우리 휴가를 취소했다. 그는 주말 내내 그녀의 아파트에서 보냈다.
-1점: 그가 나를 실수로 ‘아리야’라고 불렀다.
-3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빈티지 와인 마지막 한 병을 사서는, 한아리의 생일 선물로 줘버렸다.
목록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계속되었다. 그의 무관심에 대한 상세하고 고통스러운 연대기였다. 태준은 죄책감이 아닌,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실패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차서윤이 자신의 오랜 친구인 한아리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증거로 여겼다. 한아리는 그의 첫사랑이었고, 몇 년 전 그녀가 떠났을 때 그를 산산조각 냈던 여자였다.
서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서둘러 서윤과 결혼했다. 좋은 집안 출신의, 편리하고 안정적인 선택지. 그가 커리어에 집중하고, 솔직히 말해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는 동안 태강 그룹의 안주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여자.
그는 노트를 닫았다. 그의 짜증은 얼음장 같은 무관심으로 굳어졌다. 그는 그것을 상자 안에 다시 던져 넣었다. 어처구니없고 유치한 목록.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커프스링크를 찾아 옷장 문을 닫았고, 노트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서류 가방 안에는 한아리를 위해 특별 주문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갤러리 그랜드 오프닝이었고, 그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그는 거실로 걸어 나왔다. 서윤은 소파에 앉아 커다란 패드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고, 집중하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깃든 희미한 희망의 빛을 그는 오래전에 알아채지 못하게 되었다.
“일찍 왔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곧 다시 나가봐야 해.”
그는 넥타이를 풀며 대답했다.
“아리 갤러리 오프닝이야.”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아. 맞다.”
그는 커피 테이블 위에 놓인 다른 노트, 그녀의 스케치북 중 하나를 보았다. 펼쳐진 페이지를 힐끗 쳐다보았다.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한 아기 방 그림이었다. 아기 침대, 작은 별들이 달린 모빌, 흔들의자. 그는 가슴에 이상한 통증,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감정을 느꼈다. 그들은 1년 넘게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해왔다.
“클라이언트 일이야?”
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윤은 재빨리 스케치북을 닫았다.
“그냥 아이디어 스케치예요.”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그의 마음은 온통 한아리에게 가 있었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슬슬 떠나야 했다. 그는 가장 먼저 그곳에 도착해서, 목걸이를 본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가 그들 사이에 말없는 벽처럼 서 있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가장 친한 친구인 민혁이었다.
“태준아! 뉴스 켜봐! 지금 당장!”
민혁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태준은 리모컨을 움켜쥐고 텔레비전을 켰다. 생방송 뉴스 화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건물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밤하늘로 솟구쳤다. 기자의 목소리는 긴박했다.
“소방대원들이 시내에 새로 문을 연 한아리 갤러리 현장에 출동해 있습니다. 그랜드 오프닝을 불과 한 시간 앞두고 대형 화재가 발생했으며…”
태준의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한아리.
세상은 그 단 하나의 생각으로 좁혀졌다. 그는 차 키와 코트를 움켜쥐고 서윤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을 떠나가는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어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그는 보지 못했다.
서윤은 그를 따라나섰다. 왜 그랬는지 자신도 몰랐다. 절박하고 어리석은 어떤 마음 한구석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녀는 핸들을 꽉 쥔 채, 심장이 갈비뼈에 병적으로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도시를 가로질러 운전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경찰 통제선, 번쩍이는 불빛, 불길의 굉음. 태준은 차를 버려둔 채 소방관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극도의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리가 안에 있어요! 내가 구해야 해요!”
태준은 소방관을 밀치며 소리쳤다.
“선생님, 너무 위험합니다! 건물이 붕괴 직전이에요!”
소방관이 맞서 소리쳤다.
“상관없어! 그녀가 갇혔다고!”
민혁이 그를 말리려 애쓰고 있었다.
“태준아, 진정해! 구조대가 구할 거야!”
“너무 느려!”
태준의 목소리는 서윤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절박함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절대로. 그는 불타는 건물을 마치 자신의 온 세상이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서윤은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민혁을 밀치고 입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손!”
그의 팔을 붙잡는 소방관에게 그가 절규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나 강태준이야! 이 손이 수십억짜리 보험에 들어있다고! 기적을 만드는 손이야! 하지만 난 이 손을, 내 커리어 전부를 포기할 수 있어, 그녀가 안전하다는 것만 알 수 있다면! 이거 놔!”
그것은 선언이었다. 고백이었다. 너무나 잔인해서 물리적인 타격처럼 느껴지는 진실이었다.
그때 민혁이 어둠 속에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서윤을 발견했다. 그는 경악했다.
“서윤 씨… 저기…”
서윤은 민혁의 아내 지수가 그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맙소사, 오빠. 쟤 고등학교 때부터 한아리한테 미쳐있었잖아. 난 차서윤이랑 결혼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더 심해졌네.”
지수의 말은 모든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었다.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였다. 자신은 그저 장애물일 뿐이었다. 뒷전이었다.
3년 동안, 그녀는 노력했다. 언젠가 그가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며 가진 모든 것을 다해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들의 집을 꾸몄고, 그의 사교 활동을 관리했으며, 긴 수술 후에 그를 위로했고, 그의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결국 그의 오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믿었다.
그것은 그녀가 스스로에게 한 거짓말이었다. 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놓쳐버린 모든 결혼기념일, 취소된 모든 계획, 그녀를 마치 투명 인간처럼 꿰뚫어 보던 모든 순간에.
100점짜리 계획서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줄이었다. 서서히 피 흘리며 죽어가는 자신의 사랑을 수치화하는 방법이었다. 자신을 텅 비게 만드는 결혼 생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결승선, 비상 탈출구를 스스로에게 주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다른 여자를 위해 기꺼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그를 보며, 그녀는 그 점수들이 거대한 덩어리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군중 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태준이 연기 속에서 한아리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 그녀는 의식이 있었고, 기침을 했지만, 그 외에는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안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구급차까지 그녀를 옮기며,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말들을 속삭였다.
그는 단 한 번도 서윤을 찾지 않았다.
한아리가 구급대원들에게 안전하게 인계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태준의 몸은 마침내 무너졌다. 아드레날린이 사라지자, 그는 연기 흡입으로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병원의 살균된 하얀 대기실에서, 서윤의 마음은 과거로 흘러갔다. 그녀는 그를 처음 만났던 자선 갈라를 떠올렸다. 그는 그녀가 본 남자 중 가장 똑똑하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막강한 태강 그룹의 천재 신경외과 의사. 유망한 젊은 건축가였던 그녀는 대담했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한아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6개월 후 그가 청혼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헌신이 마침내 그의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고 생각했다.
그 환상은 결혼 1년 만에 산산조각 났다. 한 파티에서, 그녀는 술에 취해 입이 가벼워진 태준의 친구 중 한 명이 누군가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태준이 쟤, 한아리가 결혼하니까 그냥 결혼한 거야. 정신 팔 데도 필요하고, 집안 만족시킬 아내도 필요했거든. 저 불쌍한 여자는 쟤가 진짜 자길 사랑하는 줄 알잖아.”
그날은 한아리가 그녀의 마음에 박힌 가시가 된 날, 그녀의 결혼 생활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존재가 된 날이었다. 그날 그녀는 밖으로 나가 평범한 검은색 일기장을 샀다.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자기 보존 행위였다.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질 때까지 그것을 측정하는 방법이었다.
1년 전 한아리가 이혼 후 서울로 돌아오면서 모든 것이 가속화되었다. 그녀의 목록에 있는 점수들은 무서운 속도로 사라졌다. 한때 희망으로 가득 찼던 그녀의 심장은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 의사가 그녀에게 다가와 생각에 잠긴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
“차서윤 씨? 남편분은 안정적이십니다. 연기를 많이 마셨지만 괜찮을 겁니다. 한아리 씨도 괜찮고요, 그냥 긁힌 상처 몇 군데뿐입니다.”
민혁과 지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서윤 씨, 쟤 정신 차릴 거예요.”
지수가 그녀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태강 그룹에서 서윤 씨한테 잘하도록 확실히 할 거예요.”
서윤은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어서서 그들을 뒤로한 채 대기실을 걸어 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고요하고 텅 빈 집에서, 그녀는 옷장으로 걸어가 검은색 일기장을 꺼냈다. 그녀는 마지막 항목이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5점: 그는 그녀를 위해 불타는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10점: 그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펜 뚜껑을 열었다. 그녀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10점: 그는 그녀를 구한 후 쓰러졌고, 그의 처음과 마지막 생각은 내가 아닌 그녀였다.
그녀는 계산을 했다. 이제 몇 점 남지 않았다. 아주 조금.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