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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서른네 번째 우연한 배신

그의 서른네 번째 우연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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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자, 강남 최고의 외과 의사인 그는 언제나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줬다. 우리의 결혼식이 서른세 번이나 미뤄진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병원에서 그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그는 내게 일어난 서른세 번의 ‘사고’가 모두 자신의 짓이라고 고백했다. 새로 들어온 레지던트, 윤채아를 사랑하게 됐고, 집안의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나와 결혼할 수는 없었다고. 그의 잔혹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채아가 내게 뺨을 맞았다며 연기했을 때, 그는 나를 침대로 거칠게 밀치며 미친 여자 취급했다. 그녀가 옥상에서 자살 소동을 벌였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구하러 달려갔다. 그리고 난간 끝에서 떨어지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가 병상에 식물처럼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내게 벌을 내렸다. 교도소의 엄마를 사람을 시켜 폭행했다. 엄마는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장례식 날, 그는 윤채아와 콘서트를 보러 갔다. 나는 그의 약혼자였다. 우리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두 집안은 우리를 그렇게 엮었다. 그런데 그는 고작 얼마 전에 만난 여자 때문에 내 몸과, 엄마와, 내 목소리까지 전부 망가뜨렸다. 마침내 그는 사랑하는 여자, 윤채아의 손에 내 목 수술을 맡겼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내 성대를 망가뜨렸고, 내가 다시는 노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목소리를 잃고 망가진 채로 깨어났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승리감에 찬 미소를 보고서야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나는 유심칩을 부러뜨리고 병원을 걸어 나왔다. 모든 것을 버렸다. 그는 내 목소리를 빼앗았지만, 내 남은 인생까지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목차

제1화

내 약혼자, 강남 최고의 외과 의사인 그는 언제나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줬다.

우리의 결혼식이 서른세 번이나 미뤄진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병원에서 그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그는 내게 일어난 서른세 번의 ‘사고’가 모두 자신의 짓이라고 고백했다.

새로 들어온 레지던트, 윤채아를 사랑하게 됐고, 집안의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나와 결혼할 수는 없었다고.

그의 잔혹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채아가 내게 뺨을 맞았다며 연기했을 때, 그는 나를 침대로 거칠게 밀치며 미친 여자 취급했다.

그녀가 옥상에서 자살 소동을 벌였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구하러 달려갔다.

그리고 난간 끝에서 떨어지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가 병상에 식물처럼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내게 벌을 내렸다.

교도소의 엄마를 사람을 시켜 폭행했다. 엄마는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장례식 날, 그는 윤채아와 콘서트를 보러 갔다.

나는 그의 약혼자였다.

우리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두 집안은 우리를 그렇게 엮었다.

그런데 그는 고작 얼마 전에 만난 여자 때문에 내 몸과, 엄마와, 내 목소리까지 전부 망가뜨렸다.

마침내 그는 사랑하는 여자, 윤채아의 손에 내 목 수술을 맡겼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내 성대를 망가뜨렸고, 내가 다시는 노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목소리를 잃고 망가진 채로 깨어났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승리감에 찬 미소를 보고서야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나는 유심칩을 부러뜨리고 병원을 걸어 나왔다. 모든 것을 버렸다.

그는 내 목소리를 빼앗았지만, 내 남은 인생까지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제1화

내 서른네 번째 결혼식이 바로 내일이었다.

그리고 서른네 번째로 결혼식이 연기된 날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계단에서 굴러 다리가 부러졌고, 두 번째는 샹들리에가 떨어져 뇌진탕에 걸렸다. 세 번째는 식중독. 그런 식이었다.

매번 ‘사고’였다.

매번 나는 병원에 실려 갔고, 결혼식은 취소됐다.

새하얀 병실 침대에 누워 있자니, 온몸에 남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쇠약해져서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혀를 차며 내 불운을 수군거렸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갈비뼈에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들었다.

그저 물 한 잔 마시고 싶었을 뿐인데.

지극히 평범한 이 행동조차 지금의 나에겐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힘든 일이었다.

내 약혼자, 강주혁.

그는 강남 최고의 실력을 가진 외과 의사였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줬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조용한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걷다가, 외진 발코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그중 하나는 주혁의 목소리였다.

나는 복도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강주혁, 너 진심이야? 또 ‘사고’를 냈다고?”

그의 친구이자 동료 의사인 듯했다.

“이게 벌써 서른세 번째야. 결혼식 직전에 이현 씨가 다치는 거.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 안 해?”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벽을 짚으려던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번. 그는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주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내게 늘 보여주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나 걔랑 결혼 못 해.”

“그럼 그냥 파혼해! 왜 자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데? 지난번엔 진짜 죽을 뻔했잖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주혁의 목소리엔 짜증이 가득했다.

“우리 집안이 걔한테 빚을 졌어. 아버지가 이현이 아버지 인생을 망쳤고, 우린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이 결혼이 그 책임이야.”

책임. 사랑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애써 외면했던 진실이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그 책임을 사람을 고문하는 걸로 갚겠다고?”

친구가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주혁이 쏘아붙였다.

“하지만 상관없어. 거리만 유지하면 돼. 특히 채아랑은.”

윤채아. 새로 온 레지던트. 그가 직접 지도하는 후배.

그가 한때 직업적인 자부심으로 착각했던 부드러운 목소리로 언급하던 그 이름.

“너 걔 사랑하는 거지?”

주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그의 고백이었다.

“사랑하면 안 되지.”

그의 말은 내게 내리꽂히는 마지막 일격이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히고 복도가 기울기 시작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시야가 흐려졌다.

나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달렸다.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안전한 내 병실로 돌아왔다.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얇은 매트리스는 충격을 거의 흡수하지 못했다.

서른세 번의 사고.

내 콘서트장의 불량 조명. 내 차의 브레이크 고장. 수영도 못 하는 나를 수영장으로 ‘실수로’ 밀었던 일.

전부. 전부 그의 짓이었다.

단지 나와 결혼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 재단, 우성 재단의 황태자 강주혁이었다.

나는 인디 뮤지션 서이현. 돌아가신 아버지는 한때 천재 외과 의사였다.

아버지는 주혁의 아버지가 저지른 의료 사고의 책임을 대신 뒤집어쓰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그 때문에 우성가에서는 평생 나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며 나를 거두었다.

우리의 약혼은 그 약속을 이행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의 세심한 보살핌, 부드러운 손길, 내가 다쳤을 때 짓던 걱정스러운 표정이 모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알았다. 그건 그저 죄책감이었을 뿐.

부상 부위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가슴 속의 격통에 맞춰 둔탁하게 울렸다.

온몸의 상처 하나하나가 그의 배신을 소리치며 아우성치는 듯했다.

문이 열렸다. 주혁이었다.

그는 완벽한 걱정의 가면을 쓴 채 걸어 들어왔다.

“이현아, 침대에 누워 있어야지. 아직 갈비뼈가 다 안 붙었어.”

그는 또다시 책임을 언급했고, 그 단어에 속이 울렁거렸다.

“드레싱 갈아줄게.”

그가 내게만 보여주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의료 키트를 손에 들었다.

소독약을 준비하던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액정을 흘끗 보는 순간, 그의 전문가적인 가면이 잠시 벗겨졌다.

나는 그의 휴대폰에 달린 작은 핸드폰 줄을 보았다.

손으로 만든 작은 태양 모양의 장식.

몇 년 전, 내가 직접 만들어 선물했던 비슷한 장식이 떠올랐다.

그는 유치하다며 서랍에 던져버렸었다.

하지만 저 태양은, 며칠 전 윤채아의 코트에서 봤던 것과 똑같았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순식간에 따뜻하고 다정하게 변했다.

“채아 씨? 무슨 일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부드럽고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자 케이스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주혁의 입가에 진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

내가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미소였다.

“걱정 말아요. 금방 갈게요.”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 돌아오자 좋은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안절부절못했고, 행동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포셉과 소독약을 흠뻑 적신 솜을 집어 들었다.

원래는 국소 마취제를 먼저 발라야 했다. 그는 항상 그랬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따끔거리는 소독약을 내 벌어진 상처에 그대로 눌렀다.

고통에 찬 신음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세상이 눈앞에서 빙빙 돌았다.

“주혁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내뱉었다.

“마취제…”

“아, 맞다. 미안, 정신이 없어서.”

그의 말투는 무심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놀림은 더 빠르고 거칠어졌다.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시트를 움켜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육체적인 고통은 내 마음을 태우는 진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달려가기 위해 나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드레싱을 마치고, 사용한 도구들을 쟁반 위로 소리 나게 던졌다.

“나 가봐야 해. 병원에 응급 상황이 생겼어.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어.”

그는 일어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고통과 침묵의 세계에 남겨졌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이내 다른 눈물이 뒤따랐다.

상처와 부서진 마음에서 오는 극심한 고통은 너무나 컸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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