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며, 내가 수년간 키워온 사랑이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랑은 시들어 재가 되었고, 그 자리에는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만 남았다.
이제 끝이었다.
나는 그들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탈출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제1화
서혜진의 남편과 아들은 병적으로 그녀에게 집착했다.
그들의 애정 표현 방식은 기이했다.
IT 대기업 대표인 남편 강태준과 열 살배기 아들 강시우는 끊임없이 그녀의 사랑을 시험했다.
그들은 혜진에게 무관심한 척하며, 강태준의 회사 소속 젊고 야심 찬 임원인 윤세라에게 온갖 관심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서혜진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녀의 질투, 그녀의 비참함.
그것이 바로 그녀가 자신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그들이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혜진은 그들의 병을 이해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언젠가 그들을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묵묵히 견뎌왔다.
자신의 사랑이 그들의 뒤틀린 애정 갈구 방식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틀렸다.
잔인함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처음에는 약속을 취소하거나, 윤세라의 승진을 공개적으로 축하하면서 혜진의 생일을 ‘깜빡’하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비 내리는 어느 화요일에 찾아왔다.
끔찍한 교통사고였다.
혜진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강태준과 강시우가 차에 타고 있었다.
조수석에는, 한때 혜진의 자리였던 그곳에 윤세라가 앉아 있었다.
신호를 위반한 트럭이 그들이 탄 차의 측면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세상은 산산조각 난 유리와 날카로운 쇳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혜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 몸의 오른쪽 감각이 없었다.
수많은 상을 휩쓴 영화 음악을 탄생시켰던 그녀의 오른손이, 차 문에 끼인 채 처참하게 으스러져 있었다.
윤세라는 이마에 난 상처에서 피를 극적으로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한 대원이 혜진의 손을 보고, 이어서 윤세라의 머리를 살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두 분 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부인.”
그가 혜진에게 말했다.
“손이 심하게 으스러졌습니다. 신경을 살리려면 즉시 전문적인 수술이 필요합니다.”
그는 강태준을 향해 돌아섰다.
“하지만 다른 젊은 여성분은 머리를 다쳤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응급실 의사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강태준 대표님, 이런 외상에 대비된 수술팀은 현재 하나뿐입니다. 아내분의 손은 복잡한 신경 미세 접합 수술이 필요합니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완전한 회복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윤세라 이사님은 뇌진탕과 깊은 열상이 있습니다. 심각하긴 하지만, 아내분만큼 시간이 촉박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는 강태준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었다.
강태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아버지의 냉정한 표정을 그대로 빼닮은 작은 얼굴의 강시우가 앞으로 나섰다.
“세라 누나부터 도와주세요.”
의사는 충격받은 얼굴로 아이를 쳐다봤다.
강태준은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무언가—자랑스러움 같은 것?—가 스쳐 지나갔다.
강시우는 혜진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눈은 크고 진지했지만, 목소리에는 소름 끼치는 논리가 담겨 있었다.
“엄마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잖아요. 이해해 줄 거예요. 우리가 세라 누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보면, 엄마는 질투할 거고, 그건 우리를 더 사랑한다는 뜻이잖아요. 기다리는 거 괜찮을 거예요. 엄마는 항상 그랬으니까.”
그들의 뒤틀린 게임이, 살균 소독된 병원의 무자비한 불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강태준은 강시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조용한 승인이었다.
그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의사를 보며 말했다.
“제 아들 말 들으셨죠. 윤 이사부터 치료해 주십시오.”
혜진은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남편. 그녀의 아들.
그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손의 물리적인 고통은, 가슴속에 뚫린 차가운 공허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그들의 오락거리였고, 그녀의 희생은 그들의 트로피였다.
수술실로 실려가면서, 그녀는 강태준과 강시우가 윤세라의 침대 곁에 붙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연기하는 것을 보았다.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며, 혜진은 자신이 수년간 키워온 사랑이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랑은 시들어 재가 되었고, 그 자리에는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만 남았다.
고통과 약물에 취한 희미한 의식 속에서, 선명하고 날카로운 결심이 굳어졌다.
이제 끝이었다.
나는 그들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탈출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몇 시간 후, 그녀는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의사의 얼굴은 침통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최선을 다했지만 지체된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영구적인 신경 손상이 심각합니다.”
그는 나머지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경력은 끝났다.
소리의 세계를 창조하고, 멜로디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손은 이제 그냥 손일 뿐이었다.
마법은 사라졌다.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에 의해 잘려 나갔다.
병원에서의 며칠은 흐릿했다.
강태준과 강시우는 항상 윤세라를 데리고 병문안을 왔다.
그들은 가벼운 상처를 최대한 이용해 앓는 소리를 하는 윤세라에게 안절부절못하면서, 혜진에게는 눈길조차 거의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를 지켜봤다.
눈물, 분노, 질투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혜진은 조각상처럼, 평온한 가면을 쓴 얼굴이었다.
그녀의 침묵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였고,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퇴원하는 날, 변호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몇 년간 숨겨두었던 대포폰으로 병원에서 그에게 연락했던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가 서류 폴더를 건네며 말했다.
그녀는 멀쩡한 왼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감옥처럼 느껴지는 저택으로 돌아와, 거실에서 웃고 있는 강태준과 강시우, 윤세라를 지나쳤다.
그녀가 들어서자 그들은 조용해지며 그녀를 지켜봤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그녀는 강태준의 개인 서재로 직행했다.
절대 들어갈 수 없었던 방이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그녀는 그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
열쇠는 책장에 꽂힌, 속이 파인 ‘손자병법’ 책 안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방은 그녀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어두운 색의 목재, 가죽, 거대한 책상.
하지만 책장 뒤에서, 그녀가 정말로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벽지에 희미하게 보이는 경계선.
그녀가 밀자, 숨겨진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방은 성소였다.
그녀를 위한.
모든 벽이 혜진의 사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 몰래 찍은 스냅 사진들이었다.
잠자는 혜진, 작곡하는 혜진, 우는 혜진.
그것은 스토커의 렌즈를 통해 기록된, 그와 함께한 그녀의 삶의 연대기였다.
선반 위에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 리본.
그녀가 한때 사용했던 깨진 찻잔.
그녀의 첫 콘서트 프로그램.
그것은 집착광의 수집품이었다.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첫 만남.
그는 너무나 멀고, 무관심해 보였다.
그녀는 그의 애정을 얻기 위해 몇 년 동안 그를 쫓아다녔고, 그의 차가운 소유욕을 말 없는 깊은 사랑으로 착각했다.
그녀는 받침대 위에 놓인 작은 잠긴 상자를 보았다.
강시우의 것이었다.
안에는 비슷한 ‘보물들’이 들어 있을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녀가 잠든 사이 잘라낸 머리카락 한 줌.
그녀가 잃어버린 펜.
그는 제 아비의 아들이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이것이 단지 그들의 방식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자신의 인내와 인고가 결국 이 병을 치유할 것이라고.
병원은 그 환상을 산산조각 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새장이었다.
차가운 결심을 하고, 그녀는 성소의 문을 열어둔 채 걸어 나왔다.
자신의 방으로 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옷이 아니라, 기억들을.
그녀는 웨딩 앨범을 집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액자에 담긴 그들의 사진을 가져와 하나씩 깨부쉈다.
그녀는 그들을 지우고 있었다.
나중에 강태준과 강시우, 윤세라가 집에 돌아왔다.
그들은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를 지나쳐 갔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강시우는 그녀를 보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세라 누나 저녁 먹고 갈 거예요. 우리의 특별한 손님이에요.”
그는 아버지를 쳐다봤고, 아버지는 혜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바탕 소동을 기대했다.
그들은 실망했다.
혜진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의 미소가 흔들렸다.
이건 대본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모습은 그들을 불안하게 했다.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윤세라는 가구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태준 씨, 저 파란 소파는 저쪽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커튼은 너무 칙칙하네요.”
“세라 씨가 원하는 대로 해요.”
강태준이 혜진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그녀의 속을 긁으려 하고 있었다.
혜진은 그저 몸을 돌려 식당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집, 그녀의 공간에 대한 변화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었다.
윤세라는 승리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당신은 의견 없어요, 서혜진 씨?”
강태준이 그녀 대신 대답했다.
“그녀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
저녁 식사는 잔인함의 공연이었다.
강태준과 강시우는 윤세라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고, 그녀의 의미 없는 수다를 칭찬하며, 혜진을 식탁의 유령처럼 취급했다.
혜진은 기계적으로 식사했다.
그녀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때, 스테이크 한 조각이 목에 걸렸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녀는 컥컥거리며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순간, 강태준과 강시우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강태준이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야!”
윤세라가 포크를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손가락 벤 것 같아요!”
그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상처에서 피 한 방울이 맺히는 손을 들어 보였다.
주문이 풀렸다.
강태준과 강시우의 관심은 다시 그들의 게임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순간적인 진심 어린 걱정은 사라지고, 계산된 잔인함이라는 익숙한 대본으로 대체되었다.
강태준은 윤세라의 곁으로 달려갔다.
“괜찮아요? 어디 봐요.”
강시우는 구급상자를 가지러 달려갔다.
혜진은 숨이 막혀 시야가 흐려지고 있는데, 그들은 종이에 베인 상처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격렬한 기침이 그녀의 몸을 뒤흔들었고, 그녀는 하얀 식탁보 위에 피를 뱉었다.
그리고는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며 쓰러졌다.
어둠이 덮치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연극적인 짜증이 섞인 강태준의 목소리였다.
“저것 좀 봐. 관심받으려고 별짓을 다 하는군.”
그녀는 바닥에서 깨어났다.
입안에는 피의 금속 맛이 맴돌았다.
집은 조용했다.
그들은 그녀를 거기에 버려두고 갔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쑤셨다.
그녀는 깨끗한 식탁보 위의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방으로 다시 들어오는 강태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문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쇼 한번 거창하네.”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심하긴.”
혜진이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물론 부인했다.
“우린 세라 씨가 걱정됐어. 당신은 그냥 드라마를 찍고 있었던 거고.”
혜진은 논쟁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언제쯤 그만둘 거야?”
그녀가 유령의 숨결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게임은 언제 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