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가락이 침대 위에 펼쳐진 섬세한 레이스 베일을 어루만졌다. 내 첫 차보다 비싼 웨딩드레스의 일부였다. 이건 상징이었다. 사랑이 아닌, 이 도시의 가장 강력한 두 가문을 통합하기 위한 7년간의 정략약혼의 상징. 완벽한 결합. 완벽한 인생.
내 약혼자이자 강씨 가문의 후계자인 강태준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못하는 척했다.
3주 전, 그는 가벼운 머리 부상을 입었다. 그의 오른팔인 민호가 무표정하게 말하길, 대련 중에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다. 그 사고로 기억이 지워졌단다. 선택적으로. 그는 자신의 이름, 가족, 차기 회장으로서의 역할은 모두 기억했다. 오직 나만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이후 매일 그의 기억 조각을 맞추려 애썼다. 우리의 펜트하우스는 우리의 사랑, 아니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의 박물관이 되어버렸다. 벽에는 사진들이 즐비했다. 우리가 첫 댄스곡으로 쓰려 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 노래를 하루 종일 틀어놓았다. 단 하나의 음이라도 그의 기억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노래 좋네."
어제 그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그의 눈은 멀고, 차가웠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양가가 이 결혼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이 결합은 단순한 결혼이 아니었다. 시작되기도 전에 조용한 전쟁을 끝낼 조약이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변호사인 박지현, 나만의 조언자인 그녀가 경고했었다.
"아영아, 이상하잖아. 약혼녀만 쏙 빼놓고 기억 못 하는 머리 부상이 어디 있어? 이건 의학적 진단이 아니라 막장 드라마 대본 같아."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래야만 했다. 희망이 내가 가진 전부였으니까.
오늘 밤, 그의 서재에서 오래된 사진 앨범을 찾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노트북은 책상 위에 열려 있었고, 영상 통화는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몇 주 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강태준의 웃음소리. 깊고, 진심 어리고, 오만한 웃음소리.
나는 얼어붙었다. 문손잡이를 잡은 내 손이 굳었다.
"그 여자, 완전히 속고 있어."
강태준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민호와 통화 중이었다.
"하루 종일 우리 노래 틀어놓고, 그 크고 슬픈 눈으로 나만 쳐다봐. 거의 애처로울 지경이야."
뱃속이 뒤틀렸다. 숨이 턱 막혔다.
"형님, 진짜 나쁜 놈이네요."
민호가 말했지만, 그 역시 웃고 있었다.
"고작 최유나 때문에요? 그 여자가 이 난리를 칠 만큼 가치가 있어요?"
최유나.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리고 수술과 야망으로 몸을 만든 인플루언서. 가문의 자금 세탁에 유용한 '관계자'일 뿐, 우리와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 결코.
"이건 임시 자유 시간이잖아, 인마."
강태준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가죽이 불평하듯 삐걱거렸다.
"가문의 규칙, 약혼, 침묵의 서약… 전부 다 빌어먹을 감옥이야. 이 '기억상실'이 내 열쇠지. 몇 달간 자유를 즐기다가, 결혼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회복하면 돼."
침묵의 서약. 우리가 어릴 때부터 첫 번째로 배운 규칙이었다. 외부인에게 절대 가문의 사업에 대해 말하지 말 것. 공개적인 경솔함으로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 것. 그것은 우리 세계 전체의 기반이었고, 가문들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였다. 그런데 그는 그걸 바람피울 변명으로 삼고 있었다. 그 의미를 비틀어 자신만의 거짓된 감옥을 만들었다.
그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잔 속의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서아영은 안도감에 뭐든지 용서할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년은 내 소유물이잖아. 전부 계약의 일부라고."
그 말은 물리적인 타격처럼 나를 덮쳤다.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갔다. 내 세상 전체, 7년간의 헌신, 내 인생을 걸었던 미래가 모두 거짓이었다. 게임이었다. 빌어먹을 자유 시간.
내 심장 속 사랑이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로 응고되었다. 슬픔은 너무나 거대해서 블랙홀처럼 느껴졌지만, 그 반대편에서 계획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차갑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계획.
나는 천천히,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 래치가 잠기는 '딸깍' 소리는 감옥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그 안에 갇힌 것이었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그는 내가 그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게임 속 졸이라고 생각한다.
좋아. 기꺼이 놀아주지. 하지만 이 게임이 끝났을 때, 이기는 건 그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