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건이라는 남자의 명함.
그의 이름 아래에는 ‘비공식 솔루션’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크리스털 화병을 깨부쉈다.
맨발에 실크 가운 차림으로 5성급 스위트룸을 뛰쳐나왔다.
그들이 어질러진 잔해를 치우도록 내버려 둔 채, 내 인생에서 걸어 나왔다.
나의 유일한 목적지는 그 카드에 적힌 주소였다.
제1화
신부 대기실의 침묵은 내가 들어본 소리 중 가장 시끄러웠다.
그것은 무게감 있고, 기대에 찬 침묵이었다.
수천 송이 백합의 숨 막히는 향기와 희미하고 날카로운 헤어스프레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베르디아 그랜드 호텔 서울의 웅장한 통유리창 밖에서는 도시가 활기차게 움직였지만, 이곳의 시간은 시럽처럼 끈적하게 느려졌다.
나는 금박을 입힌 전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내 첫 차보다 비싼 드레스를 입은 낯선 모습으로.
실크는 내 피부에 무겁고 서늘한 액체처럼 감겼고, 정교한 비즈 장식은 빛을 받아 수백만 개의 작은 무지개로 부서졌다.
완벽한 신부를 위한 완벽한 드레스였다.
문제는, 내 기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숨 쉬어, 세아야. 제발 숨 좀 쉬어.*
그 생각은 내 혼란스러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필사적인 속삭임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공들여 한 화장 아래 창백한 얼굴과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에 부딪히며 미친 듯이 울렸다.
뼈와 레이스로 만든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어야 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엄마, 약혼자 선우, 그의 완벽한 여동생 서윤까지.
그들의 말은 매끄럽고 윤이 나는 돌멩이처럼, 내 불안의 소용돌이 속으로 하나씩 떨어졌다.
“정말 숨 막히게 아름답구나, 얘야. 그야말로 그림 같아.”
엄마, 윤혜진 여사가 비둘기색 시폰 드레스를 속삭이듯 입고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에게서는 샤넬 No. 5 향수와 조용한 실망의 냄새가 났다.
그녀의 미소는 눈가에 닿지 않았다.
나를 볼 때면 몇 년째 그랬다.
완벽하게 관리된 손톱 끝이 달린 차가운 손가락이 내 관자놀이 근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위로하려는 손길이었지만, 마치 상품을 판매하기 전 마지막 품질 검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움찔하지 마. 엄마한테 휘둘리는 모습 보이지 마.*
“고마워요, 엄마.”
나는 가늘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그냥 긴장해서 그래, 얘야.”
엄마는 어깨너머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힐끗 보며 말했다.
“모든 신부가 다 겪는 일이야. 그냥 긴장 풀려고 해봐. 약혼 파티 때처럼은 안 돼.”
나는 움찔했다.
약혼 파티.
나는 인파와 모든 사람의 기대라는 숨 막히는 무게에 짓눌려 공황 발작을 일으켰었다.
선우는 그것을 ‘매력적인 작은 비틀거림’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망신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내 ‘예민한 신경’을 내가 이기적으로 그들에게 퍼붓는 만성 불치병처럼 언급했다.
선우의 여동생이자 우리 가족이 공전하는 태양 같은 존재인 서윤이 엄마 뒤로 스르르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졌다.
힘들이지 않는 자신감, 빛나는 아우라,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천사 같은 아들 민준이의 엄마.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고, 그 미소는 밝았지만 동정심이 가득했다.
“세아 씨, 정말 예쁘네요.”
그녀는 비소가 섞인 꿀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우 오빠가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정말 기다리기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녀의 눈이 내 드레스, 머리, 얼굴을 훑었고, 나는 익숙한 열등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엄마가 항상 원했던 딸이었다.
절대 ‘비틀거리지’ 않는 그런 여자.
“샴페인 좀 가져왔어요.”
그녀가 플루트 잔을 내밀며 제안했다.
거품이 즐겁게 춤을 췄다.
“그 예민한 신경 좀 가라앉히라고요.”
또 그 말이었다.
그 표현.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는 듯한 말투.
엄마가 대신 잔을 받았다.
“아직은 안 돼, 서윤아. 얼굴 붉어지면 안 되니까.”
엄마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난 이제 코디네이터랑 마지막 준비 사항 좀 확인하고 올게. 서윤아, 세아 옆에 있어 줘. 애가… 무너지지 않게 잘 좀 봐주고.”
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닫혔고, 나는 향기롭고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서윤과 단둘이 남겨졌다.
거울 속에서 그녀가 나를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다 정말 완벽할 거예요, 알죠?”
그녀가 공모자 같은 톤으로 말했다.
“오늘이 지나면 모든 게 드디어 안정될 거예요. 다음 주에는 민준이 생일 축하 파티도 제대로 할 수 있고요. 어머님이 메인 볼룸을 쓰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속이 뒤틀렸다.
내 결혼 피로연이 메인 볼룸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벌써부터 장식을 바꿀 계획을 하고 있다는 뜻인가?
“내 결혼식은 오늘이야, 서윤 씨.”
내 목소리는 의도했던 것보다 날카롭게 나갔다.
그녀는 작게 웃었다.
내 날 선 신경을 긁는 방울 소리 같은 웃음이었다.
“물론이죠, 바보같이. 제 말은… 음, 이 모든 소란이 끝나면요. 선우 오빠가 모든 걸 관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오빠가 세아 씨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잖아요.”
*나를 관리한다고. 나를 관리하는 걸 걱정한다고.*
그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나는 그런 존재였다.
하나의 프로젝트.
관리해야 할 문제.
선우는 파트너와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둬야 할 아름답고 연약한 인형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선우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억지스러운 쾌활함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그는 멋있었고, 검은 머리는 완벽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하지만 턱은 굳어 있었고, 눈은 방 안을 휙휙 훑다가 내게 멈췄다.
“여기 내 아름다운 신부가 있네.”
그는 연습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는 다가와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입술은 건조하고 짧았다.
그에게서는 비싼 향수 냄새와 스트레스로 인한 땀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났다.
“이제 곧 이선우의 아내가 될 준비됐어?”
“선우 씨.”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서윤 씨가… 볼룸 말인데… 민준이 파티 때문에?”
그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짜증 섞인 기색이 얼굴에 스쳤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는 서윤에게 험악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녀는 그저 순진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세아야, 자기야. 이러지 마.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흥분하지 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모두가 나를 그냥 통과해서 보는 것 같아. 이 모든 날이 그냥… 넘어야 할 장애물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내가 ‘까다롭게’ 굴 때 사용하는 낮고 달래는 톤으로 바뀌었다.
“과민 반응이라고. 스트레스 때문이야. 왜 항상 일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자기야? 오늘은 우리에 관한 날이어야 하잖아.”
가스라이팅.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수법이었다.
내 진솔한 감정을 비난으로 뒤틀어, 내 이야기의 악당으로 나를 만들어 버리는 것.
내 걱정은 타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완벽한 날에 대한 불편함일 뿐이었다.
그는 내 손을 조금 세게 쥐었다.
“그냥 웃어, 예쁘게 보이고, 식장으로 걸어 들어가.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수 있지?”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 힘이 빠져나가고, 익숙하고 공허한 아픔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떠났다.
그의 향수 냄새와 무시하는 태도가 공기 중에 남았다.
서윤은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승리감에 찬 미소를 내게 던졌다.
“제단에서 봐요.”
그녀가 명랑하게 말했다.
다시 혼자가 되자, 침묵이 이전보다 더 무겁게 돌아왔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정성스러운 작품을 망치지 않으려 맹렬히 눈을 깜빡였다.
어쨌든 그게 내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아름답게 보이는 것.
내 시선은 화장대 위에 놓인 작은 비즈 장식의 클러치 백에 닿았다.
그 안에는 오늘 진정으로 내 것이라고 느껴지는 유일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주신 작은 은색 로켓.
할머니는 나를 제대로 봐주신 유일한 분이었다.
연약한 인형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할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 상실감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나는 서툰 손가락으로 잠금장치를 더듬었다.
없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공포가 나를 꿰뚫었다.
나는 가방을 실크 긴 의자 위로 쏟아냈다.
립스틱, 티슈, 컴팩트 거울… 하지만 로켓은 없었다.
어디에 뒀지?
분명히 챙겼던 기억이 났다.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할머니가 남겨주신 작은 고풍스러운 나무 상자에 넣어뒀었다.
그 상자는 내 여행 가방에 넣어뒀는데.
나는 실크 가운 자락을 스치며 옷장으로 달려갔다.
가방을 찾아 작은 삼나무 상자를 꺼냈다.
익숙하고 편안한 나무 향이 내 감각을 채웠다.
할머니의 상자.
이 소용돌이치는 불안의 바다에서 나의 닻이었다.
뚜껑을 열었다.
로켓은 없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벨벳 안감 아래,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열었다.
안에는 빛바랜 실크 위에, 단 하나의 단호한 명함이 놓여 있었다.
무광의 검은색 두꺼운 종이에, 글자는 엄격한 은색 글씨체였다.
*주태건. J 인더스트리. 비공식 솔루션.*
그 아래에는 작게 접힌 메모지가 있었다.
잉크는 바랬지만 필체는 틀림없이 할머니의 것이었다.
할머니의 힘 있고 우아한 필체는 행복했던 시절의 유령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펼쳤다.
메시지는 짧았다.
세월을 가로질러 던져진 구명줄이었다.
*네가 너 자신을 선택할 준비가 되었을 때.*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카드 위로 번지며, 위압적인 이름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주태건.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할머니는 알고 계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를 위해 이것을 남겨두셨다.
탈출구를.
그 생각은 무섭고도 짜릿했다.
나 자신을 선택하라.
오늘 하루 종일 처음으로, 나는 절망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작고 위험한 불꽃이었다.
희미한 희망의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