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나는 99번째로 이혼을 요구했지만, 조재호는 첫사랑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그녀한테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 봐.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그가 말했다.
나해리를 위해, 그는 임유나를 여러 번 버리고 그녀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조재호는 임유나가 자신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나해리의 오빠가 임유나에게 이혼을 권하며 한국을 떠나라고 은밀히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
"우리 이혼해." 임유나가 말했다. 그녀는 창밖에 내리는 폭우를 바라보며 조재호에게 99번째로 이혼을 요구했다.
비는 사정없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그녀의 마음속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한 달 전에 그녀는 조재호가 자신을 나해리의 대역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년의 결혼 생활, 그 모든 달콤함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녀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나 씨, 그가 이혼하는 데 동의했어? 일주일 뒤 티켓으로 예약하면 되지?]
그녀에게 떠나라고 권하는 사람은 나해리의 오빠 나형주다.
그녀는 나형주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재호에게서 벗어나려면,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조재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단지 핸들을 더 꽉 잡았다. "그만해. 이럴 시간 없어."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차 안은 어둡고,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그녀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이번에 그녀는 울지도, 말다툼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조재호는 그녀의 시선에 짜증이 났는지 가속 페달을 밟아 빗속을 달렸다. "나해리는 그냥 옛 친구일 뿐이라고 했잖아. 그만 좀 의심해."
그는 참을성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버님의 다음 수술 비용을 내가 대줄게. 그리고 당신한테도 명품 가방 다섯 개 사줄게."
그의 말투는 마치 무능한 부하를 대하는 듯했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조재호의 말은 여전히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때, 명랑한 바이올린 소리가 고요함을 깼다.
그것은 나해리만의 특별한 벨 소리였다.
조재호의 차갑던 얼굴이 즉시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천천히 차를 길가에 세웠다. "해리야, 걱정하지 마. 지금 바로 갈게." 그가 말했다.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임유나에게는 그녀만의 벨 소리조차 없었다.
그는 전화를 끊자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해리한테 가봐야 해. 알아서 집에 가."
조재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차에서 내쫓았다.
그는 문을 열자 빗줄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집에 가서 냉정하게 생각해 봐.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그가 말했다.
그는 우산조차 주지 않았다.
차가 가속하며 사라지면서 튕긴 물보라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적셨다.
그녀는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펴고, 차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차가운 빗줄기가 얼굴을 때리도록 그대로 서 있었다. 이렇게라도 제 정신을 차려야만 했으니까.
예전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몇 년 전, 그녀가 학교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을 때, 조재호의 할머니가 익명으로 그녀의 학비를 지원했다.
중병으로 앓던 할머니가 조재호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임유나는 조재호와 합의를 했고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 그녀는 그의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완벽한 아내 역할을 하고,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픈 아버지를 지원하기로.
결혼 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조재호의 만능 비서가 되게 했다. 그들의 결혼은 사랑 없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조재호는 그녀에게 위험할 정도로 완벽한 결혼 생활을 시작해 주었다.
그는 늦은 밤, 뒷골목의 맛집에서 줄을 서면서 그녀에게 음식을 사 왔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리 날짜도 기억하고, 항상 핫초코와 핫팩을 준비했었다.
조재호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야외 정원을 파헤쳐 온실을 지었고, 자신이 직접 심은 꽃들로 가득 채웠다.
그는 예술영화를 함께 보며 그녀가 울 때 서툴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그런 작은 배려들이 촘촘한 그물을 엮어 그녀를 가두었다.
차갑던 남자가 자신에게만 특별한 모습을 보고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그러다가 한 달 전, 나해리가 돌아왔다.
나형주는 그녀가 나해리의 대역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조재호의 서재에서 잠겨 있는 사진 앨범을 발견했고
비밀번호는 나해리의 생일이었다.
안에는 나해리의 풋풋했던 학교 시절에서 어엿쁜 여자가 되기까지의 사진들이 소중히 보관되어 있었다.
앨범의 모서리는 닳고 닳아서 수없이 꺼내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중 한 사진에는 십대 나해리가 흰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들고, 밝고 대담하게 웃고 있었다.
조재호는 임유나에게 그 드레스를 사주며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진 아래에는 나해리의 취향이 적혀 있었다.
"나해리는 성남식당의 음식을 좋아한다.
나해리는 생리통이 심해서 핫초코가 필요하다.
나해리는 꽃, 특히 모란꽃을 좋아한다.
나해리는 예술영화를 좋아한다."
...
모든 것이 조재호가 임유나를 대하는 방식과 일치했다.
그 순간, 그녀는 알았다.
왕자는 평범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서 왕자들은 공주와 함께한다는 걸.
나해리는 치료를 위해 해외에 있었고, 조재호의 할머니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임유나가 마침 그 시기에 나타났고, 나해리와 어렴풋이 닮은 모습 때문에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
조재호는 그녀를 나해리의 완벽한 복사본으로 만들었다.
이제 진짜 나해리가 돌아왔으니
가짜인 임유나는 떠나야 한다.
휴대전화가 울려서 확인해 보니 나형주한테서 문자가 왔다. [걔가 또 거절했어?']
그녀가 답했다. '응, 하지만 나한테 다른 계획이 있어. 일주일 뒤 티켓으로 예약해 줘.]
나형주는 즉시 답했다. [그럼 내가 경북시로 널 데리러 갈게. 괜찮지?]
[그래, 너만 번거롭지 않다면.]그녀가 답장했다.
그녀는 채팅내용을 삭제하고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나형주는 2년 동안 해외에 있었다. 그녀를 데리러 오려면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고, 다시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배신당한 후, 그녀는 남성의 친절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나형주의 감정을 이용하고 있었다.
업보는 돌고 돈다. 그녀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남자는 나해리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나해리의 오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