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윤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이내 들고 있던 그릇을 서유나의 발 밑에 던져버렸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방 안에 긴장이 흘렀다. 입가에 피가 번진 그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동생이 오빠를 죽이려 한다는 게 말이 돼?" 그는 거칠게 올라오는 기침 때문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만약 지안이가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면, 너 정말 날 죽이려고 했던 거야?"
산산조각 난 약을 내려다보던 서유나의 얼굴에 잠시 안타까움이 스쳤다. "오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해? 그 약엔 독 같은 건 없어. 오히려 몸속에 쌓인 묵은 피를 빼내는 약재가 들어 있었어. 그래야 오빠 병이 회복될 수 있다고." 약이 카펫에 스며드는 걸 보며 서유나는 속으로만 깊은 한숨을 삼켰다. 그 약을 구하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돈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한편, 서씨 가문의 양녀인 서지안은 언제나 품고 다니던 의학 서적을 끌어안은 채 서태윤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나 언니, 제발 거짓말 좀 그만해. 민준 오빠가 언니가 가져온 약을 검사해 봤어. 그 약에 독성 물질이 들어 있었다고!"
서유나는 냉소 어린 눈빛으로 서지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너 바보구나. 세상에 100% 안전한 약이 어디 있니? 특히 태윤 오빠 병 같은 경우는 더 그래. 강한 약이 아니면 버텨낼 수 없어. 그렇지만 그냥 순한 성분들만으로는 절대 못 고쳐."
서지안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맺히더니,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언니, 태윤 오빠가 눈앞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 우린 아직 의대생일 뿐이야.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사람을 살리겠어. 제발 괜히 잘난 척 좀 하지 마."
서지안은 감정에 북받쳐 서유나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오며 절박하게 말했다. "내가 유명한 전문의를 찾아가 봤어. 그분이 오빠를 살릴 수 있는 처방을 내주셨다고. 언니가 잘못한 걸 인정해. 우리 그 처방으로 먼저 오빠 병부터 고치자, 응?"
서태윤은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며 다시 서유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실망이 뒤섞여 있었다. "서유나, 나한테 그 정체도 모를 약을 먹인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지안이까지 모욕해? 네가 지안이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야. 지금 당장 지안이한테 사과해!"
그의 말에 서유나는 어깨를 펴고 서태윤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난 그저 오빠를 살리고 싶었던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과할 이유 없어. 걔한테 빚진 것도 없으니까."
서태윤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채찍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래, 그만 하자! 넌 내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지? 그러니까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지!" 그가 소리쳤다. "당장 나가!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가 채찍을 휘두르기 직전, 서유나가 재빨리 몸을 빼며 피했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때, 위층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낡은 배낭 하나가 그녀의 발치에 떨어졌다.
계단 위에 선 사람은 둘째 오빠인 서민준이었다. 이내 그의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실대로 말할게. 넌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지안이만 우리 진짜 여동생이지. 네가 상처받을까 봐 지금까지 비밀로 해왔던 거였어. 하지만 오늘 보니 그럴 필요도 없네. 지금도 네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짐 싸서 나가. 지안이만 우리 친동생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힐 거야. 시골로 돌아가 네 진짜 가족들한테 가서, 다시 그 수준으로 살아."
서유나는 서민준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눌려 있던 짐이 벗겨진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들과 진짜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몇 년 만에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통쾌한 기분이었다. 이제 이 집에서 더 이상 머리를 싸매며 정성을 쏟을 필요도 없었다.
처음부터 왜 자신이 다른 남매들과 어울리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 잘 됐네." 서유나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재빨리 가방을 집어 들고 접시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는 똑바로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지안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5년 동안 꾸며온 계획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서유나가 떠난 이상, 그녀는 서씨 가문의 유일한 딸로 오빠들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가식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서유나를 따라나가 울먹이는 소리로 외쳤다. "유나 언니! 이렇게 가면 어떡해! 집에서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게. 제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 줘. 부탁이야."
그러자 서태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해, 지안아! 그냥 내버려 둬. 저런 애는 원래 있던 가난한 집안이 더 어울려. 애초에 이 집에 있을 자격도 없었어."
서유나는 그 말에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도 순진한 건가? 서태윤이 다시 걸을 수 있었던 것도, 기적처럼 회복된 것도 다 누구 덕인데. 그게 정말 단순히 운이라고 믿었던 걸까. 곧 그들은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그녀의 손길과 그녀가 만든 약이 사라지면, 그 '운'이 얼마나 허무하게 끝나버리는지 말이다.
서유나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현관문을 나섰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입술에는 비웃음이 번졌다.
멀리 Y국의 번화가 중심에는 노씨 가문의 저택이 우뚝 서 있었다. 그곳은 권세와 부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 호화로운 정원에서 한 어르신은 화려한 장식의 지팡이로 대리석 바닥을 쿵쿵 치며 말했다. "벌써 찾았다더니, 왜 아직도 데려오지 못한 거냐?"
그의 주위에는 세 명의 손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 이름만으로도 정재계가 고개를 숙이는 거물들이었다.
하지만 사라진 막내 여동생의 행방이 아직까지 묘연하다는 사실은 그들의 당당한 얼굴마저 어둡게 만들었다.
"경성 쪽에서 발이 묶였습니다. 최근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막내가 몇 년 동안 산골 마을에서 살다가 인신매매를 당했답니다. 그리고 이후에 행방이 전부 끊겼습니다."
어르신의 얼굴에 고통이 드리웠다. "벌써 18년이다… 그 아이가 어떤 고생을 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할아버지, 하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유괴범 중 한 명이 막내를 경성에 사는 부잣집 여자한테 팔았다고 진술했어요. 시간이 더 필요할 뿐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분명 찾을 수 있습니다."
어르신의 굳은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눈에 희망의 빛이 눈에 비쳤다. "그렇다면 서두르자. 나도 같이 가마. 함께 찾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