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다.
육청아는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백화점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젊은 남녀가 백화점 옆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뒷모습이 그녀의 남자친구 임준석과 절친 진소월과 비슷했다.
'임준석은 오늘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는데? '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육청아는 급히 그들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의 뒷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백화점을 몇 바퀴나 돌았을까, 그녀의 휴대폰에 카드 결제 알림 문자가 도착했다.
보석 코너에서 500만 원을 결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육청아는 그 숫자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건 그녀가 반년 동안 아르바바이트를 해서 번 돈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육청아는 곧바로 보석 코너로 달려갔고, 직원이 진소월의 하얗고 가느다란 약지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주는 것을 보았다.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크고 정교해 보였고, 육청아가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반지였다.
진소월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본 육청아는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임준석은 반년 동안 그녀의 집에 얹혀살며 그녀의 돈으로 먹고 자며 지냈는데, 이제는 그녀의 카드로 다른 여자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다니.
'내가 죽은 줄 아나?
' 육청아는 곧바로 진소월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에 낀 반지를 빼앗아 직원에게 내밀었다.
"이 반지 환불해 주세요! "
"육청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방금 산 반지를 왜 네가 환불해? " 진소월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찰싹! " 육청아는 진소월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너 뭐하는 짓이야?" 그때, 결제를 마치고 돌아온 임준석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곧장 진소월을 품에 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피더니, 육청아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네 돈 몇 푼 썼다고 미친개처럼 사람을 쳐? 창피하지도 않냐?" 임준석은 경멸과 혐오감이 가득 묻어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육청아는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배신감, 분노, 수치심이 그녀의 두 눈을 빨갛게 물들였다.
"내 피 같은 돈으로 다른 여자나 먹여 살리면서, 내가 창피하다고? "
"그래, 그랬다. 어쩔 건데? 네 꼴을 좀 봐, 어떤 남자가 너 같은 걸 만나주겠냐! "
반년 동안 임준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육청아는 아끼고 또 아껴 돈을 모았다. 화장품도 쓰지 않았고,
옷도 낡은 옷만 입고 다녔지만, 그녀가 얻은 건 뻔뻔한 배신뿐이었다. 구경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의식한 임준석은 신용카드와 영수증을 육청아의 얼굴에 던지며 소리쳤다.
"다 돌려줄 테니까. 돈만 밝히는 속물. 너한테 질렸다고. "
카드가 얼굴에 부딪히는 고통보다, 육청아는 마음이 더 아팠다.
"육청아, 너 같은 여자는 평생 혼자 늙어 죽을 거야. 어떤 남자도 너 같은 건 감당 못해. " 말을 마친 임준석은 진소월의 손을 잡고 백화점을 나섰다.
아무 말 없이 육청아는 바닥에 떨어진 카드와 영수증을 주워 환불 절차를 마치고, 임준석과 함께 지내는 집으로 향했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임준석과 그녀는 각자 방을 사용했다.
육청아는 임준석이 신사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임준석의 짐을 싸서 당장 쫓아낼 준비를 했다.
침대 시트를 걷어내자, 사용한 콘돔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축축한 콘돔을 본 육청아는 임준석에 대한 마지막 환상마저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임준석의 짐을 하나씩 밖으로 던졌다.
그때, 임준석이 진소월과 함께 돌아왔다.
텅 빈 방을 본 임준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육청아, 너 미쳤어? 네가 뭔데 내 물건에 손을 대? "
육청아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예전에는 임준석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역겨움만 느껴졌다.
"마침 잘 왔네. 집 열쇠나 내놔. 다신 여기 얼씬도 하지 마. 내 집 더럽히지 말고."
"육청아, 너 지금 제정신이야? 예전엔 나도 월세 냈어.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내쫓아? " 임준석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예전이라고 했지. 최근 반년 치 월세랑 2년 반 동안의 생활비, 나한테 줬어? "
육청아는 차분하게 반박했다.
임준석은 구경꾼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일단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대충 둘러댔다.
"육청아, 너 원하는 게 돈이잖아? 반년 월세 그거 몇 푼 된다고. 내 한 달 반 월급이면 돼. 취직하면 바로 갚아줄게."
"반년 기다릴 거 없어. 우리가 지금 바로 주면 되잖아. " 진소월은 휴대폰을 꺼내 육청아의 앞에 내밀었다. "얘기 됐지? 내가 반년 치 월세 줬으니까, 네가 오늘 당장 나가는 거야. "
진소월은 육청아가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년 치 월세의 절반은 20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육청아는 그동안 임준석에게 200만 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썼을 것이다. 그녀는 임준석의 마음속에 좋은 인상만 남기면 되었다.
임준석은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로, 한 달에 600만 원은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진소월은 육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휴대폰으로 송금했다. 곧바로 돈이 이체되자,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제 네 짐 싸서 꺼져!"
"급할 거 없어. " 육청아는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가 등기권리증을 꺼냈다.
"두 눈 똑똑히 봐. " 육청아가 등기권리증을 펼치자 소유자란에 육청아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육청아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이 집 주인이야. 오늘부로 이 집, 다시 회수하겠어."
"육청아, 너… 날 속였어? " 등기권리증을 본 임준석은 바로 화를 냈다. "네가 집주인이면서 여태껏 나한테 월세를 받았다고? "
"남의 집에 살면 월세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육청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잘못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한 년… " 임준석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육청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정말 널 얕봤네."
"육청아, 너 정말 비열하다! " 진소월은 돈도 잃고 살 곳도 잃게 되자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너희들에 비하면 난 아직 멀었지. "
육청아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말했다. "너희들 물건 갖고, 당장 꺼져! "
진소월은 계속해서 소란을 피우려 했지만, 임준석은 이웃들이 구경하는 것을 보고 진소월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떠나기 전, 육청아를 흘깃 쳐다보며 이 집을 어떻게 손에 넣을지 궁리했다.
쓰레기 같은 남자를 처리한 육청아는 힘없이 벽에 기댔다.
이제 더는 그 쓰레기 같은 놈을 먹여 살리려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숨을 돌리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동생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누나…
할머니 암이래… 수술비가 1억 원이라는데, 나 돈이 없어… 나… " 동생은 전화기 너머에서 흐느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