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은이 지친 몸을 이끌고 오씨 집안으로 돌아왔을 때, 하인들은 마치 역병에 걸린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차갑게 흘겨보았다.
오민욱의 여동생 오수연은 집사의 손에서 빗자루를 빼앗아 들더니, 배지은의 종아리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저리 가, 이 살인자야! 재수 없으니까 당장 꺼져!"
빗자루의 거친 부분이 종아리를 파고들어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배지은이 미간을 찌푸리고 낮게 신음하자, 오수연은 비웃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그냥 가연 언니의 몸이 약해서 너의 그깟 의술이랑 희귀 혈액형 하나 믿고 우리 집에 발 들인 거잖아. 까놓고 말해서 넌 그냥 도구, 걸어 다니는 혈액팩일 뿐이라고! 이제 가연 언니 뱃속의 아이까지 죽여놨으니 우리 오빠한테 뭐라고 변명할 건데?"
말을 마친 오수연은 경멸하듯 배지은을 향해 침을 내뱉었다
오씨 가문에 시집온 3년 동안, 배지은은 자신이 그저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았다.
여기서는 누구나 그녀를 차갑게 대하고 비아냥거릴 수 있었다.
배지은은 따지고 싶지 않았고, 따질 기력도 없어 조용히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13시간에 걸친 대수술과 그 와중에 진가연이 대출혈을 하는 바람에 배지은은 직접 수혈까지 했다. 수술이 끝난 지금, 그녀는 저열과 함께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겨우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거친 힘으로 침대에서 잡아 끌려 내동댕이쳐졌다.
끌려 내려오는 동안, 그녀의 머리가 침대 머리맡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고통에 몸을 움츠리며 눈을 뜬 배지은은, 자신을 끌어내린 사람이 오민욱인 것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민욱 씨, 왔어요? 가연 씨의 아이... 난 정말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오민욱은 배지은의 멱살을 움켜쥔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며칠 전에 가연이의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을 때, 너 나한테 뭐라고 했지? 모든 게 정상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아이가 죽었는데, 지금 나한테 최선을 다했다고?"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든 배지은의 눈가가 이미 빨갛게 달아올랐다. "민욱 씨, 난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어요."
진가연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3년 전에는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 산소 호흡기를 사용해야 할 지경이었다.
오민욱과 결혼한 3년 동안, 배지은은 밤낮으로 한의학과 서양 의학을 동원해 진가연을 돌봤고, 그 덕에 진가연의 몸은 거의 정상인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심지어 격하지 않은 운동도 가능할 정도였다.
단지 진가연이 오정호와 신혼 초에 잠자리를 갖다가 심장병이 발작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며칠 전 진가연의 건강 검진을 진행했을 때만 해도 모든 지표가 매우 좋았는데 불과 며칠 만에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배지은이 하루 휴가를 낸 사이, 진가연은 참을 수 없는 복통으로 고통스러워했고, 그녀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진가연 뱃속의 태아는 이미 생명 징후가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지은은 최선을 다해 진가연을 살리려 애썼고, 수술 중에 직접 수혈까지 했다.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설명을 들은 오민욱의 얼굴에는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왜 가연이는 깨어나자마자 울면서 네가 이상한 약을 먹였다고 하는 거지?!"
그 말에 배지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요? 그럴 리 없어요."
오민욱은 배지은의 멱살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그 변명은 직접 가연이 앞에 가서 해!"
오민욱은 더는 배지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진가연은 몸이 좋지 않아 임신 자체가 큰 모험이었다.
이번 일로 아이를 잃고 몸까지 상했으니, 앞으로 다시 임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터였다.
오민욱의 사촌 형과 진가연에게 아이는 유일한 소원이었는데, 배지은이 그 모든 희망을 산산조각 낸 것이다.
노부인은 분노에 차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자마자 오민욱에게 배지은을 병원으로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오씨 가문 사람들이 바로 그녀를 둘러싸더니 누군가 갑자기 그녀의 등을 세게 밀쳤다.
저열로 인해 힘이 빠진 배지은은 그대로 휘청이며 진가연의 병상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녀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려던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등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배지은이 분노에 찬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오민욱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그 눈빛에 배지은은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민욱 씨... 당신이..."
훤칠한 키의 남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리찍듯 노려봤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빛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워 더욱 차갑고 냉혹해 보였다.
입술을 굳게 다문 오민욱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배지은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죽은 물건을 보는 것처럼 아무 감정도 없었다.
그 순간, 배지은은 문득 자신이 너무도 우습게 느껴졌다.
3년간 진가연을 정성껏 돌보면, 그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오민욱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이 살인자!" 진가연의 어머니 진여린은 병상 옆에 앉아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너 같이 악독한 년은 우리 가연이가 잃은 아이 목숨에 죗값을 치러야 해!"
말을 마친 진여린이 손에 쥔 찻잔을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치자,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튀어 배지은의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곁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진가연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통곡소리는 너무나도 처절해,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배지은은 알고 있었다. 진여린의 등 뒤에 가려진 만족감으로 가득 찬 그 한 쌍의 눈동자가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차갑고 악독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민욱 씨, 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왜 가연 씨 배 속의 아이 심장이 갑자기 멎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시간을 조금만 주면 내가 꼭 밝혀낼게요." 배지은은 무릎을 짚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성적으로 설명했다. 누군가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진가연의 비통한 울음소리에 곧바로 묻혔다.
얼굴을 감싸고 고통에 몸을 떨며 흐느끼는 그녀가 배지은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은 동생,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아이는 내 유일한 아이인데, 내가 내 뱃속에 있는 아이를 해치기라도 했다는 거야? 분명 그날 지은 동생이 나한테 정체 모를 한약을 줬잖아. 내가 쓰다고 했는데도, 지은 동생은 내 몸에 좋은 거니 꼭 마셔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진가연은 눈물을 훔치며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중앙에 앉아 있는 노부인을 흘깃 쳐다보더니 입술을 꼭 깨물었다.
노부인은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배지은이 또 뭐라고 했느냐?!"
진가연이 고개를 들자 눈물이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그녀는 부서질 듯 연약한 모습을 완벽하게 연출했다.
"지은 동생이 제가 말을 듣지 않으면, 제 뱃속의 아이를 유산시켜 버리겠다고 했어요."
"지은 동생, 난 동생 말을 잘 들었잖아. 약도 꼬박꼬박 먹었는데, 왜 그랬어? 날 해치고 괴롭히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런데 왜 내 아이한테까지 그런 짓을 한 거야?"
"민욱 씨가 나한테 잘해주는 것을 동생이 질투하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여서 끊을 수 없는 정이 있다고."
진가연은 가슴을 찢는 듯한 울음을 터뜨리며 노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노부인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확인한 진가연은 만족스러운 듯 눈을 내리깔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연약한 척 진여린의 품에 쓰러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노부인의 지팡이가 배지은의 등에 가차없이 내리꽂혔다.
피할 새도 없이 지팡이를 맞은 배지은의 몸이 앞으로 휘청거렸다.
아무도 그녀를 부축하지 않았고, 그저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의 이마가 단단한 홍목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 핏줄기가 흐르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배지은은 본능적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고, 끈적한 피가 시야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오늘부로 병원 일은 때려치우고 가연이 수발이나 들어. 가연이의 남은 생에 두 번 다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네가 오늘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해 평생 속죄하며 살란 말이다!"
노부인의 말에 배지은은 다시 한번 현기증을 느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배지은은 이마를 감싸 쥐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누구 때문에 제 일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 드리지만, 가연 씨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의 심장이 왜 갑자기 멎었는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만, 그건 저와 무관한 사고입니다. 또한 저는 절대 환자에게 맞지 않는 약을 처방한 적이 없습니다."
"입만 살았구나!" 노부인의 지팡이가 다시 한번 배지은의 몸에 세게 내리쳤다.
"오민욱! 이게 바로 네가 들인 여자다! 어른한테 대들고, 사촌 형님을 해치기까지 하다니. 아주 대단하구나!"
배지은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려 했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오민욱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병원을 그만두고 평생 가연이의 옆에서 속죄하며 살든가. 아니면 이혼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