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의 낡은 골목.
주서윤은 골목 모퉁이에 서서 작은 마당이 딸린 2층 주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기가 바로 주씨 가문!
그녀를 버린 그곳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꿈에서 그리던 그곳으로 그녀가 다시 돌아 온 것이다.
주서윤은 2층짜리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질문들을 당장이라도 쏟아내고 싶었다.
'왜? 도대체 왜? 친부모는 나를 버렸던 걸까?'
그녀는 양부모들에 의해 C국, 그 지옥 같은 곳으로 팔려갔다.
그녀를 팔아 넘길 당시. 양부모들은 그녀의 이름은 주서윤이고 아무도 거두려 하지 않는 사생아라고 했었다.
친부모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녀는 C국,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막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쾅!"
둔탁한 소리가 바로 옆, 더러운 오물들이 가득한 골목에서 들려왔다.
골목 안쪽, 덩치가 크고 훤칠해 보이는 남자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그를 짓밟고 있었다.
"아직도 네가 주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꿈도 야무지네!
네 미쳐버린 엄마한테 약은 사줘야 할 거 아니야?"
남자는 발을 들어 바닥에 웅크린 남자의 손을 세게 짓밟았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바닥에 웅크린 남자는 억눌린 신음 소리를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에도 그는 비닐 봉지를 품에 꼭 감싸 안았다.
그 모습을 본 주서윤은 이유 없이 심장이 떨려왔다. 다음 순간, 그녀는 순식간에 왜소한 체구의 남자 뒤에 나타났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방금 전에 들렸던 소리보다 더욱 크고 선명했다.
"아악!"
남자는 발목에서 전해오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더니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죽고 싶어?"
주서윤이 남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남자는 고통에 바닥을 뒹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년이,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부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면 넌 죽은 목숨이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서윤은 발을 들어 남자의 이미 부러진 발목을 지그시 눌렀다.
"아아아악!"
극심한 고통에 남자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덮혔고 이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누님, 잘못했습니다. 저는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눈이 멀어 누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주서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꺼져."
남자는 부랴부랴 기어서 도망을 쳤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보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공손하게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주씨 가문에 관한 정보와 보스께서 당시 부모님과 떨어지게 된 경위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서류를 훑어보던 주서윤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20여 년 전, 주씨 가문의 3살난 어린 딸이 마당에서 놀다가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되고 말았다.
그 뒤, 백년을 이어 내려 오던 세가였던 주씨 가문은 급격히 몰락했다.
그녀의 어머니 강은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불치병에 걸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여태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한때 피아노 천재였던 그녀의 큰 오빠 주경연은 부모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재벌 가문에 들어가 온갖 수모를 겪는 데릴사위가 되었다.
한때 경찰의 자랑이었던 그녀의 둘째 오빠 주경한은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그녀의 셋째 오빠 주경훈은 둘째 오빠의 누명을 벗기고 잃어 버린 그녀를 찾기 위해 혼자서 어두운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최하층 건달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무너질 대로 무너진 집안이긴 했지만 그래도 매년 수 억원 이라는 큰 돈을 잃어 버린 막내 딸을 찾는 일에 쏟아 부었다.
주서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20년간 그녀를 지탱해 오던 증오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버려진 게 아니었어...'
심지어 가족들은 여태 그녀가 돌아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피로 얼룩진 얼굴, 이미 빛을 잃은 눈동자가 주서윤의 얼굴을 본 순간, 멈칫했다.
다음 순간, 그는 비틀거리며 주서윤을 향해 달려왔다.
"서윤아!"
"너 내 동생 서윤이 맞지! 나야! 셋째 오빠!"
주서윤은 멍하니 자리에 멈춰 섰다. "셋째 오빠?"
주경훈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가 네 오빠야.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를 찾았는지 알아? 다행이야! 드디어 돌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