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남자의 팔을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하게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도련님, 작은 사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저희 아랫사람들이 나중에 노마님을 무슨 낯으로 뵙겠습니까! 돌아가신 노마님께서도 하늘에서 편히 눈 감지 못하실 겁니다!"
할머니?
집사의 말을 들은 전시혁은 마음이 흔들리더니 손에 힘을 조금 풀었다.
여청서는 그 틈을 타 전시혁의 손을 떼어내고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댈 때까지 뒤로 물러났다.
집사는 전시혁이 마음이 흔들린 것 같자 이 기세를 몰아 설득에 나섰다. "도련님, 오늘이 도련님과 작은 사모님이 이혼하는 날이잖아요. 오늘 이후로 사모님을 다시 볼 일 없을 겁니다! 도련님, 사모님의 어머니가 노마님의 은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한 번만 사모님을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진정하십시오!" 집사의 말을 들은 전시혁은 빠르게 마음을 가라앉히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잠옷을 걸쳤다. 얇은 입술을 살짝 벌린 그의 목소리는 천년 빙산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혼 서류는 바람이한테 보내라고 할 테니까, 사인하고 당장 꺼져. 내가 돌아왔을 때, 네가 여기 있는 꼴 안 보게."
말을 마친 전시혁과 집사는 차례로 방을 나섰다.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여청서의 고막을 울렸다. 가슴을 움켜쥔 그녀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의 머리가 윙윙 울렸다.
고개를 아래로 떨군 그녀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지더니 온몸에 붉은 자국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방금 전 숨이 막혀오는 느낌이 너무 강해 몸에 있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야 정신이 든 여청서는 온몸의 부품이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불편했다.…
……
여청서는 드레스룸에서 여자 옷을 찾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옷은 모두 남성용 흰색 셔츠와 검은색 정장뿐이라 답답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아무 셔츠와 바지를 입었지만, 너무 커서 바짓단이 바닥에 끌렸다.
몸의 통증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데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여청서는 힘겹게 소파로 걸어가 앉더니 눈을 감았다. 곧바로 그녀의 것이 아닌 기억이 밀려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여청서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원주의 생전 기억을 모두 훑어본 후,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나연에서 여청서로 다시 태어났다.
원주는 친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무능한데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으며, 본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재벌가 영애였다. 그리고 전시혁을 깊이 사랑했다.
똑똑.
누군가 드레스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안에 계십니까?"
여청서는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문을 열었다. 그녀의 앞에 키가 크고 차가운 남자가 서 있었고, 손에는 서류가 들려 있었다.
"바람이구나." 여청서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어 눈앞의 남자와 기억 속의 이름을 매치했다.
바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와 펜을 건넸다. "사모님, 전 회장님 지시로 오셨습니다. 사모님이 떠나는 것을 감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사모님과 전 회장님의 이혼 계약서입니다. "
여청서는 바람의 손에 있는 이혼 계약서를 보고 집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늘은 원주와 전시혁의 결혼기념일이자 2년의 결혼 생활이 끝나는 날이었다.
고작 한 시간 만에 이혼 서류가 완성되었다니. 전시혁이 여청서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계약서를 건네받은 그녀는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망설임 없이 '여청서'라고 사인했다.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됐어." 여청서는 펜 뚜껑을 닫고 펜과 서류를 바람에게 건넸다.
바람은 여청서가 이렇게 망설임 없이 서류에 사인할 줄 몰라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전 회장님은 그에게 서류를 건네기 전, 여청서가 서류에 사인하지 않으면 강제로 지장을 찍게 하라고 했다.
"사모님, 서류 내용을 확인하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 바람은 서류를 건네받지 않고 물었다.
여청서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대답했다.
"안 봐도 돼.""이혼 후, 사모님이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바람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
여청서는 바지를 추켜 올리고 고개를 들어 싱긋 미소 지었다. "궁금할 게 뭐 있어? 안 봐도 뻔하지. 결과는 두 가지밖에 없겠지. 하나는 빚더미에 올라 파산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빈손으로 쫓겨나는 거. 어떤 결과든, 그 사람 밑에 있는 쟁쟁한 변호사들한테는 일도 아니잖아."
바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혼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사모님, 전 회장님께서는 사모님을 그저 빈손으로 내보내라고만 하셨습니다.
""그거 참 고맙다고 전해줘." 여청서는 개의치 않았다. 원주는 전시혁을 깊이 사랑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만나자마자 목을 졸라 죽이려 드는 이런 가정 폭력범은 사양이었다. 어렵게 다시 얻은 목숨이니 소중히 여겨야 했다.
바람의 시선이 여청서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에 멈췄다.
"사모님, 의사를 불러드릴까요?"
바람의 말에 여청서는 잠시 멍해지더니 목에 있는 붉은 자국을 떠올리고 손을 들어 만졌다.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느낌이 다시 밀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안 죽어.""그럼 사모님, 어서 짐을 정리해 주십시오." 바람의 목소리는 사무적인 냉기로 가득했다.
여청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지를 추켜 올린 채 맨발로 침실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전시혁은 여청서를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방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참을 걸은 후에야 그녀의 방에 도착했다.
원래 창고였던 이곳은 여청서가 전시혁과 결혼하고 들어온 후, 그녀의 침실이 되었다. 여청서는 문을 열고 바짓단을 끌며 좁은 통로를 지나갔다.
방은 아주 작았고, 침대와 화장대만 놓아도 몸을 돌릴 공간이 없었다.
여청서의 물건은 사실 아주 적었다. 화장대 위에 어지럽게 놓인 화장품 외에 제대로 된 옷도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아무 옷이나 캐리어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짐 다 챙겼어.
나 간다. 바람, 두 번 다시 보지 말자고!" 여청서는 쿨하게 캐리어를 끌고 떠나려 했다.
"어머, 언니?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정장을 입은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하이힐이 대리석 바닥을 밟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날카롭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