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채아는 3년 전 민씨 가문에서 되찾은 진짜 딸로, 할아버지와 곽씨 가문의 어르신이 전우였던 인연으로, 손주들의 혼약을 미리 맺었던 터였다.
민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혼약에 따라 곽씨 가문의 후계자인 곽민준과 결혼했다.
공교롭게도, 곽민준은 민채아가 7년 동안 짝사랑해온 남자였다.
그녀는 이것이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가혹한 따귀를 날렸다.
지금,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민유진은 곽민준의 품에 안겨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한 모습이었다.
현장에 울려 퍼지던 감미로운 결혼 행진곡이 민채아의 등장으로 인해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로 변조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민채아에게 집중되었다.
민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 번진 미소도 그 순간 굳어졌다.
"아니, 민채아가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
"민채아한테는 비밀로 하자고 하지 않았어?"
"대체 누가 소식을 흘린 거야? 이제 큰일 났네."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곽민준의 아내인 그녀가 지금은 불청객이 되어 있었다.
곽민준은 민채아를 발견한 순간,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곧바로 평소와 같은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민유진을 낮은 목소리로 달래고 신부의 손을 들러리에게 맡긴 후, 긴 다리를 휘저으며 곧바로 민채아 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몸에서 은은히 풍기는 익숙한 삼나무 향기가 민채아를 감쌌다.
그녀가 한때 가장 매료되었던 향기였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곽민준이 입을 열고 처음 한 말은 변명도 해명도 아닌, 날카로운 추궁이었다.
민채아는 7년 동안 짝사랑해온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깊게 파인 눈썹 뼈와 얇은 입술.
그녀는 갑자기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오면 안 되는 곳이야?"
민채아의 목소리는 마치 오늘 날씨라도 묻는 듯 무심하고 가볍게 들렸다. "내 남편이 결혼식을 올리는데, 내가 축하하러 오면 안 되는 거야?"
곽민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것은 그가 인내심을 잃기 직전의 전조였다.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 민채아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고 어두운 복도로 끌고 갔다.
복도에 도착한 그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민채아의 손을 놓아 주었다.
"민채아, 제발 말썽 피우지 마. 유진이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곽민준은 정장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지만 불을 붙이지 않고 초조하게 손가락 사이에서 만지작거렸다.
"간암 말기래. 의사 말로는 앞으로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어."
민채아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냉정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유진이의 마지막 소원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와 결혼하는 거야." 곽민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는 당연하다는 듯한 기색이 묻어났다.
"이 결혼식은 가짜야. 유진이한테 마지막 추억을 선물해 주기 위해 연극을 하는 것뿐이라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며 마치 은혜를 베푸는 양 말을 이었다. "민채아, 그저 형식적인 결혼식일 뿐이야. 죽음을 앞둔 사람과 따질 필요가 있어?"
'따진다고?'
민채아는 곽민준의 어깨 너머로 멀리 잔디밭에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하객들을 바라봤다.
그녀의 어머니 진이화는 민유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아버지 민유찬은 옆에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민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빠 민정우는 민유진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고 있었다.
분명 민채아와 피를 나눈 가족들이지만, 그녀 몰래 양녀의 뜻을 따라 민채아의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는 연극을 벌이고 있었다.
마치 그녀만 가족이 아닌 것처럼, 그녀만 빼놓은 채로 말이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민채아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씁쓸함을 억누르며 곽민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민채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곽민준, 가짜 결혼식이라면 왜 나한테 비밀로 한 거야?"
곽민준은 입술을 꼭 깨물더니 눈빛에 짜증이 살짝 스쳤다.
"너한테 말했으면 네가 흔쾌히 동의했을 까? 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랐어. 게다가 유진이는 몸이 약해서 어떤 자극도 받으면 안 돼. 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민유진이 자극을 받을까 봐, 자신의 아내를 바보처럼 속였다는 말인가?
알고 보니 곽민준의 마음속에, 자신이 아내의 여동생을 위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의 법적 아내인 민채아는 그 사실을 알 권리조차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저 언제든지 분위기를 망칠 수 있는 위험 요소일 뿐이었다.
"곽민준, 내가 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나한테 비밀로 할 생각이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러자 곽민준이 주저함 없이 바로 대답했다. "유진이가 죽을 때까지."
"그럼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유진이가 죽을 때까지는 어떻게 할 셈이야?" 민채아가 다시 물었다.
곽민준의 목소리는 유난히 평온했다. "난 유진이의 남편으로서 마지막 날들을 함께 보낼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민채아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터뜨렸다.
'하. 곽민준은 다른 여자의 남편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곽민준의 법적 아내인 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유진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넌 여전히 곽 사모님이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곽민준이 조용히 덧붙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민채아는 고개를 들어 신처럼 잘생긴 얼굴을 가진 남자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지난 7년 동안, 그녀는 곽민준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빛나는 부분을 가렸다.
곽민준의 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가장 복잡한 재료를 넣은 보양 수프를 끓이는 법을 익혔고,
그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그녀는 온 세상을 뒤져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을 구해 내느라 애썼다.
그녀는 차가운 돌도 언젠가는 온기를 머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곽민준의 마음이 한겨울의 빙산과 같다 해도, 그녀는 자신의 체온으로 한 모퉁이를 녹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돌이 따뜻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이 남자가 자신의 모든 부드러움과 자비를 다른 여자에게 남겨두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여자를 위해, 그는 주저 없이 민채아의 존엄성을 짓밟을 수 있었다.
"곽민준, 당신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야."
민채아는 그 순간 갑자기 한없이 지쳐 버렸다.
오장육부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가 욱신거리는 아픔이 밀려왔다.
그녀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고 곽민준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우리 이혼해."
그녀의 말이 떨이지자마자, 담배를 쥐고 있던 곽민준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