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던 내 강남의 삶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말이었다는 첫 번째 단서는 립스틱 자국이나 낯선 향수 냄새가 아니었다. 가족 공용 아이패드 화면에 순진한 얼굴로 떠 있던 카톡 메시지 하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던 참이었다. 공기 중엔 아직 레몬향 세제 냄새가 맴돌았다. 유명 건축가인 남편 안서준은 부산으로 출장 중이었다. 열여섯 살 아들, 민준이는 위층에서 수능 공부를 하고 있을 터였다. 집 안은 식기세척기의 나지막한 소리만 웅웅거릴 뿐, 고요했다.
아침 조깅을 위해 날씨나 확인할까 싶어 주방 아일랜드 식탁에 놓인 아이패드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화면엔 알림 배너가 떠 있었다. 내 폐 속 공기를 얼음으로 만들어 버린 메시지 미리보기였다.
모르는 번호: 어젯밤은 진짜 미쳤어요. 그 호텔 방이 잊히질 않네요. 2차전 빚진 거 알죠? 조만간…
심장이 미친 듯이 갈비뼈를 두드렸다. 덫에 걸린 새처럼 퍼덕였다.
엄마의 본능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민준이었다. 내 아들. 내 착하고, 가끔 퉁명스럽긴 해도 결국엔 착한 내 아들. 설마… 누구랑 엮인 건가? 연상이랑? 그 생각만으로도 머리 위로 차가운 진흙탕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호텔 방이라는 단어는 너무 어른스럽고, 추잡하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홈바 의자에 주저앉았다. 민준이는 착한 아이지만, 열여섯 살이다. 열여섯 남자애들은 호르몬에 이끌려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머릿속은 민준이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의 나이 많은 포식자 같은 여자를 상상하며 복잡하게 돌아갔다.
조언이 필요했지만,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순 없었다. 수치심이 너무 컸다. 이건 내 실패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21세기의 절박하고 익명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행동을 했다. 맘카페에 접속했다.
가끔 십대 자녀 문제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 눈팅하던 비공개 육아 게시판을 찾았다. 일회용 아이디로,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최대한 모호하게 썼다.
“공용 기기에서 야릇한 메시지를 봤어요. 고등학생 아들(16세)이 연상과 부적절한 관계인 것 같아요. 메시지에 ‘호텔 방’ 언급이 있었어요. 너무 무서운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조언 좀 부탁드려요.”
댓글은 금방 달렸다. 대부분 동정하는 내용이었다. 다그치지 않고 대화하는 법에 대한 조언들. 흔한 육아 게시판의 반응이었다.
그러다 댓글 하나가 내 배를 돌덩이처럼 짓눌렀다.
User4815162342: “잠깐만요. 아들이라고 단정하시는 거예요?”
나는 화면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무슨 뜻이지? 당연히 아들이지. 그럼 누구란 말인가?
방어적인 태도로 답글을 달았다. “네. 그럼 누구겠어요?”
또 다른 유저, ‘서초고스맘’이 끼어들었다.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세요. 신중하게요. 말투를 보세요. ‘2차전 빚진 거 알죠?’ 이게 십대 말투로 들리나요? 아니면 주도권을 쥔 사람 말투로 들리나요?”
방 안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스크롤해 올렸다. 내가 타이핑했던 단어들을 다시 읽었다. 빚진 거…
Redditor_JaneDoe: “그리고 호텔 방이요. 대부분 호텔은 체크인할 때 신용카드랑 21세 이상 신분증이 필요해요. 서점에서 알바하는 16살짜리가 밀회를 위해 호텔 방을 잡을 수 있을까요?”
숨이 턱 막혔다. 아니. 그럴 리 없다. 민준이 체크카드는 내가 직접 설정한 하루 5만 원 한도가 걸려 있었다. 민준이는 그 문제로 항상 불평했다. 호텔 방은커녕, 잔소리 없이는 영화관에서 콜라 한 잔도 못 사 마시는 애였다.
머릿속은 부정의 안개로 자욱했다. 말도 안 돼. 이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망상을 펼치는 낯선 이들일 뿐이다.
하지만 의심의 씨앗은 이미 심어졌다. 작고 독이 든 씨앗이었지만, 벌써 싹을 틔우고 있었다. 댓글은 계속해서 달렸다. 내가 공들여 쌓아 올린 현실을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차갑고 냉정한 논리의 폭포수였다.
“글쓴님, 집에 다른 남자가 있나요?”
그 질문은 비난하듯, 음란하게 화면에 떠 있었다. 내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맴돌았다.
안서준.
내 남편. 매일 아침 침대로 커피를 가져다주는 남자. 잡지에서 이상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칭송받는 남자. 아들 축구 경기 시간은 꼭 지키는 비전 있는 건축가. 내가 20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
그 생각은 너무 터무니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쓰디쓴, 공허한 소리.
하지만 게시판은 이미 자체적인 생명력을 얻고 있었다. 댓글러들은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퍼즐을 맞추는 탐정들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내 발밑을 무너뜨리는 베스트 댓글이 나타났다.
LegalEagle88: “글쓴님, 가지 이모티콘은요? 그건 그냥 야릇한 정도가 아니에요. 특정… 남성용 발기부전 치료제랑 같이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그 파란 약이요. 16살 남자애는 그게 전혀 필요 없죠. 하지만 40대 남자가 젊은 여자를 따라가려 한다면…”
화면이 흐려졌다. 피가 차갑게 식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오싹한 냉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실데나필. 비아그라. 파란 약. 가지 이모티콘.
그럴 리 없어.
안서준.
시야가 끔찍할 정도로 새로운 선명함으로 화면에 고정되었다. 터무니없던 생각은 숨 막히는 두려움으로 변했다. 속이 뒤틀렸다. 너무 강력한 메스꺼움에 몸을 숙이지 않으려고 카운터 가장자리를 꽉 잡아야 했다.
그는 부산에 있어. 컨퍼런스에 갔다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문 옆 그릇에서 차 키가 짤랑거렸다.
“지윤아? 나 왔어! 서프라이즈!”
서준의 따뜻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현관에 울려 퍼졌다. 하루 일찍 온 것이었다.
그는 주방으로 걸어 들어오며 잘생긴 얼굴에 넓고 카리스마 있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출장 복장 그대로였다. 딱 맞는 재킷에 비싼 청바지. 완벽한 집으로 돌아온 성공한 남자의 완벽한 모습.
“일찍 끝나서 우리 사랑하는 두 사람 보고 싶어 못 참겠더라고.” 그는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나를 끌어안았다. 그에게서는 비싼 향수 냄새와 희미하고 소독된 비행기 냄새가 났다. 그는 내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보고 싶었어.”
그는 내 얼굴을 살피며 미소를 거두었다. “어, 괜찮아? 귀신이라도 본 사람 같네.”
그는 유명한 부산 초콜릿 가게의 작고 우아한 상자를 들어 보였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다크 초콜릿 카라멜 사 왔어.”
그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수천 번의 저녁 식사 테이블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그 따뜻한 갈색 눈. 내 남편의 눈. 내 아이의 아버지의 눈.
거짓말쟁이.
나는 뻣뻣하고 낯선 얼굴로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피곤해서. 힘든 하루였어.”
그는 초콜릿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내 뒤에서 팔을 감싸며 어깨에 턱을 기댔다. 평소라면 위안이 되었을 그의 손길이 이제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우리 아기, 힘들었구나. 어서 올라가서 뜨거운 물에 목욕해. 아래는 내가 다 정리할게. 나중에 올라가서 등 마사지도 해줄게.” 그는 나를 잘 알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절박한 시험처럼, 잠시 더 그에게 안겨 있었다.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심장 박동이 내 등 뒤에서 꾸준하고 기만적인 북소리처럼 울렸다.
“아니, 괜찮아.” 나는 부서지기 전에 몸을 빼내며 속삭였다. “돌아와서 기뻐.”
그는 내 어깨를 꽉 쥐었다.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어서 가, 내가 하라니까. 민준이한테 인사하고 올게.”
그가 위층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그가 카운터 옆에 둔 서류 가방으로 걸어갔다. 손이 떨렸다. 의심하는 나 자신이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이 사람은 서준이다. 내 서준.
언젠가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내 폰 배터리가 나갔을 때, 그는 자기 폰을 건넸었다. “자기야, 내 거 써. 뭐든 확인해 봐.” 그는 숨길 게 없었다. 그의 폰은 업무 이메일과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로 가득한 열린 책이었다.
나는 억지로 멈췄다. 나는 편집증에 걸린 거다. 익명의 인터넷 악플러들 때문에 미쳐가고 있었다.
그를 위해 짐을 풀기로 했다. 평범한 아내의 일. 다시 평범함을 느끼기 위한 방법. 나는 그의 여행 가방을 세탁실로 가져갔다. 메인 수납공간의 지퍼를 열고 그의 셔츠와 정장을 꺼냈다. 익숙한 그의 향수 냄새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앞주머니 지퍼를 열었다.
손에 작고 네모난 것이 스쳤다. 은박 포장지.
나는 그것을 꺼냈다.
세상이 멈췄다.
콘돔 포장지였다. 나와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터무니없이 비싼 고급 브랜드. 한 달 전 민준이 빨래 바구니 바닥에서 발견하고는 십대의 호기심이려니 하고 넘겼던 바로 그 브랜드라는 사실에 새로운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무릎에 힘이 풀렸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은박 포장지가 손바닥에 차갑게 닿았다. 방이 빙빙 돌았다. 폐 속의 모든 공기가 빨려 나간 것 같았다. 커뮤니티 댓글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40대 남자가 젊은 여자를 따라가려 한다면…
퍼즐 조각들이 역겹고 결정적인 소리를 내며 맞춰졌다.
민준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민준이가 아니었다.
내 남편이었다.
카운터에 둔 내 폰이 윙 울렸다. 커뮤니티에서 온 새 알림이었다. 나는 통제 불능으로 떨리는 몸을 이끌고 폰으로 기어갔다.
LegalEagle88에게서 온 쪽지였다.
“참고로 저 이혼 전문 변호사예요. 직감적으로 남편이라고 느끼신다면, 그 감을 믿으세요.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절대 추궁하지 마세요. 증거를 모으세요. 그리고 그놈의 세상을 잿더미로 만드세요.”
시야가 선명해졌다. 메스꺼움은 물러가고, 그 자리를 빙하 같은 평온이 채웠다. 터져 나오려던 눈물은 눈물샘에서 얼어붙었다.
나는 손에 든 콘돔 포장지를 보았다. 위층에서 기만적이고 교활한 아버지의 인사를 받고 있을 아들을 생각했다. 내 인생의 20년, 거짓말을 생각했다.
나는 폰 잠금을 풀었다. 이제 손가락은 흔들리지 않았다. 커뮤니티 앱으로 돌아가 변호사에게 답장했다.
“방법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