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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색은 뼈를 깎는 칼과 같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수많은 고난들도 견디고 넘어섰다.하지만 가여운 한낫 여자에게 굴복하는 날이 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분명히 말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냥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목차

제1화 이혼하자

한밤중, 조소희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성주혁은 저녁에 잡힌 외부 접대 자리에서 술을 꽤 마셨는지 기분이 한껏 올라 있었고, 밤새 다섯 번이나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조금 버티기가 버거웠다.

미리 준비해둔 콘돔은 네 번째 쯤에 이미 모두 바닥이 났다.

그럼에도 성주혁은 마지막까지 눈을 붉힌 채 그녀를 꽉 붙잡고선 아무런 장벽 없이 밀고 들어왔다. 거칠고 격렬했으며, 거의 폭주에 가까운 행위였다.

피부가 직접 맞닿는 감각은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쾌감을 안겨주었지만,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스물여덟의 성주혁은 한창 전성기에 있었고, 사업이 잘 풀리는 만큼 욕구도 그에 못지않게 강했다.

결혼한 지 벌써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줄곧 피임에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조소희도 처음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지만, 지난 6개월 동안 그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녀는 성주혁과 자신의 피를 나눈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성주혁의 얼굴은 어디에 갖다 놔도 한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훌륭했고, 침대 위에선 더 말할 나위 없이 능수능란했다. 그리고 가끔씩 던지는 달콤한 말들은 사람의 마음을 홀리기에 턱도 없이 충분했다.

1년 전, 조소희는 성주혁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확실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마음은 처음의 냉담함과 거부감에서 점점 그에 대한 좋아함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주혁은 오직 침대 위에서만 그녀에게 열정을 보일 뿐, 평소엔 늘 싸늘한 태도로 일관했다.

"약 꼭 챙겨 먹어."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복잡한 생각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임신이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응..." 그녀는 실망과 체념이 뒤섞인 채, 힘없이 대답했다.

요 며칠은 마침 그녀의 배란기였다. 하지만 성주혁은 술을 마신 상태였기에 혹여 임신이 된다고 해도 그 아이는 낳을 수 없을 터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성주혁의 말은 그녀의 마음에 가시를 꽂았다.

성주혁은 잠옷을 걸쳐 입고 욕실로 향했다.

조소희는 그의 훤칠한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시선을 돌렸다.

바로 그때, 거슬릴 만큼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조소희는 성주혁의 핸드폰을 들었고 그 화면에는 '예진'이라는 이름이 반짝이고 있었다.

강예진은 성주혁의 비서였다. 손짓 하나에도 부드럽고 섬세한 여인의 분위기가 묻어났고,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든 한 번쯤은 빠져들 법한 달콤한 경성 말투를 쓰는 여자였다.

소문에 따르면, 강예진은 6년 전에 경성에서의 고액 연봉 일자리를 거부하고 강성에 있는 성씨 그룹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오직 성주혁의 곁에 있기 위해서였고 둘은 겉으로는 상사와 부하의 관계였지만, 실상은 연인 관계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기다란 손이 쑥 뻗어와 조소희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곧장 전화를 받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예진아."

말 끝에 담긴 감정은 그렇게도 달콤하고 환희에 차 있었다.

조소희의 가슴은 또다시 구멍이 뚫린 듯 싸늘하게 시려왔다.

성주혁은 그녀와 통화할 때면 늘 따분한 말투였고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부드럽게 말했던 적이 없었다.

"주혁아, 지금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 나 좀 구해줘... 나 지금 제로 클럽이야..." 성주혁이 바로 조소희 옆에서 전화를 받았기에, 강예진의 떨리는 목소리는 고스란히 그녀의 귀에도 들려왔다.

"지금 당장 갈게. 그리고 근처에 사는 친구를 먼저 보낼 테니까, 우선 문 잠그고 있어. 신고는 했어?" 성주혁은 얼굴을 잔뜩 굳힌 채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급하고도 진지했다.

조소희는 분노로 온몸이 떨려왔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한 달 전, 조소희는 방송국 동료들과 북부 교외로 촬영을 나갔다가 반대편에서 역주행해 오던 대형 트럭을 피하려다 차가 도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모든 사람이 크게 다쳤다.

그녀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 피를 흘렸고,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은 채 성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회식 중이라는 이유로,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온 그녀에게 전화할 힘은 있는 걸 보니 죽지는 않을 것 같다며 냉정하게 끊어버렸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술에 취한 상태로도 강예진이 위험하단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려 하고 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급히 옷을 챙겨 입은 성주혁은 드레스 룸을 나올 때조차도 다정한 목소리로 강예진을 달래고 있었다. 조소희는 휴대폰 너머에서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은은하게 흐느끼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조소희는 성주혁보다 한발 앞서 현관문 앞을 가로막았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너 술 마셨잖아. 지금 운전하면 안 돼."

"지금 질투하는 거야, 아니면 나를 걱정하는 거야?" 성주혁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조소희는 조금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가 걱정돼서 그래."

"난 그런 가식 따윈 필요 없어." 성주혁은 갑자기 손을 놓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 조소희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고 중심을 잃은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곧이어,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성주혁은 그대로 집을 나섰다.

순간, 넓은 집 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그녀는 문득 지난 3년간의 결혼 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스며든 쓸쓸함과 서러움은 서서히 번져나갔고, 그 아픔은 마치 뼛속까지 파고들며 그녀를 옥죄는 듯했다.

조소희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고 눈가도 이미 붉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참아냈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다리에 감각이 희미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침실로 돌아가는 대신 결국 거실 소파에 웅크린 채 눈을 감고 머릿속의 복잡한 감정을 견뎌냈다.

그때, 또다시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

혹시 성주혁인가 싶어, 조소희는 망설임 없이 거실에서 침실로 달려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소희야! 네 그 쓰레기 남편이 강예진 때문에 제로 클럽에서 사람을 때렸어! 술병으로 상대방 머리를 그대로 내리찍더니 피가 막 뚝뚝 흐르는데, 정말 끔찍해서 못 봐주겠더라!"

휴대폰 너머에서 다급하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절친 변지연이었다.

'아..." 조소희는 호흡이 조금 가빠졌지만, 애써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녀는 성주혁이 강예진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때린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을 했다고 해도 딱히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제로 클럽은 강성에서 가장 고급 프라이빗 클럽이자, 성주혁이 친구들과 자주 들르는 단골 장소였다.

"어떤 취객이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강예진한테 집적댔다나 봐." 변지연이 계속 말을 이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 말하길, 강예진 가슴엔 온통 키스 자국이었고 팬티까지 벗겨져 있었대! 다행히 강예진은 똑똑하기라도 해서 화장실 문을 잠그고 숨어있었대..."

변지연은 계속 흥분해서 말을 쏟아냈지만, 조소희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전화 한 통에 조소희의 잠 기운은 싹 달아났고 휴대폰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마디는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변지연 앞에서 보였던 침착함은 그녀가 얼마 남지 않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녀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다시 휴대폰을 열었지만, 인터넷엔 이미 성주혁이 제로 클럽에서 사람을 때렸다는 기사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랑을 위해 분노의 주먹을 날린 순정남'이라느니, '성씨 그룹 부대표와 여비서의 은밀한 연애'라느니... 모든 기사는 성주혁을 사랑 앞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순정 재벌'처럼 포장하고 있었다.

조소희는 그 기사들을 볼수록 더 화가 났고, 결국 휴대폰을 내던지곤 탁자 위의 스탠드 조명을 꺼버렸다.

그렇게 어둠 속에 잠긴 그녀는 오히려 머릿속이 점점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성주혁은 그녀와의 결혼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클럽에서 다른 여자들과 어울려 다녔다. 강예진은 성주혁의 편애를 믿고 점점 더 노골적으로 그녀를 자극하며 선을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이 겉부터 속까지 다 썩어버린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소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고, 화면에 찍힌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성주혁은 침실로 가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조소희는 천천히 일어나 서재 문 앞에 멈춰 섰고, 심호흡을 길게 들이마신 후 노크를 했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몇 번을 더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그녀는 결국 스스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들어오래?" 성주혁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표정은 즉시 어두워졌다.

조소희는 두 손을 맞잡은 채, 그의 차가운 시선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이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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