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권수연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화장이 번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평소 지각을 할지언정 립스틱 색깔과 옷을 맞춰 입던 그 섬세한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박씨 가문은 두 사람이 결혼한 날부터 손자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2년이 지나도 권수연의 배는 아무 소식도 없었고, 시어머니의 얼굴빛은 날이 갈수록 차갑고 어두워지기만 했다.
권수연은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고 완전히 멍해졌다. 이것은 단순한 진단서가 아니라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최종 판결문이었다.
"평생 불임."
법원에서 나온 박민규는 안색이 어두운 권수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집에 데려다줄까?"
30분 넘게 이어진 울음을 겨우 그쳤지만, 짙게 밴 콧소리는 그녀가 얼마나 오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손을 저었다. "먼저 가."
이미 결정된 일이라,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박민규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권수연의 어깨를 걱정스럽게 잡았다. "괜찮아?"
권수연은 박민규를 올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퉁퉁 부은 눈과 짙게 밴 콧소리는 그녀의 미소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4년 동안 사랑한 남자와 이혼했는데, 내가 괜찮을 것 같아?"
박민규는 그녀의 물음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수연아, 미안해..."
권수연은 아무 대꾸 없이 손을 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저 남자는 이제 '미안해' 아니면 '엄마가...' 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른다.
'내가 저런 마마보이를 4년이나 사랑했다니.'
지금 그녀의 가방 안에는 방금 발급받은 이혼 증명서가 들어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를 완전히 놓아주지 못했다.
남자는 권수연이 길가에서 택시를 잡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후에야 무음으로 설정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7통이 있었다.
그가 전화를 걸기도 전에, 어머니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박민규는 한 손에는 방금 받은 이혼증명서를,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꼭 쥔 채 통화를 했다. "이혼했어요."
그는 어머니가 무엇을 물어볼지 알고 먼저 입을 열었다.
김정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고, 잘됐네. 이렇게 오래 끌다니. 정말 골치 아픈 여자야."
박민규는 드물게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 다른 할 말 없으세요?"
다른 일이 없다면, 그는 술이나 마시러 가고 싶었다.
"할 말이 있지. 은정이가 너한테 말 안 했니?오늘 오후 2시 비행기로 도착한다고 했는데 네가 직접 공항에 마중 나가렴. 순복 아줌마한테 은정이가 좋아하는 간식 만들어 놓으라고 했어."
휴대폰 너머에서 김정희는 오늘이 겹경사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첫째로, 마음에 들지 않던 권수연이 드디어 아들 곁에서 물러났고, 둘째로,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 후보가 귀국해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정식으로 박씨 집안에 들어오는 건 이제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알겠습니다." 박민규는 이혼 증명서를 조수석 수납함에 던져 넣고 김정희가 더 이상 잔소리하지 못하게 전화를 끊었다.
한편, 권수연은 집에 돌아왔다.
아니, 이제 더 이상 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제부터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는 아직도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권수연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에 박민규와 사랑에 빠졌다. 사업을 하는 박씨 가문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권수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권수연은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성격이 활발하고 사랑스러웠으며 외모도 출중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한 그녀는 상사의 인정을 받으며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박민규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박씨 가문은 권수연이 가문의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박민규의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에 권수연이 박씨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박씨 가문의 고루한 사고방식과 박민규의 나약함을 증오했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바로 아쉬움과 미련이었다.
박민규는 그녀가 4년 동안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였으니까 말이다.
권수연은 침실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으로 이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이불과 베개 사이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박민규의 익숙한 향기에 휩싸이자, 오히려 잠은 더욱 싹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 바람을 쐴 때, 작은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와 반쯤 타다 만 담배를 발견했다. 분명 박민규의 것이었다.
권수연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깊게 빨아들인 후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집안 곳곳에는 박민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소파에서 키스를 나눴고,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했으며, 발코니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야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올해 겨울에는 권수연의 고향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갈 때쯤, 권수연은 이미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었다.
그녀는 그날 밤 서둘러 짐을 싸고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든 상관없었다. 박민규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권수연은 기차역으로 가서 매표소의 대형 전광판 앞에서 5분 동안 고민한 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멀리 떨어진 지명을 선택했다. 남무
한 시간 후, 권수연은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 안에서 그녀는 사직서를 작성했고, 가장 친한 친구인 강유리에게 이혼 소식을 간단히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무려 10시간 동안 좌석에 앉아있던 권수연은 기차에서 내릴 때 온몸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뻐근한 몸을 서서히 풀어가며 사람들을 따라 역을 빠져나왔다.
역 밖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과 승객을 불러 태우려는 불법 택시 기사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시끌벅적했지만, 그 와중에도 생생한 생활의 활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작은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 그녀는 깔끔한 투룸을 월세 18만원에 계약했다. 정말 저렴한 가격이었다.
남무는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였다. 권수연은 먼저 주변을 둘러보며 동네 환경을 익혀보기로 했다.
생필품을 한가득 구매해 집에 돌아왔을 때는 벌써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은 후였다.
하지만 권수연은 대충 일을 처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무리 지쳐 기운이 빠져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을 제대로 정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에 편히 잘 곳조차 마련되지 않을 테니까.
모든 정리를 마쳤을 때, 이미 자정이 넘었다. 권수연은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 두 봉지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무거운 쓰레기를 힘겹게 버리고 막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희미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밤중에 흘러나오는 그 울음소리는 으스스할 정도로 섬뜩하게 느껴졌다.
'설마 이 작은 동네에 귀신이라도 있는 걸까?' 권수연은 순간 겁에 질려 걸음을 재촉했다.
10미터 정도 달렸을 때,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기 울음소리가 방금 쓰레기를 버린 곳 근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고등 교육까지 받은 터라 귀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가슴 한구석이 불안하고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고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쓰레기통 왼쪽 그림자에 천으로 감싼 물건이 있었고, 아기 울음소리는 그곳에서 들려왔다. 권수연이 휴대폰 불빛을 가까이 비추자, 얼굴이 새빨개진 갓난아기가 울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크지 않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력이 다한 듯했다.
분명히 버려진 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