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필요하면 저 새우 요리, 전부 다 먹어."
4년을 만난 재벌 남자친구는 내가 갑각류 알레르기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잔인하게 명령했다.
여동생의 뇌수술비가 급했던 나는 토악질을 참으며 꾸역꾸역 새우를 삼켰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나를 꽃뱀 취급하며 파티장에서 내쫓았다.
"너도 결국 돈 밝히는 천박한 여자였어."
그가 나를 조롱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친 여동생은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나는 그날로 그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동생의 묘지기 일을 하며 숨어버렸다.
그런데 나를 버렸던 그가, 내가 다른 의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내 여자한테서 떨어져! 윤반야는 내 아내야!"
그가 내 은인인 의사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나는 그 앞을 가로막고 차갑게 일갈했다.
"착각하지 마. 내 남자는 내 동생이 죽던 날 같이 죽었어."
"당신은 그저 살인자일 뿐이야."
제1화
윤반야 POV:
"반야 씨,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어요? 급해요."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파티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샴페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일순간 멎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차균재의 푸른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불쾌함과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반야? 네가 왜 여기서 그런 말을 해?"
내 옆에 서 있던 채애정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윤반야 씨. 차균재 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정말 대담하시네."
그녀의 목소리에는 비난과 경멸이 가득했다.
채애정은 차균재의 오랜 소꿉친구였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항상 그의 곁을 지키며, 나 같은 평범한 여자가 균재의 연인이 된 것을 못마땅해했다.
나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애정은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니, 그렇게 청순한 척하더니 결국은 돈 때문이었나? 차균재 씨가 그렇게 좋았어요? 아니면 그의 돈이 그렇게 좋았던 걸까?"
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다.
"차균재 씨, 너무 실망스럽네요. 사랑한다더니 결국은 돈 때문에 당신 곁에 붙어 있었나 보죠."
애정은 균재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때요? 제 말이 틀렸을까?"
그녀는 승리감에 도취된 듯 나를 비웃는 시선을 던졌다.
나는 멍하니 균재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해주길 바랐다.
나를 변호해주길, 아니 하다못해 나를 믿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균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균재의 침묵은 주변 사람들에게 침묵의 동의나 다름없었다.
그의 친구들은 이미 채애정의 이간질 덕분에 나를 꽃뱀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저 여자, 결국 돈 때문에 균재 곁에 붙어 있었던 거였어."
"그러고 보니 균재가 저 여자 때문에 애정이한테 신경도 안 썼잖아."
"아무리 잘생기고 돈 많아도 저런 여자한테 걸리면 답도 없어."
"균재가 처음부터 저 여자랑 어울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과거에는 균재가 나를 감싸주고 친구들에게 내 편을 들곤 했다.
그때는 균재의 친구들도 마지못해 나에게 친절하게 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균재의 침묵은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알려주는 듯했다.
그들은 이제 대놓고 나를 비난했다.
"갑자기 억대가 넘는 돈을 요구하다니, 정말 뻔뻔하네!"
"차균재 씨, 당신이 저 여자에게 돈을 줄 이유가 뭐죠?"
한 친구가 균재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세상에, 균재. 저런 여자한테 돈 주지 마! 가난한 사람들은 가까이하는 거 아니랬어."
"겉으로는 순진한 척하더니, 돈 달라고 할 때는 더 무섭더라."
"저 정도면 은행 털러 가는 게 빠르겠다."
"돈이 그렇게 필요하면 나랑 하룻밤 보내는 건 어때? 푼돈이지만 기꺼이 줄게."
그들의 조롱은 내 심장을 갈가리 찢어 놓는 불길처럼 뜨거웠다.
균재는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채애정은 내게 만족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나는 마치 서커스장의 광대처럼 느껴졌다.
모두의 손가락질과 비난 속에서, 나는 균재의 침묵이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방관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비난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심장은 이미 칼에 난도질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내 여동생은 수술비가 필요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균재를 불렀다.
"균재 씨, 제발요. 정말 급해요. 여동생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뇌수술을 해야 해요. 뺑소니 사고라서 합의금도 필요해요. 정말 죽을 만큼 급해서 찾아온 거예요."
채애정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웃었다.
"세상에, 너무 흔한 거짓말 아니니? 도박 빚을 갚으려고 여동생까지 파네."
나는 애정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균재를 바라봤다.
"아니에요, 균재 씨!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갑자기 사고가 난 거라서…."
균재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내가 전에 본 적 없는 어둡고 차가운 빛으로 가득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턱을 거칠게 잡았다.
"윤반야, 네 거짓말이 아주 능숙해졌구나? 네 여동생의 건강 상태는 나도 다 알고 있는데? 네가 지금 와서 무슨 거짓말을 하는 거야. 날 바보로 아니?"
"아… 아니에요! 갑자기 사고가 난 거라서…"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그가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
"실망했다, 윤반야. 네가 이런 식으로 날 배신할 줄은 몰랐어."
균재는 내 어깨를 거세게 밀쳤다.
나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느꼈다.
채애정이 "어머!" 하고 소리치며 균재에게 말했다.
"균재 씨, 아무리 화가 나도 폭력은 안 돼요. 윤반야 씨가 다치면 어떡해요."
하지만 균재는 애정의 말조차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오직 나만을 노려봤다.
균재는 내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돈? 좋아, 돈 줄게."
내 눈에 희미한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조건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
균재는 내게 새우 요리를 가리켰다.
"저기 저 새우 요리, 전부 다 먹어."
나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