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지는 사직서를 인사팀장님 책상 위에 내밀었다. 손가락으로 사직서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쓸어 내리며 주름이 지지 않도록 했다.
인사팀장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입을 뗐다. "강은지 씨가 그만 두겠다고 하니 너무 아쉽네요. 정말 확실히 결정한 건가요?"
"네." 강은지는 미소 지으며 입가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회사 건물을 나서며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린 그녀는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며 부동산 중개인 임한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강은지 씨께서 관심 있으셨던 그 별장, 집주인이 가격을 낮추기로 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집 구경 가능하실까요?]
기쁜 소식에 강은지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그 작은 별장을, 강은지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이면, 남편 박민섭과의 위태로운 관계가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손가락이 무심코 자신의 아랫배에 닿았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박민섭은 그녀와 한 번도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바쁜 업무 일정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점차 자신에게 매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결국, 지난달 건강검진 때, 의사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결혼 생활이 화목한지 묻는 순간, 비로소 그녀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날 오후, 강은지는 별장을 보러 갔다. 별장은 사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별장의 전 주인은 오래된 부부였다. 정원에는 장미가 만발하여 공기 중에 달콤한 꽃향기가 감돌았다.
햇살이 가득한 거실 한가운데에 선 강은지는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봤다.
"여기로 할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의심할 여지 없는 굳건함이 담겨 있었다.
중개인 임한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네, 바로 계약서를 준비하겠습니다. 혹시 박 도련님도 함께 계약서에 서명합니까?"
강은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남편은 업무 때문에 바빠서 제가 대신 계약할게요."
"네, 그럼 내일 신분증과 혼인관계증명서 복사본을 가져오세요. 몇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해서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은지는 박민섭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회사를 그만뒀어. 마음에 드는 별장을 찾았는데, 계약하려고 해.]
그의 답장이 곧바로 왔다. [갑자기? 하지만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저녁에 일찍 들어갈 테니 같이 축하하자.]
강은지는 화면을 바라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함을 느꼈다.
남들이 뭐라든 박민섭은 항상 그녀를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해줬다. 그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잘 기억했고, 생리 기간에는 항상 핫팩과 생강차를 준비해주곤 했으며, 기념일을 잊지 않고 늘 선물을 챙겨줬다.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는 것만 빼고는, 박민섭은 거의 완벽한 남편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강은지는 특별히 신경 써서 옷을 차려 입고 부동산 중개소로 향했다.
그녀는 박민섭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던 연분홍색 원피스를 선택했다.
"박 사모님, 어서 앉으세요." 임한결은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말했다. "계약서를 가져오겠습니다."
강은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박민섭 씨와 저의 혼인관계증명서 사본입니다."
임한결은 서류를 받아 컴퓨터에 입력하더니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네요. 시스템에서 사모님의 혼인등록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강은지의 웃음이 순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죠?"
"아마 시스템 오류인 것 같습니다." 임한결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빠르게 말했다. "직접 시청에 가서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어요.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강은지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피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네, 지금 바로 시청에 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