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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년 간의 치명적인 거짓말

오년 간의 치명적인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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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샤워 중이었다. 우리 부부의 아침을 깨우는 익숙한 물소리였다. 나는 그의 서재 책상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았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5년간의 결혼 생활 속,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그때, 남편의 노트북 화면에 이메일 알림이 번쩍였다. ‘강이안 유아세례식에 초대합니다.’ 우리 부부의 성. 보낸 사람은 유채리, 팔로워가 수십만인 SNS 인플루언서였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의 아들을 위한 초대장이었다.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 성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보았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남편. 그의 검은 머리와 눈을 쏙 빼닮은 작은 사내아이였다. 아이의 엄마인 유채리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처럼 보였다.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일 때문에 바쁘다며 아이 갖기를 거부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잦은 출장과 야근은 전부 그들을 위한 시간이었을까? 거짓말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눈이 멀 수 있었을까? 나는 그를 위해 미뤄두었던 취리히 건축 펠로우십 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펠로우십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목차

제1화

남편은 샤워 중이었다. 우리 부부의 아침을 깨우는 익숙한 물소리였다. 나는 그의 서재 책상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았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5년간의 결혼 생활 속,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그때, 남편의 노트북 화면에 이메일 알림이 번쩍였다.

‘강이안 유아세례식에 초대합니다.’

우리 부부의 성. 보낸 사람은 유채리, 팔로워가 수십만인 SNS 인플루언서였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의 아들을 위한 초대장이었다.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 성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보았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남편. 그의 검은 머리와 눈을 쏙 빼닮은 작은 사내아이였다. 아이의 엄마인 유채리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처럼 보였다.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일 때문에 바쁘다며 아이 갖기를 거부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잦은 출장과 야근은 전부 그들을 위한 시간이었을까?

거짓말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눈이 멀 수 있었을까?

나는 그를 위해 미뤄두었던 취리히 건축 펠로우십 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펠로우십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제1화

이메일 알림이 강태준의 노트북 화면에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그의 캘린더에서 뜬 세련되고 미니멀한 팝업이었다. 남편은 샤워 중이었고, 유리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우리 부부의 아침을 깨우는 익숙한 리듬이었다. 나는 그의 서재 책상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았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5년간의 결혼 생활 속,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눈은 그 글자들을 붙잡고 말았다.

‘강이안 유아세례식에 초대합니다.’

그 이름에 나는 얼어붙었다. 강이안. 우리 부부의 성이었다.

내가 그 의미를 채 헤아리기도 전에, 알림은 사라졌다. 깜빡, 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발송이 취소된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보낸 사람: 유채리. 어렴풋이 익숙한 이름이었다. 가끔 내 피드를 스쳐 지나가던, 완벽하게 꾸며진 삶을 사는 SNS 인플루언서.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린 아름다운 여자.

차갑고 날카로운 불안감이 위장을 파고들었다. 이건 그냥 무작위로 온 이메일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을 위한 초대장이었다.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

주소는 시내의 한 성당이었고, 시간은 바로 오늘 오후였다.

노트북을 쾅 닫아버리고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명석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IT 기업 대표, 강태준과 함께 내가 그토록 공들여 쌓아 올린 완벽한 환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나, 더 차갑고 집요한 내가 소리치고 있었다. 가야만 한다고.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고.

나는 커피를 그의 책상에 그대로 둔 채, 우리의 사랑을 위한 기념비처럼 내가 직접 설계했던, 티 없이 깔끔하고 미니멀한 집을 나섰다.

성당은 오래된 석조 건물이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뒤편,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심장이 갈비뼈를 아프게 두드렸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강태준. 내 남편. 그는 날카로운 비즈니스 정장이 아닌, 부드럽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제단 가까이에 서 있었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하얀 레이스에 싸인 아름다운 아기를 안고 있었다.

강태준의 검은 머리와 풍부한 표정의 눈을 쏙 빼닮은 작은 사내아이.

아이, 이안이가 방울을 불며 꺄르르 웃더니, 작은 손을 뻗어 강태준의 얼굴을 만졌다.

“아빠처럼 멋진 남자로 컸으면 좋겠다.”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우면서도 소유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유채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강태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모습은 그야말로 가정의 행복을 그린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녀의 미소는 눈부셨고, 그 눈은 내가 남편이라 부르는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가족처럼 보였다.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너무나 깊은 무감각이 나를 덮쳐, 마치 내 몸 밖을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강태준이 유채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다시 아기에게 시선을 돌려 무언가 속삭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말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현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저 여자도, 저 아기도. 그의 비밀스러운 삶도.

나는 신도석에서 몇몇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강태준의 사업상 지인들, 우리 집 저녁 파티에 왔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림자 속에 선 아내의 존재는 까맣게 모른 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모른 채, 행복한 커플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소리치고, 그 완벽한 순간을 산산조각 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싸울 의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깊고 공허한 절망만이 남았다.

나는 몸을 돌려 걸어 나왔다. 무거운 성당 문을 빠져나와 다시 도시의 소음 속으로 들어섰다. 모든 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세상은 차가웠고, 나는 그보다 더 차가웠다.

몇 달 전, 우리의 결혼기념일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태준 씨,”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준비된 것 같아. 우리 아기 가질까?”

그는 침묵했다.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는 늘 그 제스처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믿었다.

“아직은 안 돼, 이현아.”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회사가 지금 아주 중요한 시기야. 1년만 더 시간을 줘. 우리 아이한테 모든 걸 다 해주고 싶단 말이야.”

나는 그를 믿었다. 대학 시절, 내 야망 너머의 여자를 유일하게 알아봐 주며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녔던 그 남자를 믿었다.

그는 그때 내 라이벌이었다. 둘 다 건축학과 수석을 다투던 사이. 그는 명석하고, 야심 찼으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차가웠다.

내가 스튜디오에서 밤새도록 설계도에 매달려 있을 때, 그가 따뜻한 수프를 가져다주던 기억이 났다. 청사진 위로 몸을 웅크린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던 그의 손길이 떠올랐다.

내가 폐렴에 걸려 서 있기도 힘들었을 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그는 꼬박 사흘 밤낮을 내 병실 침대 옆을 지켰다. 잠도 자지 않고,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그 병실에서 내게 청혼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연약함으로 갈라지는 목소리로.

“너를 잃을 순 없어, 이현아.” 그는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네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어머니가 바로 그런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의 두려움은 진짜처럼 느껴졌고, 그의 사랑은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졸업 직후 결혼했다. 그의 IT 스타트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는 모두가 선망하는 남자가 되었다. 나 역시 내 커리어를 쌓았지만, 언제나 그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를 위해, 우리를 위해 나 자신의 5개년 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는 또 다른 가족을 꾸리고 있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라 믿었던 그 사랑, 그 헌신은 거짓이었다. 하나의 연극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그였다. 나는 화면에 뜬 그의 이름을 보며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침내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언제나 내게 사용하던 그 다정한 톤 그대로였다.

전화기 너머로 아기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아이를 달래는 유채리의 목소리도.

나는 성당 맞은편 길가에 서서, 열린 문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귀에 휴대폰을 댄 채, 나와 통화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냥 산책 중이야.” 나는 겨우 대답했다. 내 목소리가 낯설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들렸다.

“갑자기 회의가 잡혀서 늦어졌어.” 그가 매끄럽게 말했다. “곧 집에 갈게. 보고 싶다.”

거짓말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세련되고 완벽하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이 터져 나와 차가운 뺨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그 모든 출장, 사무실에서의 야근. 그중 얼마나 많은 밤을 여기서, 그들과 함께 보냈을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눈이 멀 수 있었을까?

나는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를 삼키며, 목소리를 억지로 안정시켰다. “태준 씨, 지금 봐야겠어.”

그는 망설였다. 나는 그가 몸을 뒤척이며 미소가 잠시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 회의 중이야, 자기야. 집에 가서 보면 안 될까?”

“안 돼.”

바로 그때, 작은 아이, 이안이가 아장아장 걸어와 강태준의 다리를 껴안았다.

“아빠!” 아이가 소리쳤다.

강태준의 눈이 공포로 커졌다. 그는 재빨리 몸을 숙여 아이를 조용히 시키려 애쓰면서도, 내게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했다. “그냥… 동료 중 한 명의 아이야.”

전화가 끊겼다. 그가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가 아이를 품에 안아 뺨에 입을 맞추고, 아이를 웃게 만드는 무언가를 속삭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너무나 좋은 아버지였다.

심장이 도려내진 것 같았다. 텅 비고 시린 공허함만이 남았다. 내 인생의 수년, 내 사랑의 수년이 한낱 농담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지민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변호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나는 취리히 건축 펠로우십 재단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합격했지만 강태준을 위해 미뤄두었던, 명망 높은 6개월짜리 프로그램. 완전하고 중단 없는 집중을 요구하는 프로그램. 완전한 고립.

“펠로우십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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