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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배신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품다

치명적인 배신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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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자 서정혁과 나는 10년 된 연인이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 성당의 제단 위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세상의 전부였던 남자와 결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례를 맡은 우리 웨딩 플래너, 한유라가 그를 보며 물었을 때. "신랑 서정혁 군, 저와 결혼해 주시겠어요?" 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내가 몇 년간 본 적 없는 사랑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는 나를 제단 위에 홀로 버려두고 떠났다. 그의 변명은? 상간녀 한유라가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 희귀 혈액형을 그녀를 살리는 데 쓰도록 강요했고, 그녀의 잔인한 변덕을 맞춰주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안락사시켰다. 심지어 물에 빠진 나를 그대로 지나쳐 그녀부터 구하러 가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죽게 내버려 둔 순간, 나는 부엌 바닥에서 질식하고 있었다. 한유라가 내 음식에 일부러 넣은 땅콩 때문에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온 것이다. 그는 내 목숨을 구하는 대신, 가짜 발작을 일으키는 그녀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택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단지 나를 배신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나를 기꺼이 죽일 수 있는 남자였다. 병원에서 홀로 회복하고 있을 때, 아버지에게서 황당한 제안이 담긴 전화가 걸려왔다. 은둔의 재벌이자 막강한 IT 기업 대표인 강태준과의 계약 결혼. 내 심장은 이미 죽어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 사랑은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신랑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들었다. "네. 그 사람과 결혼할게요."

목차

제1화

내 약혼자 서정혁과 나는 10년 된 연인이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 성당의 제단 위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세상의 전부였던 남자와 결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례를 맡은 우리 웨딩 플래너, 한유라가 그를 보며 물었을 때. "신랑 서정혁 군, 저와 결혼해 주시겠어요?" 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내가 몇 년간 본 적 없는 사랑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는 나를 제단 위에 홀로 버려두고 떠났다. 그의 변명은? 상간녀 한유라가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 희귀 혈액형을 그녀를 살리는 데 쓰도록 강요했고, 그녀의 잔인한 변덕을 맞춰주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안락사시켰다. 심지어 물에 빠진 나를 그대로 지나쳐 그녀부터 구하러 가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죽게 내버려 둔 순간, 나는 부엌 바닥에서 질식하고 있었다. 한유라가 내 음식에 일부러 넣은 땅콩 때문에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온 것이다. 그는 내 목숨을 구하는 대신, 가짜 발작을 일으키는 그녀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택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단지 나를 배신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나를 기꺼이 죽일 수 있는 남자였다.

병원에서 홀로 회복하고 있을 때, 아버지에게서 황당한 제안이 담긴 전화가 걸려왔다. 은둔의 재벌이자 막강한 IT 기업 대표인 강태준과의 계약 결혼. 내 심장은 이미 죽어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 사랑은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신랑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들었다. "네. 그 사람과 결혼할게요."

제1화

차주원과 서정혁.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세기의 사랑으로 남았어야 했다. 10년. 고등학교 축제에서 어색하게 파트너가 되어 춤을 췄던 순간부터, 지금 이 웨딩 로드 위에 서 있는 순간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만든 추억의 탑. 재능 있는 건축 디자이너인 주원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증표로 이 아름다운 성당을 직접 설계했다.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인 정혁은 10대 시절부터 그녀의 닻이자, 반쪽이자, 세상의 전부였다.

한때 두 사람의 인연은 이 동네의 전설이었다. 인기 많은 축구부 주장이었던 정혁의 눈에는 오직 조용하고 총명한 주원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를 따라 같은 대학에 진학했고, 지독하게 힘든 건축학 시험을 치르는 내내 그녀를 응원했으며, 그녀의 모든 성공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사소한 다툼 끝에, 눈보라를 뚫고 세 시간을 운전해 와서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치자꽃 한 송이를 문 앞에 두고 간 남자.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가 없는 내 세상은 너무 추워." 지난 10년간, 그는 주원의 세상이었다.

그 완벽했던 세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변화는 미묘했다. 언제나 속을 훤히 보여주던 정혁이 휴대폰을 감추기 시작했다.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 때문에 압박이 심하다며 늦게 귀가하는 날이 잦아졌다. 결혼 준비로 정신없었던 주원은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더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기까지 했다.

첫 번째 격진은 어느 화요일 밤에 찾아왔다. 정혁이 샤워하는 동안, 침대 협탁에 놓인 그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의심이 아니라 반사적인 행동으로 주원은 화면을 흘깃 보았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수많은 알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일 때문일 거야, 별거 아닐 거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차가운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주 후반, 그의 노트북에서 서류를 찾던 주원은 잠금 해제된 폴더 하나를 발견했다. 폴더명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 H’. 지난 10년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갉아먹는 듯한 추한 호기심에 주원은 폴더를 클릭했다.

설계도나 재무 계획서가 아니었다. 사진 앨범이었다. 주원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의 사진 수백 장. 생기 넘치는 눈과 프레임 전체를 밝히는 듯한 미소를 가진 여자. 그녀는 보트 위에서 웃고 있었고, 주원과 정혁이 자주 가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으며, 심지어 누가 봐도 정혁의 사무실인 곳에서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 사진은 불과 며칠 전에 찍힌 것이었다.

별도의 텍스트 파일에는 두 사람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주원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유라 씨는 들불 같아요.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또 당신 생각이 나네요. 당신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주원이는… 편안해. 안정적이지. 당신은… 그 모든 것 이상이야."

숨이 멎었다. 한유라. 낯선 이름이었지만, 이제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주원은 정혁의 최근 이메일을 뒤졌다. 그녀가 있었다. 한유라. 자신들의 웨딩 플래너. 석 달 전, 주원이 직접 고용한 여자였다. 그녀의 유능함과 발랄한 성격에 반해서. 그들의 삶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자.

돌이켜보면 모든 징후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전에는 "시간 낭비"라고 부르던 회의에 참석하며 결혼 준비에 갑자기 관심을 보이던 정혁. 상담 중에 유라를 향하던 그의 길고 긴 시선. 주원은 그저 그녀의 일 처리에 대한 감탄이라고 착각했다. 정혁이 쓰기 시작한 낯선 말투와 농담들. 이제 보니 모두 유라에게 보낸 메시지에 타이핑된 문구들이었다. 한때 주원에게만 쏟아붓던 그의 사랑이 이제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 주원은 그와 마주했다. 그가 침실로 들어섰을 때, 노트북 화면에는 사진들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사진을 보았고,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누구야, 정혁아?" 주원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길고 고통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10년의 신뢰가 먼지로 부서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나…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 주원아." 마침내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냥 잠깐이었어."

"잠깐? 사진이 수백 장이야. 그녀는 ‘모든 것’이고 나는 고작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며!" 그 단어들이 입안에서 독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생기가 넘쳐." 그는 시선을 피하며 더듬거렸다. "달랐어. 실수였어. 어리석고 찰나의 끌림이었을 뿐이야. 아무 의미 없어."

주원은 메스꺼움을 느꼈다.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그래서, 누구를 선택할 건데?" 그녀가 물었다. 최후통첩은 무겁고 최종적으로 공기 중에 내려앉았다.

그는 그제야 그녀를 보았다. 죄책감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너야, 주원아. 당연히 너지. 언제나 너였어."

그는 끝났다고 맹세했다. 통제 불능이 된 어리석은 치기였을 뿐이며, 육체적인 외도는 결코 없었고, 그저 새로움에 눈이 멀었을 뿐이라고 맹세했다. 증명하기 위해 그는 휴대폰을 들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한유라의 번호와 모든 사진을 삭제했다. 그는 주원을 끌어안고 용서를 빌며, 자신의 미래는 오직 그녀와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녀의 한쪽, 이성적이고 자존심 강한 부분은 당장 떠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다른 한쪽, 인생의 3분의 1을 이 남자와 사랑에 빠져 보낸 부분은 필사적으로 그를 믿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를 믿기로 했다. 고통과 배신을 가슴 깊이 묻었다. 모든 오랜 관계에는 시련이 있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것이 그들의 시련일 뿐이라고. 그들은 이겨낼 것이고, 여전히 결혼할 것이라고.

일주일 후, 정혁이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유라 씨한테 전화 왔었어." 그는 조심스럽게 무심한 척 말했다. "모든 것에 대해 사과하더라. 정말 미안해하고 있어. 좋은 사람이야, 주원아. 그냥… 실수를 한 거지."

주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장이 단단하게 굳어갔다.

"원래 주례 봐주시기로 한 분이 집안 사정으로 취소하셨어."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생각인데… 우리가 유라 씨한테 부탁하면 어떨까? 우리 사이에 나쁜 감정 없다는 걸 보여주는 방법이 될 거야. 우리 모두가 공식적으로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 직전에 그 장을 닫는 거지."

너무나 기괴하고, 너무나 눈치 없는 제안에 주원은 할 말을 잃었다. 차가운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미쳤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깨끗한 시작"을 간청하는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자,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싸우는 것도, 의심하는 것도 너무 지쳤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정말로 과거를 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그들을 파괴할 뻔했던 여자가 그들을 공식적으로 묶어주게 하는 것. 마지막 상징적인 승리.

모든 본능에 반하여, 그녀는 동의했다. "좋아." 그녀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해."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이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서 조롱하듯, 끊임없이 북을 치며 울려 퍼졌다.

여기, 그녀가 디자인한 성당의 제단 위에서, 그들이 아는 모든 사람 앞에서, 그녀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끔찍한 진실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단정한 크림색 정장을 입은 한유라는 하객들을 향해, 그리고 정혁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음악이 고조되었다가 잦아들었다. 공기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신랑 서정혁 군은," 유라가 낭랑한 목소리로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한 성당 안을 가득 메웠다. "저와… 저와 결혼하시겠습니까?"

하객들 사이에서 몇몇 혼란스러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순한 말실수. 주례자의 긴장한 실수. 주원은 간신히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정혁이 웃어넘기기를, 그녀를 바로잡아 주기를, 그리고 자신을 향해 돌아 서약을 말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정혁은 웃지 않았다.

그는 주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유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주원은 혼란이나 재미가 아닌, 원초적이고 가감 없는 감정의 바다를 보았다. 너무나 깊은 갈망과 숭배의 눈빛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가 한때 그녀에게 주었던 눈빛이었지만, 천 배는 더 강렬했다.

세상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하객들의 혼란스러운 웅성거림은 둔탁한 굉음으로 멀어졌다. 주원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그녀의 약혼자, 10년간 사랑했던 남자가 마치 세상에 단 한 사람인 것처럼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모습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분명했으며, 철저히 파괴적이었다.

"네, 그러겠습니다."

성당 안에서 일제히 터져 나온 경악의 숨소리. 유라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고, 승리에 찬 눈부신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정혁 씨." 그녀가 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날 데리고 나가줘요. 제발, 그냥 데리고 나가줘요."

정혁의 시선이 찰나의 순간 주원에게 스쳤다. 죄책감, 어쩌면 연민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은 오자마자 사라지고 냉혹한 결의로 대체되었다. 그는 유라가 내민 손을 잡았다. 마치 그들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손가락이 얽혔다.

그는 주원에게 등을 돌렸다. 그들의 10년에게. 그들의 미래에게.

"정혁아, 안 돼." 주원이 속삭였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손을 뻗어 턱시도 소매를 스쳤다. "정혁아, 감히 이러지 마. 감히 떠나지 마."

그녀의 손길에 그는 아주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손길이 불에 덴 듯 팔을 뿌리쳤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고, 그는 한유라를 이끌고 통로를 걸어 내려갔다. 충격에 빠진 친구들과 가족들을 지나, 무거운 참나무 문밖으로. 주원을 제단 위에 홀로 남겨둔 채.

뒤따른 침묵은 절대적이었고, 짓누르는 무게 같았다. 부케에서 풍기는 치자꽃 향기가 역겹게 느껴졌다. 그녀가 디자인한 아름다운 아치형 천장이 이제 그녀를 덮쳐 질식시킬 듯 다가왔다.

그때,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였다. 어렴풋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한, 부서지고 히스테릭한 소리.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웃음과 함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든 게 농담이었다. 그녀의 삶, 그녀의 사랑, 그녀의 신뢰. 모든 것이 장대하고 굴욕적인 농담이었다.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의 어머니가 제단 위로 달려왔다. "그 개자식! 그 천하의 개자식!" 그녀는 주원의 떨리는 몸을 끌어안으며 독설을 퍼부었다.

아버지가 바로 뒤따랐다. 그의 표정은 암울했다. 그는 주원을 지나쳐 하객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뒷줄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한 남자에게 멈췄다. 은둔의 거물이자 막강한 IT 기업 대표인 강태준. 주원 아버지의 사업과 약간의 거래가 있는 집안의 지인이었다. 말수는 적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남자.

"강 대표." 주원의 아버지가 혼란을 뚫고 외쳤다. "우리 집안이 빚을 하나 졌지. 그리고 여기 신부가 있소. 신랑을 바꾸는 건 어떻겠소?"

그 제안은 미친 짓이었다. 순전한 충격과 분노에서 비롯된, 체면을 차리기 위한 필사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인생의 폐허 위에 서 있는 주원에게는, 그것이 익사 직전의 바다에서 유일한 구명줄처럼 들렸다. 그녀의 심장은 가슴속에서 죽어버린 텅 빈 것이었다. 사랑은 거짓말이었다. 서약은 농담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모든 감정이 거세된 목소리였다. "그 사람과 결혼할게요."

부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즉시 강태준의 비서와 낮고 긴급한 목소리로 통화하며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주원은 멍한 상태로 어머니에게 이끌려 신부 대기실로 돌아갔다. 정혁과 함께 살던 집, 이제는 영안실처럼 느껴지는 집으로. 그녀는 산산조각 난 꿈의 상징인 아름다운 레이스 드레스를 찢어버리듯 벗어 던졌다. 하얀 실크와 굴욕의 더미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로봇처럼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옷, 노트북, 오직 그녀만의 것들을 던져 넣었다. 나가야 했다. 이 장소에서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워야 했다.

막 여행 가방의 지퍼를 올렸을 때,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정혁이었다.

그는 지쳐 보였다. 얼굴은 창백하고 긴장되어 있었지만, 광적인 절박함은 사라지고 무겁고 침울한 슬픔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달려와 팔을 뻗었다.

"주원아, 정말, 정말 미안해."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끔찍하게도 주원은 그 순간 그를 거의 믿을 뻔했다. "설명하게 해줘."

그녀는 그의 손길을 피하며 움찔했다. 온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설명?" 그녀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뭘 설명할 게 있는데, 정혁아? 넌 우리 웨딩 플래너 때문에 날 제단에 버렸어. 그 자체로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 같은데."

"아니, 넌 이해 못 해."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다. "유라 씨가… 아파, 주원아. 죽어가고 있어."

주원은 어리둥절한 채 그를 쳐다보았다.

"뇌종양이야." 그가 말을 쏟아내며 목이 메었다. "교모세포종. 의사들이… 석 달,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대. 오늘 아침에 최종 진단을 받았어. 패닉 상태였던 거야. 결혼식에서 그렇게 말한 건… 도와달라는 절규였어. 죽기 전 소원이래, 내가 자기한테 ‘네’라고 말하는 걸 한 번만 듣는 거. 딱 한 번만.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어, 주원아? 죽어가는 여자의 마지막 소원을 어떻게 거절해?"

그는 진지하고 가슴 아픈 고뇌에 찬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이해해주기를, 그의 잔인한 배신 속에 담긴 고귀함을 봐주기를 애원하고 있었다. 그는 결혼식을 연기하고, 유라의 마지막 몇 달을 그녀 곁에서 보내게 해달라고, 이 "자비로운" 행동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주원은 10년간 사랑했던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의 나약함의 깊이를 보았다. 그는 유라를 사랑했다. 제단 위에서 그의 눈에서 그것을 보았다. 이 완벽하게 비극적이고 영화 같은 죽어가는 소원 이야기는 편리한 변명에 불과했다. 그것은 그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이었다. 새로운 사랑에게는 영웅이 되고, 헌신적인 약혼녀는 대기시켜 두는 것. 그는 그녀를 가두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해 거짓말의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그 순간, 유라의 기만의 진정한 범위와 정혁의 잔인함의 한계를 알았더라면, 그의 얼굴에 대고 비웃으며 영원히 떠났을 것이다. 유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주원을 몇 번이고 던져 넣을 준비가 된 바닥없는 구덩이라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과거와 조작된 비극적인 미래 사이에서 갈등하며 우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약해진 순간, 그녀는 망설였다.

그 망설임이 그녀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시작이었다.

바로 그때, 그의 전화가 날카롭게 울렸다. 정혁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극심한 공포로 바뀌었다.

"네? 무슨 일이에요?" 그가 전화기에 대고 짖듯이 말했다. "피를 쏟고 있다니 무슨 말이에요? 지금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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