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내 커리어 최고의 밤이 되어야 했다. 건축계 최고의 영예인 ‘아키텍처 대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바로 나였으니까.
하지만 상은 듣도 보도 못한 여자에게 돌아갔다. 내 약혼자의 첫사랑이자, 그의 죽은 형의 아내였던 여자. 내 수상작을 지어주기로 했던 약혼자, 강태준은 내 필생의 역작을 그녀에게 넘겨버렸다.
그는 그녀에게 이 상이 더 절실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그녀의 멘토가 되라고 강요하며, 내 프로젝트의 공을 그녀가 가로채게 만들었다. 홍보 영상 촬영 중에는 ‘더 좋은 컷을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그녀가 내 뺨을 몇 번이고 후려치는 걸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내가 마침내 그녀의 뺨을 되받아쳤을 때, 그는 나를 해고하고 업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켰다. 그걸로도 모자라, 병원 복도에서 나를 거칠게 밀쳐 피를 흘리게 만든 뒤 그대로 버리고 떠났다.
그 모든 건, 내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겪어야 했던 일이다.
차가운 병원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로. 나는 새로운 나라로 날아갔고, 이름을 바꾸고, 모든 인연을 끊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유령처럼 살았다.
제1화
웅장한 연회장 안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실크 드레스 앞자락을 매만졌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쿵쾅거렸다. 오늘 밤은 내 평생을 바쳐 달려온 바로 그날이었다. 아키텍처 대상. 건축계 최고의 영예.
내 디자인, ‘솔라리스’는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그건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유리와 강철로 빚어낸 내 영혼 그 자체였다.
존경하는 선배인 박진우 건축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미리 축하해, 서은하 씨. 당연한 결과야. 솔라리스는 걸작이니까.”
나는 긴장됐지만, 고마운 마음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도 김칫국부터 마시진 않을래요.”
그가 껄껄 웃었다. “천재적인 작품 앞에 불운 같은 건 없어.”
내 약혼자, 강태준은 원래 내 옆에 있어야 했다. 그는 이 도시에서 가장 막강한 부동산 재벌이자, 솔라리스를 지어줄 남자였다. 하지만 한 시간 전, 그는 급한 회의가 잡혔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나중에 꼭 보상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사회자가 연단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모두가 기다려온 순간입니다. 올해의 아키텍처 대상은…”
나는 숨을 참았다. 입가에는 이미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윤희수 씨의 ‘버들마루’입니다.”
그 이름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말도 안 됐다. ‘버들마루’는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류작이었다. 윤희수는 완전히 무명이었다.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손끝의 감각이 사라졌다. 유력한 후보였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나에게 연회장 안의 모든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간신히 박수를 쳤다. 움직임은 로봇처럼 뻣뻣했다. 푹신한 벨벳 의자가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억지로 지은 미소가 얼굴 위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무언가 단서를 찾으려 군중 속을 헤맸다. 그리고 그를 발견했다.
강태준.
그는 회의 중이 아니었다.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짙은 색 정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다부진 몸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무대 위, 연단으로 걸어가는 한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윤희수. 내 약혼자의 첫사랑. 그의 죽은 형의 아내.
그가 이곳에 온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를 위해서였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혼란과 의심이 가득한 속삭임이었다.
“윤희수? 누구지?”
“듣자 하니 이번 대상의 주 스폰서인 태강그룹과 연줄이 있다던데.”
“뭔가… 이상한데. 솔라리스가 확실한 우승작 아니었나?”
퍼즐 조각들이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맞춰졌다. 강태준이 벌인 짓이었다. 그가 내 상을 빼앗아 그녀에게 준 것이다.
몇 주 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윤희수가 우리 집 거실에서 자신의 막막한 커리어와 꿈을 이룰 수 없을 거라며 울고 있었다. 강태준이 그녀를 안아주며 속삭였던 약속도 기억났다.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희수 씨. 맹세해. 난 당신에게 빚을 졌으니까.”
그는 그녀에게 빚을 졌다고 했다. 죄책감으로 얼룩진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그가 내게 전부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그는 윤희수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믿고 있었다.
내 인생의 10년. 수없이 지새운 밤, 수많은 희생, 오직 내 일에만 쏟아부었던 열정. 그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그녀가 연약하고, 그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은쟁반에 담아 건네준 바로 이 순간을.
시상식은 흐릿한 기억 속에 끝이 났다. 나는 연회장이 텅 비어갈 때까지 얼어붙은 채 앉아 있었다.
강태준이 마침내 나를 찾아왔다. 그의 표정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은하야.”
나는 일어섰다. 목소리는 위험할 정도로 차분했다. “왜 그랬어, 태준 씨?”
그는 뻔뻔하게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상 하나 가지고 뭘 그래. 네 재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잖아.”
“내 상이었어.” 이제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키텍처 대상이었다고. 그냥 아무한테나 줘버릴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야.”
“희수 씨한테 더 필요했어. 그 사람에겐 재기할 발판이거든.”
내 인생의 역작을 아무렇지 않게 폄하하는 그의 말에,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 여자한테 필요했다고? 그럼 내가 필요했던 건? 내가 피땀 흘려 얻어낸 건 뭔데? 난 여기까지 오려고 10년을 쏟아부었어! 내 자존심, 내 이름, 내 미래! 그 상은 그 모든 걸 의미했다고!”
나는 너무 심하게 떨려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상처와 배신감의 둑이 터지면서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건 그냥 상이 아니야! 내 전부였다고!”
감정이 북받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그의 눈에서 무언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후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감정은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른 상 받게 해줄게, 은하야. 더 큰 프로젝트도. 그냥 이 일은 잊어.”
공허한 약속.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말.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생각조차 없었다.
“당신이 뭘 해주지 않아도 돼.” 내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낮아졌다. “이건 내 힘으로 이룬 거니까.”
바로 그때,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준 씨!”
윤희수가 무거운 황금빛 트로피를 든 채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강태준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며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믿을 수가 없어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강태준의 얼굴이 그녀를 보자 부드럽게 풀렸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어, 희수 씨. 당신의 재능은 세상에 알려져야 해.”
자격. 그 단어가 텅 빈 연회장에 메아리쳤다. 내 노력을 비웃는 조롱처럼. 그녀는 디자인을 다듬기 위해 단 하룻밤도 새워본 적이 없었다. 내가 쏟아부었던 것처럼, 선 하나, 각도 하나, 영혼의 조각 하나를 위해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울었고, 그는 그녀의 꿈을 이뤄주었다.
나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나를 쫓아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