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리마인드 웨딩이 열리는 날이었다. 남편 강태오의 서울시장 선거 캠페인에 가장 중요한 홍보 행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에 취해 흐릿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가 내연녀와 함께 제단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숨겨진 발코니에서 그가 나에게 줬던 반지를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는 모습을 지켜봤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가 그와 마주했을 때, 그는 내연녀가 임신했으며, 그녀의 몸이 ‘안 좋아서’ 이 결혼식이 꼭 필요했기에 나에게 약을 먹였다고 말했다. 나를 쓸모없는 식충이라 부르더니, 이내 비웃으며 자기와 윤세희의 아이를 함께 키우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내 인생의 7년, 나의 모든 전략과 희생이 그의 제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그는 샴페인 한 잔으로 나를 지워버리려 했다.
하지만 이혼을 마무리하기 위해 가정법원에서 만난 날, 그는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하며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식 날’ 자기를 떠나지 말라며 울고불고 애원했다.
그는 게임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 게임의 룰을 새로 쓰기로 결심했다.
제1화
손에 쥔 샴페인 잔이 차갑게 느껴졌다. 신부 대기실을 가득 채운 역겨울 정도로 달콤한 향수 냄새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오늘은 내 리마인드 웨딩이 열리는 날이었다. 내 남편, 강태오가 몇 년 동안 약속했던 성대한 이벤트. 그의 서울시장 선거 캠페인을 위한 핵심적인 홍보 행사였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다. 머리가 안개가 낀 듯 무겁고, 시야의 가장자리가 흐릿했다. 한 시간 전, 태오가 직접 건네준 샴페인 딱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긴장 풀어요, 내 사랑.”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의 미소는 그의 정치적 야망만큼이나 번지르르했다.
나는 벨벳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몇 달을 고심하며 직접 디자인한 수제 레이스 웨딩드레스가 내 몸 위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비틀거리며 전신 거울로 다가간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거울 속에 비친 것은 내가 아니었다. 승리감에 도취된 가면을 쓴 윤세희, 내 남편의 내연녀였다. 그녀는 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아래층 그랜드 홀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와 주례사를 시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끔찍한 진실이 파도처럼 덮쳐오자 메스꺼움이 치밀었다. 그가 내게 약을 먹인 것이다. 그리고 제단에서 나를 그녀로 바꿔치기했다.
나는 허둥지둥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움직임은 서툴고 절박했다. 복도를 지나 작은 직원용 문을 통과하자, 메인 홀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나타났다. 아래, 내가 직접 고른 하얀 장미 아치 아래에서 태오가 윤세희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넣었다. 어지러움을 느끼기 직전, 바로 이 방에서 그가 내게 보여줬던 바로 그 반지였다. 서울의 정치계 거물들로 가득 찬 하객들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건 공개적인 쇼였고, 나는 그 쇼의 웃음거리였다.
날카롭고 뜨거운 분노가 흐릿한 정신을 뚫고 타올랐다. 나는 기다렸다. 식이 끝나고, 기자들이 사진을 다 찍고, 하객들이 칵테일을 마실 때까지. 나는 호화로운 행사장 한쪽 구석, 조용한 서재에서 그를 찾아냈다. 윤세희도 함께였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있었고, 두 사람은 축하의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그들은 떨어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도, 죄책감도 없었다. 오직 의기양양한 만족감뿐이었다.
“이게 다 무슨 짓이야, 강태오?”
내 목소리는 갈라진 속삭임 같았다.
그는 코웃음을 쳤다. 경멸적이고 추악한 소리였다. 그는 커프스링크를 매만지며 차갑게 식어버린 눈으로 나를 봤다. 내가 알던 감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서아리, 추태 부리지 마. 보기 안 좋아.”
“추태?”
나는 부서진 듯, 히스테릭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한테 약을 먹이고, 온 서울 시민 앞에서 네 내연녀랑 내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려놓고, 내가 추태 부릴까 봐 걱정하는 거야?”
“필요한 일이었어.”
그의 말투는 무미건조했다.
“세희가… 몸이 안 좋았어. 이 결혼식이 꼭 필요했고.”
그는 나를 쳐다봤다. 순수한 경멸이 담긴 눈빛이었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넌 그냥 집에서 노는 가정주부잖아, 서아리. 일 안 한 지 몇 년 됐지? 네가 가진 모든 건 다 나 때문에 있는 거야.”
그는 화려한 방을 가리켰다.
“이런 삶. 네 옷. 네 차. 전부 다 내 거라고.”
“이혼해.”
그 말은 내 입안에서 재처럼 썼다.
그는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속이 뒤틀리는 호탕한 웃음이었다.
“어디 해봐. 협박이라도 하게? 넌 아무것도 없어. 나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손은 떨렸지만, 정신은 무서울 정도로 명료해졌다. 슬픔은 다른 무언가로 굳어지고 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터뜨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돌아섰다. 그날 밤, 나는 가방 하나만 챙겨 숨겨둔 비상금을 들고 우리가 집이라고 불렀던 저택을 떠났다. 그리고 도시 반대편에 있는 작고 허름한 원룸을 구했다.
나는 표준적인, 유책 사유 없는 이혼 합의서를 출력했다. 서명을 하고 작은 부엌 카운터 위에 올려둔 채 기다렸다.
그는 일주일을 그냥 보냈다. 아마 내가 허세를 부리거나 발악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돈이 떨어져서 용서를 구하며 기어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겠지.
내가 그러지 않자, 그는 인내심을 잃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내 원룸 문 앞에 나타났다. 그의 맞춤 정장은 허름한 복도에서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는 소독약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
“이런 데서 살아? 한심하긴.”
그는 나를 밀치고 작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비아냥거렸다.
그는 경멸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자, 이제 그만하면 됐어. 집에 갈 시간이야.”
그는 내게 다가와 허리를 잡으려 했다.
“이번 소동은 용서해 줄게. 우리 다시 잘해보자. 오늘 밤에.”
그 의미는 명백했고, 소름이 끼쳤다.
나는 그의 손길을 피하며 카운터에서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밀었다.
“서명해, 강태오.”
내 목소리는 죽은 듯이 차갑고 평온했다.
그는 내 손에서 서류를 낚아채며 연극처럼 지루하다는 듯 훑어봤다.
“아직도 이 게임을 하고 있어? 슬슬 질리는데, 서아리.”
그는 비죽 웃었다.
“애처럼 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