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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J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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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하룻밤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 666호실 방문의 살짝 열린 틈 사이로 입가에 번진 립스틱과 헝클어진 머리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유소월이 하이힐만 손에 쥔 채 까치발을 하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전날 회사 워크숍에서 그녀의 세상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 친구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소월은 실연의 아픔을 두 잔의 술로 잊으려 했고, 취기를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다 방을 잘못 들어간 것이다.

방문을 열자마자 낯선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 유소월이 당장 방을 나서려 했지만, 비틀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자의 품 안에 쓰러지고 말았다.

남자의 몸이 잠깐 경직된 것 같더니 이내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턱을 살짝 움켜쥐고 입술을 뜨겁게 맞췄다.

유소월은 당장이라도 남자를 밀쳐내려 했지만, 입술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는 남자의 뜨거운 입술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에 취기와 슬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결국 남자의 따뜻한 품에 몸이 녹아 내릴 것만 같았던 그녀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녀의 허리를 움켜잡는 남자의 커다란 손과 함께 동시에 느껴지는 낯선 통증을 느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뜨거웠던 순간이 지나가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후회 막심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유소월은 까치발을 하고 몰래 방을 빠져 나왔다.

굳게 닫힌 방문에 적힌 번호판을 확인한 유소월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낸 사람은 부서 총괄 관리자인 송이동이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송이동은 여자관계가 복잡하기로 유명한 상사다. 여태껏 만나온 여자 친구는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기에 하룻밤의 관계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방이 워낙 어두웠기 때문에 그는 유소월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기억조차 못 할 것이다.

유소월은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유소월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몸 곳곳에 남은 지난밤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목이 높은 스웨터를 입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자마자 동료 주경하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월아, 빨리 문 열어. 큰일 났어. 빨리 나와봐."

주경하의 다급한 목소리에 유소월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와 송이동이 하룻밤을 보낸 사실이 벌써 소문난 걸까? 아직 날도 완전히 밝지 않았는데?'

송이동은 성세 그룹의 임원이지만, 그녀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턴에 불과했다.

설령 소문이 퍼진다 해도 바람둥이인 송이동은 어떤 타격도 받지 않겠지만, 유소월은 엄청난 소문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고위 임원과 몸을 섞은 인턴. 회사에 적응하기도 전에 끝나버릴 것이다.

유소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잔뜩 흥분한 표정을 한 주경하는 유소월의 창백한 얼굴과 뻣뻣한 움직임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빨리 나와. 내가 엄청난 사람을 보여줄게. 누군지 알아? 우리 회사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사람이야. 안 대표님이 우리 워크숍에 나타났다니까!"

유소월은 비밀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경하가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에 겨우 마음을 가다듬은 유소월은 그녀를 따라 유난히 시끄러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유소월은 베일에 싸인 대표 안성주를 면접 날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고작 한 번이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의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었다. 위험할 정도로 완벽하게 잘생긴 그의 몸에서 압도적인 위압감이 느껴졌다.

안성주는 파산 직전에 이른 회사를 혼자의 힘으로 7년 만에 완벽하게 일궈냈다.

면접을 볼 때, 안성주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유소월은 그의 매력에 단번에 빠져들고 말았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느껴지는 압도감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존경심이 피어 올랐다.

그런 안성주가 창가 옆자리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꼿꼿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완벽했고, 우아한 몸짓에서 권위가 느껴졌다.

유소월은 엄청난 매력과 자신감을 뿜어내는 안성주를 가만히 지켜봤다.

대부분의 여자 직원들은 일부러 안성주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그의 얼굴을 훔쳐보며 낮은 목소리로 의논했다.

"우리 대표님이 너무 잘생긴 것 같아요."

"대표님 목에 키스마크가 남아 있던데, 어젯밤에 대표님과 밤을 보낸 행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옆자리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키스마크라는 단어에 유소월은 본능적으로 스웨터 옷깃을 더 잡아당겼다. 어젯밤에 자신이 저지른 무모한 짓을 떠올린 그녀는 안성주를 보고 느낀 설렘의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주경하는 안성주의 목에 남은 흔적을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유소월은 대꾸할 기력조차 남지 않았다.

그때, 레스토랑에 오만하게 모습을 드러낸 송이동이 안성주의 맞은편에 앉았다.

"대표님, 잘 주무셨어요?" 송이동이 꽤나 건방진 말투로 물었다.

안성주는 우아하게 아침을 먹으며 레스토랑을 가볍게 훑어봤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유소월에게 잠깐 시선을 고정한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괜찮았어." 안성주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바로 뜨거운 시선을 느낀 유소월은 당황한 듯 몸을 더욱 움츠리더니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송이동은 낮은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대표님, 제 허락도 없이 제 방을 차지했으니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잘 수 있었겠죠. 저는 근처에 빈방이 없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이런 저를 조금이라도 불쌍하게 여겨주세요."

성세 그룹 직원 모두가 호텔에 모여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남은 방이 없었다. 안성주가 갑자기 호텔에 나타난 탓에, 스위트 룸을 차지한 송이동이 그에게 방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안성주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돌아가서 월급 인상 해줄게."

그 말을 듣고 송이동의 안색이 금세 밝아지더니 이내 허리를 굽실거리며 자세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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