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정사가 끝나고, 소지은은 몸을 떨며 침대 가장자리에 기운 없이 쓰러졌다.
갑작스럽게 밀려온 현기증에 아직 정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작은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창백해지며 핏끼가 가셨다.
정사 후의 허탈감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베개 밑에 숨겨둔 질병 진단서 한 장을 몰래 꽉 쥐었다.
"1년 남았습니다."
의사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잔인할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였다.
등 뒤의 남자는 몸을 빼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다시 침대 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또다시 고귀하고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으로 돌아와 온몸에서 권력자 특유의 여유를 풍기고 있었다.
소지은은 입술을 깨물며 머뭇거리다 막 입을 열려고 했다.
"우리 이혼해."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평온한 말투였다.
"뭐라고?" 소지은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고개를 들어 멍하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태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짙은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 안에는 정사를 나눌 때의 온기는 반 푼어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오직 거리감과 냉담함만이 가득해 소지은의 마음을 차갑게 식어 내리게 했다.
"다솜이가 불치병에 걸렸어.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어. 유일한 소원이 나와 함께 있는 거래."
그는 잠시 목소리를 멈추더니 말했다. "난 이미 그러겠다고 약속했어."
침실은 숨 막힐 듯한 적막에 휩싸였고, 어둑한 빛과 그림자가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며 점점 더 멀어지게 했다.
소지은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
불치병.
얼마나 공교로운가, 그녀 역시 똑같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오늘 밤 이 사실을 그에게 말하려고 했다. 심지어 진태하가 그녀의 병 때문에 그녀를 조금 더 안쓰러워하며 더 사랑해 주지 않을까 하는 유치한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남편이 죽어가는 다른 여자를 위해 자신과 이혼하려 한다는 말을 먼저 듣게 되었다.
"그럼 나는?" 소지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쉰 소리로 물었다. "진태하, 그럼 난 어떡하라고?"
남자는 미간을 더욱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의 유언을 들어주는 거잖아. 1년 뒤에 우리가 다시 재결합하면 돼, 넌 아무런 손해도 없어."
"지은아, 넌 이미 모든 걸 가졌잖아. 명분, 재산, 그리고 나까지. 이번 한 번만 네가 그 아이에게 양보해."
한 글자 한 글자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소지은은 진태하가 말하는 다솜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송다솜, 그녀의 제자이자 그녀가 4년 동안 후원했던 가난한 대학생이다. 작고 하얀 꽃처럼 가냘프지만 의학 연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는 그 재능이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 재학 기간 내내 그녀를 각별히 챙겼을 뿐만 아니라, 인턴 기간에는 직접 진태하의 회사로 보내 경험을 쌓게 해주었다. 진태하를 위해 인재를 영입해 준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송다솜이 그의 입에서 그녀가 결혼 생활까지 내어주며 양보해야 할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지은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파 가슴을 오르내리며, 입술을 꽉 깨물고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녀는 지난달 송다솜이 개인 메시지로 진태하와 출장 갔을 때 찍은 다정한 사진을 일부러 자랑하듯 보냈던 것을 떠올렸다. 혈색이 도는 얼굴엔 아픈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캐물었다.
"송다솜이 불치병에 걸린 거 확실해? 혹시.. ."
"소지은!"
남자의 주변 기류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혼하기 싫다고 악의적으로 그 아이를 헐뜯지는 마. 다솜이는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일 뿐이야. 누가 자기 목숨을 가지고 그런 장난을 치겠어."
분위기가 얼어붙으며 음울하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자의 불쾌함이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가 이미 너한테 확실하게 말했어. 억지 부리면서 악독하게 남을 의심하지 마."
'내가... 악독하다고?'
소지은은 지척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8년 동안 사랑했던 이 얼굴이 지금은 너무나 낯설고 차가웠다.
5년의 연애,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지극 정성으로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그의 특효약 연구를 돕다가 감염되어 불치병에 걸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소지은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았고, 마음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좋아, 이혼하는 거 동의할게. 이혼 합의서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