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 부한결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후, 가늘게 뜬 눈으로 다시 물었다.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
신서희는 고개를 들고 차갑게 식은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부한결, 3년 동안 나한테 단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설렌 적 있어?"
"없어."
망설임 없이 짧게 내뱉은 그의 대답은 신서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조각 내버렸다. 심장이 무딘 칼에 짓눌린 듯,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구나..."
그녀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애써 가렸다. 이내 그녀는 억지로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태연한 척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렸어. 나랑 마지막으로 저녁을 같이 먹어줄 수 있어?"
부한결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서희는 눈물을 꾹 참고 부한결의 그릇에 밥을 담아 주었다.
그때, 부한결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결 씨, 나 너무 아파. 병원에 와서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
휴대폰 너머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운 곳에 있던 신서희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순간적으로 움츠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사갈게."
부한결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신서희는 어둡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게 바로 사랑과 사랑하지 않는 것의 차이인가?'
부한결이 막 떠나려는 것을 본 신서희는 다급하게 그의 옷깃을 잡고 애원하듯이 말했다. "부한결, 밥 먹고 가."
"신서희, 억지 부리지 마."
말을 마친 부한결은 차갑게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신서희는 묵직하게 아려오는 심장을 감싸 안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3년 전, 부한결은 갑자기 그녀를 찾아와 결혼하자고 했다. 오랫동안 줄곧 그를 짝사랑해 온 신서희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며 지냈다. 신서희는 전업주부로 부한결의 일상을 돌봤다. 비록 부한결이 그녀에게 손길 한 번 닿지 않았지만, 신서희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보름 전, 부한결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신서희는 묵묵히 부한결의 곁에서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도왔다. 그 후, 부한결은 집에 돌아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집에 돌아온 부한결은 갑자기 신서희에게 이혼을 제안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첫사랑 심채원이 귀국했기 때문이다.
신서희는 홀로 거실에 앉아 온몸이 뻣뻣하게 굳을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모두 쓰레기통에 쏟아 부었다. 마치 자신의 산산조각 난 마음을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말이다.
샤워를 마치고 차가운 침대에 누웠지만, 공기 중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부한결의 나무 향 때문에 신서희는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띵--"
그때, 휴대폰 알림이 갑자기 울리더니 적막에 잠긴 밤을 깨뜨렸다.
신서희는 부한결이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낯선 번호에서 몇 장의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사진 속 부한결은 심채원의 어깨에 기대 눈을 꼭 감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신서희, 부한결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네가 아무리 매달려 봐야 소용 없어. 그러니 더 이상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지 마.]
신서희는 휴대폰을 꼭 움켜쥐고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사진을 뚫어지게 내려다봤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녀가 날이 밝을 때까지 거실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부한결의 비서 방지훈이 이혼 합의서를 들고 그녀를 찾아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초췌한 모습의 신서희를 본 방지훈은 마음 한편이 아파왔지만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모님, 부 대표께서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께서 원하시는 건 무엇이든 들어 주신다고 하셨어요."
신서희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방지훈이 건넨 펜을 손에 쥐고 이혼 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그녀는 부한결의 위자료를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빈손으로 집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애초에 그녀가 부한결과 결혼한 것도 돈 때문이 아니었다.
방지훈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 "사모님, 정말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십니까?"
"네."
신서희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겨우 옷 몇 벌만 챙긴 채 3년 동안 지냈던 집을 떠났다.
온 마음 가득 기대와 설렘을 안고 들어왔던 이 곳을, 이제는 빈손으로 떠나야 했다.
집을 나선 신서희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갈 곳을 잃었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이상, 그녀는 부한결 때문에 무너질 순 없었다.
부한결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집착하는 것도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신서희는 휴대폰을 꺼내 노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우야, 나 이혼했어."
노정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그녀를 찾아왔다. 그의 차가 신서희 곁에 급정거하며 먼지를 일으켰다.
"지혜로운 자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잖아. 이혼은 현명한 선택이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운전해."
말을 마친 신서희는 능숙하게 휴대폰을 꺼내 감시 시스템을 해킹한 후, 자신의 모든 행적을 말끔히 삭제해 버렸다.
3년 동안 지냈던 곳을 마지막으로 돌아본 그녀는 일말의 미련 없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