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가문.
어머니의 빈소는 본가에 마련되었다. 그녀의 영정 사진 앞에 켜진 하얀 촛불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고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 보였다.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강유진은 다리에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꼬박 6시간을 무릎 꿇고 있었다.
영정 속 어머니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작년 가을에 찍은 사진이다.
당시 어머니는 세 번째 심장 수술을 마친 뒤였고, 의사는 적합한 심장 기증자를 찾으면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며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강유진은 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심장 기증을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홀로 빈소를 꾸미고, 홀로 부고를 썼으며, 홀로 친지들에게 연락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바쁘게 움직인 그녀지만,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현재, 빈소 안팎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마치 모기처럼 강유진의 귓가에 맴돌았다.
"왜 쟤가 혼자 있는거지? 전에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이 찍혀 스캔들이 터지지 않았어?"
"우리 같은 가문 따위가 어떻게 대통령을 넘보겠어? 주제를 알아야지. 대통령은 이미 마음속에 품은 사람이 있어. 뉴스 못 봤어? 대통령님이 오늘 직접 공항에 마중 나갔다고 뉴스에도 나왔잖아!"
"어머, 어떤 여자가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행복하겠어!"
"대통령의 첫사랑이라고 들었어. 오늘 공항을 통째로 비웠다고 하던데? 아주 난리도 아니야!..."
밖에서 끊임 없이 수군거렸으나 그녀는 듣지 못한 듯 멍하니 영정사진만 쳐다 보았다.
띠링!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며 화면이 밝아졌다.
확인해 보니 최신 기사였다.
<속보! 대통령, 장미꽃을 품에 안고 공항에 나타나 신비한 여인을 마중함.>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그녀의 동공이 급격하게 수축되었다.
그녀는 뉴스를 클릭했다.
사진 속 잘생긴 남자는 바로 그녀의 남편 고주혁이다.
깔끔하게 재단된 검은색 코트를 입은 그는 한 손에 장미꽃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고 있었다.
카메라 각도 탓일까? 두 사람은 마치 포옹하는 것처럼 보였다.
긴 생머리를 자연스레 늘어뜨린 여자는 초연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고 입가에 적절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주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 정말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
이여진.
그녀는 고주혁이 10년 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첫사랑이다.
3년 전, 이여진이 유학을 떠나던 날, 고주혁은 공항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그는 강유진과 결혼했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너무나 우스웠다.
예전에 강유진은 우연히 사고를 당한 고주혁의 할아버지를 구해 주었다.
강유진이 고마웠던 고 어르신은 두 사람의 결혼을 주선했다.
당시, 고주혁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결혼은 할 수 있지만, 내 마음속에 당신의 자리는 없을거야."
그렇게 3년이 지났다.
3년 동안 둘은 결혼을 철저히 비밀로 했다.
결혼식도, 결혼 반지도, 하다 못해 다정한 말 한마디도 없었다.
외부 사람들은 대통령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3년이 지난 만큼, 감정이 쌓였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가족애, 책임감, 하다 못해 등을 맞대고 싸운 전우애라도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전부 그녀의 착각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아홉 번이나 입원했지만, 그는 한 번도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여진이 귀국하자, 그는 직접 마중 갔고 심지어 공항을 통째로 비웠다.
언론은 장미꽃 다발을 품에 안은 대통령의 모습을 TV로 생중계했다. 사진을 보던 강유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자신이 너무 우스웠던 것이다.
'이제, 끝낼 때가 됐어.'
그때, 빈소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마당에 멈춰 섰고 차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빈소로 들어왔다.
강유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주혁이 빈소로 들어섰고 그가 입은 코트에서 밖의 찬바람이 느껴졌다.
그는 영정사진을 흘깃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빌게요."
흠잡을 데 없이 예의 바른 태도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라는 호칭은 칼날처럼 강유진의 마음에 박혔다.
아내의 어머니를 장모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주머니라고 부르다니...
이어서 그는 강유진을 돌아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이 막혀서 늦었어."
'길이 막혔다고?'
강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방석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무릎이 자주색으로 변했을 만큼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에 그녀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녀는 고주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늦게 오든 일찍 오든 다를게 있나요? 엄마가 아홉 번이나 입원했는데, 당신은 한 번도 병원에 찾아 온 적 없잖아요?"
고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는 많이 바빴어."
"정말요? 그렇게 바쁘신 분이 첫사랑이 귀국하자 즉시 공항에 마중 나가셨더라고요? 그럴 시간은 있었나 봐요?"
"이여진은 외교 사절단의 통역사야. 내가 마중 나간 건 일 때문이야." 고주혁의 목소리에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유진, 억지 부리지 마."
'하! 억지 부리지 말라고?'
그때, 강유진은 고주혁의 뒤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하얀색 코트를 입은 이여진은 눈처럼 하얀 피부에 맑게 빛나는 두 눈을 가지고 있었고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녀의 손에는 하얀 장미꽃 한 다발이 들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강유진의 눈을 찔렀다.
이여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 아가씨, 어머니께서 돌아 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유감이에요. 이건 아주머니께 드리려고 준비한 꽃이에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
그녀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 하얀 장미꽃을 영정 사진 앞에 올려놓더니 강유진에게 다가갔다.
보기엔 위로의 포옹을 해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이여진은 낮은 목소리로 강유진의 귓가에 독을 품은 말을 속삭였다.
"강유진, 그거 알아? 주혁 오빠가 네 어머니가 기다리던 심장을 나한테 줬어. 아마 네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몰랐을 걸?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심장을 사위가 가로챘다는 사실을 말이야."
강유진은 온몸이 굳어졌고 몸 속의 피가 전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주혁 오빠는 내 부탁이면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어. 강유진,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말로 내연녀야. 눈치가 있다면 빨리 이혼해."
말을 마친 그녀는 우아한 몸짓으로 강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 주었다. 마치 어머니를 잃은 불쌍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유진의 동공이 급격하게 수축했고 숨이 가빠졌다.
그녀는 이여진의 순진하면서도 위선적인 얼굴을 응시했다. 그 순간, 3년 동안 참아왔던 억울함과 절망이 전부 분노로 변해 활활 타올랐다.
그녀는 손을 들어 이여진의 얼굴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