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나 씨, 재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암 2기입니다.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자 뜨거운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재검사 결과를 가방에 넣은 김유나는 얼굴색이 창백했다.
고승주와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다. 남편은 바람이 났고 그녀는 암에 걸렸다.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김유나는 죽음이 두려웠다. 특히 바람을 피운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주먹으로 모래를 잡을 수 없는 법. 그렇다면 아예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계획을 마친 김유나는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고 자리에서 서류를 챙긴 뒤, 17층 사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김유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남자가 고개를 들고 김유나를 쳐다봤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잘생긴 얼굴, 몇 년 동안 사업에 몸을 담은 탓일까? 고승주의 얼굴에 소년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성숙한 남자의 매력과 권력자의 기세가 더해졌다.
김유나는 그에게 서류를 건네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병원에서 서류를 보내왔어요. 승주씨 사인이 필요해요. 확인해 봐요."
그녀는 건강검진 보고서를 고승주의 앞에 내려 놓더니 친절하게 펜을 열어 그의 손에 쥐여줬다.
고승주는 귀찮은 듯 미간을 찌푸리고 서류를 읽어 보지도 않고 펜을 받아 든 채, 사인을 했다.
"앞으로 이런 사소한 일은 나한테 묻지 않아도 돼."
"네."
김유나는 순순히 대답하고 서류를 챙겼다.
그녀가 몸을 돌리는 순간, 커다란 사무실 책상 아래에서 하얀색 치마가 살짝 드러났다.
그 치마는 그녀의 새어머니의 딸 김은설의 치마가 분명했다.
김유나는 눈을 내리깔고 조소를 감추며 사무실을 나섰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사무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한가 보네?'
김유나의 마음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차가운 호숫물에 삼켜진 것 같았고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서류의 마지막 두 장을 꺼냈다.
고승주가 서류를 조금만 더 자세히 봤다면, 서류에 그녀의 위암 2기 건강검진 결과뿐만 아니라... 이혼 합의서도 섞여 있다는 걸 발견했을 것이다.
김유나와 다섯 살 때 고승주를 처음 만났다. 그 해, 그녀의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고 어머니는 이혼을 요구했다.
두 오빠는 아버지를 따라갔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버지는 내연녀와 사생아 김은설을 집으로 데려왔다.
김유나는 어머니와 함께 이사를 했고 옆집에 사는 고승주를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다.
어릴 때, 고승주는 그녀를 위해 싸우다 갈비뼈가 세 개나 부러진 적도 있었고 그녀가 감기에 걸려 열이라도 나면, 마음 아파 어쩔 줄 몰라 했다.
심지어 그의 SNS엔 온통 그녀의 사진뿐이었다.
영원히 그녀만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사람도 고승주였고, 현재 그녀를 배신한 사람도 고승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