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강고의 황금 커플이 되어야 했다. 엘리아나 차, 그리고 권주혁. 꽤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은가? 우리 이름은 학교의 신화처럼 엮여 있었다. 그의 집 뒷마당에서 아지트를 짓던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 불렸다. 우리는 소꿉친구였고, 미식축구부 쿼터백과 무용수, 살아 숨 쉬는 고등학교 로열패밀리의 클리셰 그 자체였다. 우리의 미래는 깔끔하게 그려진 지도 같았다. 졸업, 해변에서의 캠프파이어로 가득한 여름, 그리고 서울대 바로 옆 기숙사 방 두 개. 완벽한 계획. 완벽한 인생.
권주혁은 모두가 그 주위를 맴도는 태양이었다. 단순히 잘생겨서가 아니었다. 비스듬히 짓는 장난기 어린 미소와 맑은 날 동해 바다 같은 눈동자 때문만도 아니었다. 세상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고 자신은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듯, 오만함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의 몸짓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 작은 우주의 왕이었고, 나는 기꺼이 그의 여왕이 되었다.
우리의 역사는 함께한 순간들로 짜인 태피스트리였다. 첫걸음, 첫 옹알이, 그리고 그의 첫 승리 후 관람석 아래에서 나눈 첫 키스까지. 나는 그의 눈썹 위 흉터가 일곱 살 때 자전거에서 넘어져 생긴 것이라는 걸 알았고, 그는 내가 긴장할 때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서로 얽혀 있었다. 뿌리가 너무 깊게 엉켜 있어, 그걸 분리하는 건 나무를 통째로 뽑아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졸업반이 되던 해, 완벽했던 지도는 찢겨 나갔다.
그녀의 이름은 카타리나 민. 사슴처럼 커다란 눈망울과 온갖 사연을 가진 전학생이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인형처럼 연약하게 아름다웠고, 사람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교장 선생님이 주혁을 교장실로 불렀다. “주혁아, 넌 이 학교의 리더잖니.”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카타리나가 새로 와서 적응을 힘들어하는 것 같구나. 네가 학교 구경도 시켜주고,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그날 오후, 주혁은 내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투덜거렸다. “또 귀찮은 일만 늘었어. 할 일도 많은데.”
“그냥 친절하게 대해 줘.”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주며 말했다. “금방 끝날 거야.”
나는 너무 순진했다.
시작은 사소했다. 카타리나가 도서관 가는 길을 “잃어버려서” 우리의 스터디 약속을 놓쳤다. 그러다 카타리나가 그가 이미 마스터한 미적분 문제를 “도와달라고 해서” 점심 약속에 늦었다.
처음에는 그의 사과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의무”에 대한 짜증과 함께. 그는 나를 끌어안고 이마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미안해, 엘리. 걔가 좀… 유난스러워서.”
하지만 ‘유난스러운’ 그녀는 금세 그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사과는 점점 짧아졌고, 나중에는 무시하는 듯한 어깨짓으로 변했다. 그의 핸드폰이 그녀의 이름으로 울리면, 그는 자리를 떠서 전화를 받았고, 식어가는 음식을 앞에 둔 채 나 혼자 남겨졌다.
처음으로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내 목소리는 떨렸고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더는 못 하겠어, 주혁아. 널 다른 사람이랑 나누는 기분이야.”
그는 새파랗게 질렸다. 그날 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 stargazer 꽃다발을 들고 내 방 창문으로 찾아왔다. 그의 눈에는 우리가 열다섯 살 때 붐비는 쇼핑몰에서 나를 잃어버린 줄 알았을 때와 같은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는 멈추겠다고, 나뿐이라고 맹세했다.
나는 그를 믿었다.
두 번째는 그가 우리의 기념일 저녁 식사를 바람맞히고 카타리나를 “가족 응급 상황” 때문에 데려다줬을 때였다. 알고 보니 친구 집에 지갑을 두고 온 게 전부였다. 이번에는 내 위협이 더 단호했다. “우리 끝났어, 주혁아.”
이번 그의 사과는 약속과 우리의 과거 추억으로 가득 찬 길고 진심 어린 문자 메시지였다. 그는 우리의 서울대 꿈과 해변가에 얻을 아파트에 대해 상기시켰다.
나는 또 무너졌다.
열 번째, 스무 번째, 쉰 번째가 되자, 그것은 지긋지긋하고 소모적인 춤이 되어버렸다. 한때 진정한 고통에서 비롯되었던 나의 위협은 공허한 애원이 되었다. 그리고 권주혁은 학습했다. 내 위협이 텅 비었다는 것을. 내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그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오만함은 굳어졌다. 내 고통은 불편함이 되었고, 내 눈물은 유치한 투정이 되었다. “엘리, 진정해.” 그는 테이블 밑에서 카타리나에게 문자를 보내며 지루한 투로 말했다. “어디 안 갈 거잖아.”
그가 옳았다. 나는 떠나지 못했다. 오늘 밤까지는.
아흔여덟 번째 상처는 일주일 전에 찾아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 아흔아홉 번째는 달랐다. 그것은 내 마지막 희망의 조각에 대한 공개적인 처형이었다.
강민준네 집에서 열린 졸업 파티였다. 넓은 뒷마당과 머리 위 스트링 조명을 반사하는 반짝이는 푸른 수영장이 있는 그런 파티. 터무니없이 짧은 드레스를 입은 카타리나는 주혁의 팔에 매달려 그가 하는 말에 조금 과장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잔디밭 건너편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는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저 차갑고 도전적인 시선뿐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실수로” 비틀거리며 넘어지면서 나를 함께 끌고 들어갔다. 차가운 물은 충격이었고, 내 드레스는 순식간에 무거워져 나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나는 컥컥거리며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 발을 디디려 애썼다. 카타리나는 극적으로 허우적거리며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주혁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그대로 지나쳐 갔다. 그는 카타리나를 품에 안고 수영장 가장자리로 끌어냈고, 불과 몇 피트 떨어진 곳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는 무시했다.
친구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그가 그녀를 꺼내 주었을 때, 그는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고 온몸이 떨리는 나를 돌아봤다.
“네 인생, 이제 내 문제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내가 빠져 죽어가던 물만큼이나 차가웠다.
나는 간신히 몸을 끌어내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 마스카라는 검은 강물처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흠뻑 젖고 굴욕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멀쩡한 카타리나에게 자신의 야구 점퍼를 둘러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그리고 우리 반 친구들의 동정 어린 조롱의 시선을 지나쳐 곧장 걸어갔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 끝났어.”
텅 빈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가며 속삭였다. 그 말은 재처럼 썼다.
물론 그는 믿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우리의 지겨운 춤의 또 다른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안에 내가 울면서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는 나를 따라오지도 않았다. 딱 한 번 뒤돌아봤을 때, 그는 여전히 카타리나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웃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 내가 몇 년 동안 붙잡고 있던 연약하고 닳아빠진 것이 마침내 먼지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요란한 폭발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마지막 균열이었다.
아흔아홉 번째.
백 번째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축축한 옷을 입은 채 집에 도착했고, 현관 대리석 바닥에 물 자국을 남겼다. 곧장 노트북으로 향했다. 내 손가락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명료하게 움직였다. 서울대 학생 포털을 열었다. 가슴속 심장은 둔탁하고 꾸준하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탭을 열었다. 뉴욕대.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지원 현황으로 들어가자, 합격 통지서가 화면에서 빛나고 있었다. 버튼이 하나 있었다. “뉴욕대 등록 확정.”
최근 부모님의 뉴욕 발령은 그분들에게는 고민거리였지만, 갑자기 우주가 보낸 신호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은 내가 서울대에 가서 가까이 있기를 바라셨지만, 선택은 항상 내 몫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버튼을 클릭했다.
확인 페이지가 나타났다. “뉴욕대 202X학번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화면을 응시했다.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글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상심의 눈물이 아니었다. 무섭도록 짜릿한 자유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지우기 시작했다. 핸드폰, 노트북, 클라우드 저장소에서 그의 사진을 삭제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몇 년 동안의 사진 태그를 풀었다. 벽에 걸린 액자 사진들을 내렸다.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소년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녀의 웃는 얼굴들.
그가 내게 줬던 모든 것을 모았다. 내가 항상 입던 그의 야구 점퍼,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들어준 믹스테이프, 첫 무도회의 마른 코르사주, 우리 이니셜이 새겨진 작은 은색 로켓. 죽은 기억의 작은 유령 같은 물건들을 하나씩 판지 상자에 담았다.
상자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내 어린 시절 전체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마지막 물건은 우리가 열 살 때 그가 카니발에서 따준 작고 낡은 테디베어였다. 나는 잠시 그것을 들었다. 닳은 털이 뺨에 부드럽게 닿았다. 거의 흔들릴 뻔했다.
그러다 수영장 옆에서 본 그의 차가운 눈빛을 떠올렸다. 네 인생, 이제 내 문제 아니야.
나는 곰 인형을 상자에 떨어뜨리고 테이프로 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