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와의 1년간의 약속은 간단했다.
내가 우리 회사에서 위장 근무하는 동안, 그는 우리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
그 약속은 CEO인 그가 신입 개발자인 나에게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여자에게 사과하라고 명령한 날 끝났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투자자들 앞에서.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끝의 시작은 화요일, 내가 ‘비숍 이노베이션’의 신입 개발자로 출근한 첫날이었다.
나는 매끈하고 미니멀한 로비에 서 있었다.
낡은 내 백팩은 반짝이는 크롬과 유리 인테리어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나는 인사팀이 나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공동 창업한 회사에서, 그저 이름 없는 또 한 명의 신입사원일 뿐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내 것이었다.
순진할지언정, 우리 회사의 문화를 밑바닥부터 이해하고 싶다는 진정한 열망에서 태어난 약속이었다.
“1년만.”
나는 내 약혼자이자, 우리 회사의 얼굴이며 CEO인 강태준에게 말했다.
“1년만 유령처럼 지낼게. 우리 직원들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의 하루가 어떤지 알고 싶어. 상아탑에 앉아서는 건강한 회사를 만들 수 없어.”
그는 웃으며 내게 키스하고는 동의했다.
“나의 똑똑한, 비밀 공동 창업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그 기억은 따뜻했다.
불과 몇 달 전인데도, 마치 평생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요란한 움직임이 로비의 고요한 선(禪)과 같은 분위기를 깨뜨렸다.
유리문이 극적인 ‘휙’ 소리를 내며 열리고, 한 여자가 폭풍처럼 들어왔다.
그녀는 명품 브랜드와 눈에 띄는 특권 의식으로 휘감은 회오리바람 같았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오버사이즈 선글라스, 그녀의 하이힐은 대리석 바닥 위에서 분노에 찬 스타카토를 연주했다。
그녀는 곧장 안내 데스크로 직진했다.
플래티넘 카드를 카운터에 ‘탁’ 소리가 나게 내리치자, 안내 직원이 움찔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그녀는 마치 이런 평범한 요구를 입에 담는 것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 경멸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요구했다.
“그리고 강태준 대표님께 내가 왔다고 전해.”
크고 불안한 눈을 한 젊은 안내 직원이 더듬거렸다.
“저… 손님, 여긴 회산데요. 커피숍이 아니라… 강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여자의 웃음소리는 날카롭고 싸늘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코끝으로 살짝 내리며, 경멸로 차가운 눈을 드러냈다.
“내가 누군지 알아?”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된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쿡 찔렀다.
“제이든 주. 들어본 적 없어? 뭐, 됐어. 그냥 커피나 가져와. 당장. 그리고 탕비실에 있는 그 역겨운 인스턴트 가루는 절대 쓰지 마. 갓 내린 원두로. 5분 주지.”
나는 펼쳐지는 드라마의 조용한 관찰자로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프린터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내 사원 수첩에는 명확한 행동 강령이 적혀 있었다.
전문성, 존중, 진실성.
제이든 주는 등장한 지 30초 만에 그 모든 것을 위반하고 있었다.
나는 표정을 감추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했다.
내 역할은 개입이 아니라 관찰이었다.
“손님, 저는 자리를 비울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저희 탕비실에는…”
안내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설명하려 했다.
“그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제이든이 쏘아붙였다.
그녀는 로비를 훑어보았고, 그녀의 얼음장 같은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내 평범한 청바지, 심플한 스웨터, 눈에 띄지 않는 백팩에.
그녀는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 하찮은 존재로 보았다.
그녀는 숨 막히는 구름 같은 비싼 향수를 풍기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여기서 일해?”
나는 차분하게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네. 신입입니다.”
“완벽하네.”
잔인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번졌다.
“그럼 아직 쓸모없어지는 법은 안 배웠겠네. 가서 내 커피 가져와. 아메리카노. 갓 내린 원두로. 이제 4분 남았어.”
첫 본능은 뜨거운 분노의 파도였다.
나는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였다.
내 이름은 아버지의 금고에 잠겨 있는 비밀 법인 설립 서류에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내 공식적인 신분은 신입 개발자, 블레이크 스틸.
그리고 신입 개발자는 CEO의… 손님에게 말대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숨을 골랐다.
“알겠습니다.”
나는 침착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겠습니다.”
나의 정중함은 차라리 반항보다 그녀를 더 격분시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가 할 일은 내 커피를 가져오는 거야. 그 멍청한 소 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지 마. 그냥 고개 끄덕이고 가.”
그녀는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화장 속 미세한 모공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나를 위협하고, 자신이 주인이라고 여기는 이 공간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도대체 이 부서 사람들은 누가 뽑는 거야?”
그녀는 로비 전체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내 실용적이고 편안한 신발을 훑어본 뒤, 보란 듯이 자신의 아찔한 루부탱 구두를 가리켰다.
“수준이 확실히 떨어지고 있네.”
그녀는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독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져올 때, 나를 ‘주 이사님’이라고 불러. 알았어?”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 남자가 복도에서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창백했다.
개발 부서장인 박 팀장이었다.
나의 새로운 상사.
“주 이사님!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거의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 신입사원 때문에 죄송합니다. 아직 규칙을 잘 모릅니다.”
제이든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냥 확실히 배우게나 해. 빨리.”
그녀는 그를 밀치고 강태준의 임원실로 이어지는 복도로 사라졌다.
박 팀장은 길고 떨리는 숨을 내쉬고 나를 돌아봤다.
그의 표정은 연민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들어봐요, 블레이크 씨. 저분은 제이든 주예요. 그분은… 특별해요.”
“어떻게 특별한데요?”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물었다.
“강 대표님 손님이에요. 상주하는 손님.”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몇 년 전에 대표님 여동생 목숨을 구해줬대요. 골수 기증으로. 대표님은 그분에게 모든 걸 빚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은 원하는 건 뭐든 얻어요. 불만 한마디로 여기서 사람 커리어를 만들 수도, 망가뜨릴 수도 있어요. 그냥… 그분 눈에 띄지 마요. 사과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고개 숙이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제이든 주. ‘구원자’.
강태준은 물론 그녀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영웅, 이타적인 여자를 묘사했었다.
이런 잔인하고 자기애에 빠진 괴물이 아니라.
그리고 그는 그녀가 우리 직원들을 공포에 떨게 할 자유이용권을 가졌다는 말은 절대 한 적이 없었다.
불안감의 차가운 덩어리가 뱃속에서 뭉쳤다.
진짜 창업 서류에는 두 명의 공동 창업자가 명시되어 있었다.
강태준과 블레이크 ‘서’.
스틸이 아니라, 서.
실리콘 밸리의 거물, 서진혁 회장.
나의 아버지.
강태준은 제이든이 스스로 행세하는 ‘안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안주인이었다.
이 회사는 그의 것인 만큼 내 것이기도 했다.
그는 왜 이걸 허용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 질문을 억눌렀다.
나는 관찰하러 왔다.
이건 그저 나의 첫 번째 시험일 뿐이었다.
회사 문화에 대한 시험, 그리고 강태준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
좋아.
어디 한번 어떻게 이끄는지 보자.
그리고 제이든 주 이사님이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