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온 가족을 삼켜버린 화마 속에서 권도준이 나를 끄집어내 주었다. 그 후 10년 동안, 거대 범죄 조직의 보스인 그는 나의 수호신이자 나의 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다른 여자와의 약혼을 발표했다. 두 거대 범죄 제국을 통합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그는 여자를 집으로 데려와 권씨 가문의 미래 안주인이라 칭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약혼녀는 내 목에 싸구려 금속 목줄을 채웠다. 나를 자신들의 애완동물이라 부르면서.
권도준은 내가 금속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며, 그걸 받으라고 명령했다.
그날 밤, 나는 벽 너머로 그가 여자를 자신의 침실로 들이는 소리를 들었다.
어린 시절 그가 내게 했던 약속이 거짓이었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그의 가족이 아니었다. 그의 소유물이었다.
10년간의 헌신 끝에, 그에 대한 내 사랑은 산산이 부서져 한 줌의 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생일날, 그가 새로운 미래를 축복하는 바로 그날, 그의 황금빛 새장을 영원히 걸어 나왔다.
전용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친아버지, 그의 가장 강력한 적에게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제1화
서세라 POV:
내 인생이 끝장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권도준이 다른 여자와의 약혼을 발표한 바로 그날이었다.
그건 평창동 권씨 저택의 텅 비고 거대한 복도에서 들려온 속삭임이 아니었다. 깊은 밤, 은밀한 고백도 아니었다. 내 휴대폰 화면에 선명한 검은 글씨로 박힌 헤드라인이었다. 대리석 카운터 위에서 죽어가는 벌레처럼 윙윙거리는 뉴스 알림이었다.
*국내 최대 조직 ‘권씨 가문’의 권도준 회장, ‘윤씨 가문’의 윤이사벨과 결혼. 두 거대 제국의 통합.*
글자들이 흐릿해졌다. 내 세상은 손에 쥔 휴대폰으로 좁혀졌다. 그 차가운 무게가 불신의 바다 속에서 나를 붙잡는 유일한 닻이었다. 이건 분명 실수일 거야. 권력 다툼이거나. 적을 끌어내기 위한 거짓말이거나. 절대 현실일 리 없었다.
권도준은 내 남자였으니까.
여덟 살 때부터 그는 내 사람이었다. 그 화재가 기억난다. 폐를 가득 채우던 매캐한 연기와 공포의 냄새. 우리 서씨 가문은 무너지고 있었고, 나는 그저 버려진 부수적 피해자일 뿐이었다. 그때 그가 불길을 뚫고 나타났다. 그가 지배하는 세상처럼 어둡고 무자비한 눈을 가진 열여섯 살 소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내 위로 던져, 벽에 튀는 피와 열기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그는 내 머리카락에 대고 거칠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안전해. 넌 이제 권씨 가문 사람이야.”
지난 10년 동안, 그 약속은 나의 종교였다. 대리석 바닥과 말없이 지켜보는 경호원들로 가득한 이 황금빛 새장에서, 권도준은 나의 신이었다. 열 살 때 악몽이 멈추지 않자 내게 작은 고양이 모양 무드등을 사준 것도 그였다. 부드럽고 한결같은 빛을 내는 도자기 인형. “이게 괴물들을 쫓아줄 거야.” 그가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며 말했다. 그의 커다란 손은 다정했다.
물론, 그 자신이 괴물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괴물이었고, 다른 모든 괴물들을 막아주었다.
그러다 열일곱 살 생일, 나는 내 처지에 있는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그에게 편지를 썼다. 서툴고 진심 어린 문장으로 쏟아낸 고백. 십 대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내 피 한 방울까지 떨어뜨렸다.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서재 밖 쓰레기통에서 그 편지가 수천 조각으로 찢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날 밤 그는 도서관에서 나를 구석으로 몰았다. 가죽 장정된 책들로 가득한 책장에 나를 가두고서. 그의 눈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날 사랑하지 마, 세라야.” 그가 낮고 위험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날 사랑하면, 넌 죽어. 알아들어?”
나는 알아들었다. 하지만 믿지 않았다. 그건 시험처럼 느껴졌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뒤틀린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의 옆에서 웃고 있는 윤이사벨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손이 소유욕 넘치게 그의 팔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알았다. 그건 시험이 아니었다. 예언이었다.
그는 그날 저녁 그녀를 저택으로 데려왔다. 내가 중앙 계단에 서 있을 때 그들이 들어왔다. 윤이사벨은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여자였다. 키가 크고, 우아하며, 싸움을 예고하는 날카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이미 이곳의 주인인 것처럼 움직였다.
권도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온기도, 사과도 없었다. 그저 차갑고 냉정한 명령뿐이었다.
“서세라.” 그의 목소리가 텅 빈 현관에 울려 퍼졌다. “이사벨이다. 앞으로 권씨 가문의 미래 안주인으로 모셔라.”
그 말은 물리적인 타격이었다. 안주인. 그건 원래…
윤이사벨의 미소는 무기였다. “권도준 씨가 새장 속에 고이 간직한 작은 카나리아를 드디어 만나게 되어 기쁘네요.”
손이 차갑게 식었다. 모든 경호원, 모든 사용인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핏줄로는 서씨 가문 사람이었고, 자선으로 권씨 가문 사람이었다. 그가 적들의 폐허 속에서 주워온 길 잃은 개. 그리고 이제, 진정한 여왕이 왕좌를 차지하러 온 것이었다.
그날 밤, 내 침실에 갇혀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옅은 금빛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흘러내렸다. 권도준은 항상 내 머리카락을 좋아했다. 그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 정원의 꽃줄기를 자를 때 쓰던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 순수하고 금빛인 머리카락 한 줌을 손에 쥐었다.
싹둑.
그것은 차가운 타일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은 것 마냥.
싹둑. 싹둑. 싹둑.
귀밑까지 들쭉날쭉하게 잘려나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야수처럼 보였다. 망가진 모습이었다.
나는 발코니로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새로 드러난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재킷의 숨겨진 주머니에서 경호원에게서 훔친 담배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불을 붙이자 익숙하지 않은 연기가 목구멍을 찔렀다. 기침이 터져 나왔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법이다.
나는 다시 한번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연기가 나를 채우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무자비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향해 맹세했다. 나는 여기서 나갈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