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 갇힌 나는 2층 창문에서 몸을 던졌다.
피를 흘리며 부서진 몸으로 달리면서, 나는 몇 년 동안 걸지 않았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진혁 삼촌.”
나는 전화기에 대고 흐느꼈다.
“이혼하고 싶어요. 그리고 삼촌이 그 사람을 파멸시키는 걸 도와줬으면 해요.”
그들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방금 진양 가문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제1화
강세라 POV:
내 남편이 아닌 다른 여자를 무심함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처음 본 순간은, 바로 그 여자가 스테이크 나이프로 그의 팔을 찌른 직후였다.
사건은 에이펙스 이노베이션에서 열린 내 환영 만찬에서 일어났다.
IT 업계의 황태자, 권도혁과 결혼한 지 3개월.
나는 마침내 그를 설득해 그의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의 팔에 걸린 아름다운 장식품, 서울 한남동의 거대한 빌라에 숨겨둔 어린 학생 아내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가 마침내 동의했고, 이 저녁 식사는 축하의 자리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은 전쟁터에 더 가까웠다.
윤채아가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에이펙스의 평생 라이벌인 태림테크의 상속녀이자, 내가 본 여자 중 가장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레스토랑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선혈처럼 강렬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프라이빗 다이닝 룸으로 폭풍처럼 들어섰다.
분노와 광기로 불타는 그녀의 눈은 오직 권도혁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진짜 쟤랑 결혼했어?”
윤채아의 목소리는 불신과 경멸이 뒤섞인 낮은 으르렁거림이었다.
그녀에게서는 값비싼 위스키 냄새가 진동했다.
“이 하찮은 짝퉁이랑?”
임원들이 앉은 테이블에 긴장된 수군거림이 퍼져나갔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본능적으로 테이블 아래에서 권도혁의 손을 꽉 잡았다.
그는 안심시키려는 듯 내 손을 살짝 쥐어주었지만, 그의 시선은 윤채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채아야, 너 취했어.”
그의 목소리는 위험할 정도로 차분했다.
“집에 가.”
“집?”
그녀가 거칠고 추한 소리로 웃었다.
“내 집은 언제나 네가 있는 곳이잖아, 도혁아. 너도 알잖아. 그런데 넌… 쟤랑 여기에 있기로 한 거고.”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가, 순식간에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녀는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맞춤 정장 옷깃을 움켜쥐었다.
“나 자극하려고 이런 거지, 그렇지? 나랑 좀 닮은 멍청하고 눈만 큰 애 하나 찾아서, 내 관심 끌려고 반지 끼워준 거잖아.”
숨이 턱 막혔다.
나랑 좀 닮았다고?
물론, 나도 그 유사점을 알고 있었다.
같은 검은 머리, 같은 날카로운 턱선.
하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날카롭고 거친 반면, 내 것은 부드러웠다.
그녀의 눈은 폭풍이었고, 내 눈은 그냥… 갈색이었다.
“소란 피우지 마.”
권도혁이 그녀의 손을 떼어내려 애쓰며 딱딱하게 말했다.
바로 그때, 나는 그 변화를 목격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깊고, 거의 고통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연결고리.
그것은 방 안의 모든 공기를 빨아들이는 독한 에너지였다.
그는 술에 취한 비즈니스 라이벌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복잡하고 날것 그대로의 무언가를.
“약속했잖아.”
그녀가 그와 나만 들을 수 있는 악독한 속삭임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잖아. 다른 사람은 절대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심장이 멎었다.
권도혁은 우리 결혼식 날 밤, 내게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진심 어린 눈으로 내가 유일하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한때 너무나 소중했던 그 기억이, 이제는 내 속을 헤집는 것 같았다.
윤채아는 마침내 그를 놓아주었지만, 그건 테이블에서 스테이크 나이프를 집어 들기 위함이었다.
“죽여버릴 거야.”
그녀는 살짝 비틀거리며 중얼거렸다.
권도혁은 움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기묘하고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혹이었다.
그녀가 달려들었다.
칼날이 그의 양복 소매를 찢고 팔뚝 살을 파고들었다.
새하얀 셔츠 위로 짙은 진홍색 피가 피어났다.
방 안에서 일제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의자가 바닥에 시끄럽게 긁히는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도혁 씨!”
하지만 그는 피 흘리는 팔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의 눈은 윤채아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보았다.
어둡고 소유욕 강한 무언가의 불꽃을.
단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었던, 깊고 아픈 염려를.
“언제나.”
그가 중얼거렸다.
오직 그녀만을 위한 단 한마디.
그것은 내가 듣지 못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고,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약속의 확인이었다.
윤채아의 분노가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이 무너져 내렸고, 칼이 바닥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눈물이 번진 마스카라와 뒤섞여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비싼 드레스를 더럽히는 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가슴에 몸을 던지며 흐느꼈다.
그리고 권도혁은… 권도혁은 다치지 않은 팔로 그녀를 감싸 안고, 꽉 껴안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고, 그의 턱이 그녀의 머리 위에 놓였다.
내가 알던 차갑고 무자비한 CEO는 사라지고, 억눌리고 고통스러운 다정함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
방 안은 윤채아의 목메인 울음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했다.
임원들은 충격과 어색한 동정이 뒤섞인 얼굴로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은 자신을 공격한 여자를 안고 있는 피 흘리는 남자에게서, 테이블 옆에 얼어붙은 채 서 있는 잊힌 아내인 나에게로 향했다.
“또 시작이네.”
근처 테이블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쟤는 항상 저래.”
“권도혁 아내 불쌍해서 어떡해.”
또 다른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진짜 윤채아 젊었을 때랑 똑같이 생겼네. 왜 결혼했는지 알겠다.”
속삭임들이 뺨을 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짝퉁. 대체품.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게임의 졸.
속이 울렁거렸고,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내 몸은 차가워졌다가 뜨거워졌고, 온몸을 태우는 굴욕감이 육체적으로 발현되는 듯했다.
권도혁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윤채아를 부드럽게 뒤로 밀어내고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시선은 부드러웠고, 목소리는 낮은 애무 같았다.
“집에 가, 채아야. 이건 내가 처리할게.”
그는 비서에게 돌아섰다.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려.”
그러고 나서, 마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방금 기억해 낸 것처럼, 그의 눈이 나를 찾았다.
다정함은 사라지고, 내가 너무나 익숙한 차갑고 먼 가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 흘리는 팔에 서투르게 감았다.
“세라 씨, 괜찮아요?”
그가 정중하고 무심한 톤으로 물었다.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모래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가 휴대폰을 꺼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있던 내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요. 채아는… 복잡한 사람이에요. 내가 처리할게요. 집에 가서 좀 쉬어요. 늦게 들어갈게요.’
그는 울고 있는 윤채아의 팔을 감싸고 부드럽게 출구 쪽으로 이끌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걸어 나갔다.
그는 내가 어떻게 떨고 있는지, 내 세상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나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방에 홀로 서서, 그들의 동정의 무게에 짓눌렸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첫 번째는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때까지 울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는 거절당했다.
내 가면이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고, 터져 나오지 못한 눈물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나는 우리의 폭풍 같았던 로맨스를 떠올렸다.
총명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IT 거물이 평범한 대학생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순간들을.
그는 나를 숨 막히게 할 정도로 집요하게 좇았다.
그는 내 친절함, 조용한 강인함, 내 전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짝이는 내 눈빛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나와 함께 있기 위해, 서울에 있기 위해 다른 지역의 수십억 달러짜리 인수 계약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그는 내가 그의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진실을 보았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모든 사랑스러운 눈빛, 모든 속삭이는 약속, 모든 거창한 제스처.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연기였다.
윤채아와의 뒤틀리고 유독한 게임 속에서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저 무대였을 뿐이다.
나는 마침내 비틀거리며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우리 빌라로 돌아왔다.
한때 우리의 새로운 삶의 상징이었던 집은 이제 금박을 입힌 새장처럼 느껴졌다.
함께 웃고 있는 우리의 모든 사진, 그가 내게 준 모든 선물이, 꼼꼼하게 만들어진 연극의 소품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서는 윤채아의 말이 되풀이되었다.
‘약속했잖아.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리고 권도혁의 한마디 대답.
‘언제나.’
차가운 공포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답을 찾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이끌려, 나는 집 안을 걷기 시작했다.
내 발소리가 고요함 속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내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곳은 그처럼 세련되고 미니멀했다.
하지만 한쪽 문은 항상 잠겨 있었다—그의 개인 서재.
그는 중요한 업무 서류를 보관하는 곳이라며 사생활을 존중해달라고 말했었다.
오늘 밤, 나는 그의 사생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의 책상 위에서 무거운 레터 오프너를 찾아 자물쇠에 쑤셔 넣었다.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는 것에 힘입어 비틀고 밀자,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활짝 열렸다.
안의 공기는 퀴퀴했고, 한 여자의 향수 냄새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향수가 아니었다.
튜베로즈와 재스민의 풍부하고 강렬한 향, 윤채아에게서 났던 바로 그 향이었다.
그 방은 사무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전이었다.
벽은 사진으로 뒤덮여 있었다.
내 사진이 아니라, 윤채아의 사진으로.
십 대 시절의 윤채아가 카메라를 향해 짓궂게 웃고 있는 사진.
요트 위에서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는 윤채아.
권도혁과 윤채아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가 그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불꽃으로 눈을 빛내고 있는 사진.
벽난로 위에는 그녀의 거대한 유화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그림 속 그녀의 눈은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유리 진열장에는 기념품들이 들어 있었다.
말린 장미, 콘서트 티켓, 은색 로켓.
책상 위에는 붉은 리본으로 묶인 편지 더미가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리본을 풀었다.
권도혁의 필체였다.
‘나의 사랑하는 채아에게, 우리가 싸울 때조차, 내가 너를 미워할 때조차, 내 눈에는 오직 너만 보여.’
나는 불에 덴 듯 편지를 떨어뜨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미끄러졌고, 온몸이 떨렸다.
그는 이곳에 들어왔던 것이다.
우리 결혼 생활 3개월 동안, 그는 이 비밀의 방에 들어와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의 향기를 마시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던 것이다.
나는 거친, 파괴적인 충동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벽에서 사진을 찢어버리고, 그림을 산산조각 내고,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휴대폰이 울려 나를 놀라게 했다.
권도혁이었다.
“세라 씨? 집에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었다.
“어디예요?”
나는 팽팽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오늘 밤 일 수습 중이에요.”
그가 회피하며 말했다.
“저기, 미안해요—”
“집에 와요, 도혁 씨.”
나는 잿가루 같은 맛이 나는 말로 그의 말을 끊었다.
“제발요. 나… 무서워요.”
그것은 시험이었다.
그가 나를 선택해달라는 마지막, 절박한 애원이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의 망설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선택지를 저울질하는 것을 거의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못 가요, 세라 씨.”
그가 마침내 말했고,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최종적이었다.
“채아가 날 필요로 해요.”
“도혁 씨, 감히—”
“아침에 집에 갈게요.”
그가 전화를 끊기 전에, 나는 들었다.
배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여성스러운 한숨 소리를.
윤채아의 한숨을.
전화가 끊겼다.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한숨이 아니었다.
그것은 연인의 품에 안긴 여자의 만족스러운 소리였다.
내 안의 마지막 희망의 흔적이 죽었다.
나는 그가 그녀를 위해 지은 신전을 둘러보았고, 차갑고 단단한 결심이 상심을 대신했다.
나는 윤채아의 유화 초상화를 움켜쥐었다.
그 액자는 내 손에 무겁게 느껴졌다.
순수한 분노의 비명과 함께, 나는 그것을 책상 모서리에 내리쳤다.
캔버스가 찢어지고, 금박을 입힌 액자가 산산조각 났다.
나는 그들의 게임에서 그저 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대체품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전쟁을 원한다면?
그들은 전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 타자를 치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몇 달 동안 전화하지 않았던 번호, 비상사태를 위해 숨겨두었던 번호로 스크롤했다.
“진혁 삼촌.”
나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세라예요. 삼촌이 필요해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이어서 날카롭고 걱정스러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라야? 무슨 일이야? 그 자식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혼하고 싶어요.”
나는 마침내 터져 나오는 말과 함께 흐느꼈다.
“그리고 삼촌이 그 사람을 파멸시키는 걸 도와줬으면 해요.”
“전부 다 말해봐.”
그가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서 나는 보복의 약속을 들었다.
“데리러 갈게.”
진양 가문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권도혁은 자신에게 무엇이 닥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