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된 거짓말에는 이름이 있었다. 박서연.
나는 잘 가꿔진 별장 정원에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재스민의 두껍고 향기로운 장막 뒤에 숨어서. 늘 위안을 주던 그 향기는 오늘 밤따라 역겨웠다. 비와 기만의 냄새가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축축한 안개가 내 피부에 달라붙어 얇은 드레스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 드레스는 박주원이 ‘편안한 주말여행’을 위해 직접 골라준 것이었다. 그의 비극적으로 죽은 동생의 기일을 견디는 나를 위한 주말.
하지만 박서연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석조 테라스 위에 서 있었다. 프렌치 도어에서 쏟아지는 따뜻하고 황금빛 조명을 받으며. 반세기 동안 듣지 못했던 웃음소리를 내지르며, 고개를 젖힌 채 내 남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남자, 박주원을. 그는 몇 년간 본 적 없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품에 안은 작은 아이를 가볍게 흔들어주고 있었다. 주원의 검은 머리칼과 서연의澄澈한 눈을 가진 아이였다.
나의 부모님도 그곳에 있었다. 어머니는 서연의 팔에 손을 얹고, 내가 단 한 번도 끌어내지 못했던 기쁨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원의 옆에 서서 그의 어깨를툭 치며, 마치 진정한 가족을 거느린 자랑스러운 가장처럼 행동했다.
“날이 갈수록 널 더 닮아가는구나.”
축축한 밤공기 속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날아왔다.
“그래도 저 고집스러운 턱은 당신을 닮았어요.”
내가 묻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들려오는 유령의 메아리처럼, 서연의 목소리가 답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아이의 코를 살짝 건드렸다.
머리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건 꿈이다. 악몽이다. 서연은 교통사고로 죽었다. 우리는 장례식도 치렀다. 나는 몇 달 동안 산산조각 난 주원을 위로하고, 슬픔에 잠긴 내 부모님을 다독였다. 그녀가 남긴 빈자리를 중심으로 내 삶을 재건했다.
“서아는 정말 아무것도 눈치 못 챈 거 확실해?”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게 울렸다. 익숙하고, 무시하는 듯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주원이 코웃음을 쳤다. 날카롭고 추악한 소리였다.
“강서아는 내가 의심하라고 하는 것만 의심해. 순종적이고 슬픔에 잠긴 아내 역할에 너무 심취해서, 진실이 코앞에 있어도 모를걸. 아직도 이번 주말이 서연이 추모하는 여행인 줄 안다고.”
끔찍한 구역질이 밀려와 손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 세상이 기울어지는 듯했고, 재스민 덩굴이 나를 휘감으며 뒤틀리는 것 같았다. 순종적인. 슬픔에 잠긴. 아내. 그 단어들은 독약과도 같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서연의 목에 걸려 빛을 반사하는 독특한 고풍스러운 은색 로켓. 정교하게 조각된鳴鳥 모양에 작은 사파이어 두 개가 눈으로 박혀 있었다. 할머니의 로켓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기 몇 년 전, 강도를 당해 잃어버렸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가보가 영원히 사라졌다고. 그런데 그것이, 유령이어야 할 여자의 살갗 위에서 버젓이 빛나고 있었다.
퍼즐 조각들이 역겨운 속도로 맞춰졌다. 가짜 결혼. 거짓말들. 내 모든 인생은, 그들이 완벽하고 소중한 박서연을 안전하게 숨겨두는 동안, 내 상속 재산을 통제하고 나를 붙잡아두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된 연극 무대였다.
나는 아내도, 딸도 아니었다. 나는 대역이었다. 도구였다.
충격을 뚫고 차갑고 순수한 분노가 타올랐다. 여길 벗어나야 해. 당장.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발걸음은 서툴렀고, 부드럽고 축축한 흙에 발이 빠졌다. 발뒤꿈치 아래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그 소리는 고요한 밤에 울리는 총성과 같았다.
테라스에 있던 모든 고개가 내 쪽으로 향했다. 주원의 미소는 사라지고, 차가운 분노의 가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강서아.”
그의 입술에 오른 내 이름은 저주였다. 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돌아서서 달렸다. 정원을 가로질러 도망쳤다. 가시덤불이 드레스를 할퀴고, 젖은 나뭇잎이 얼굴을 때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저 집의 따뜻하고 황금빛 불빛과, 차갑고 죽어버린 내 인생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길게 뻗은 자갈길 подъезд에 다다랐을 때, 주원의 손이 쇠붙이처럼 내 팔을 움켜쥐었다.
“이거 놔.”
나는 그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숨을 헐떡였다.
“그만해.”
그가 쉿 소리를 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온기도 없었다. 분노도, 당황도 아니었다. 오직 소름 끼치도록 의기양양한 끝맺음만이 있었다.
“끝났어, 서아. 네가 본 거 알아.”
“날 속였어! 당신들 전부!”
목구멍에서 날것 그대로의 거친 말이 터져 나왔다.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야.”
그가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말했다. 한때 위안으로 여겼던 그의 향수 냄새가 이제는 부패한 냄새처럼 느껴졌다.
“서연이는 잠시 사라져야 했어. 넌 그냥 쓸모 있는 해결책이었고.”
그가 나를 집 쪽으로 다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발뒤꿈치를 땅에 박고 버텼다.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이럴 순 없어.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
그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 음모 꾸미는 듯한 속삭임에 피가 차갑게 식었다.
“서류는 이미 다 넘어갔어. 김 박사가 몇 달 동안 널 관찰해왔잖아. 너의 ‘깊은 슬픔’, ‘불안정한 상태’. 너무 쉬웠지. 우린 널 입원시킬 거야. 물론, 널 위해서지.”
강제 입원. 정신병원. 그 단어들이 숨통을 조이며 나를 후려쳤다. 이건 더 이상 거짓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었다. 그들이 몇 년에 걸쳐 내 주위에 쌓아 올린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그들은 나를 그냥 버리는 게 아니었다. 나를 지워버리고, 내 버전의 진실이 미친 여자의 망상으로 치부될 곳에 가둬버릴 작정이었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으로 치솟았다. 원초적이고 절박한 생존 본능이었다. 나는 그의 비싼 가죽 구두를 힘껏 밟았다. 그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손아귀 힘이 아주 잠깐 풀린 순간, 나는 팔을 비틀어 빼냈다. 나는 분리된 차고 쪽으로 허둥지둥 달려가 옆문을 더듬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안은 휘발유와 오래된 나무 냄새로 가득했다. 내 눈은 주위를 훑다가 잔디깎이 옆에 있는 빨간색 연료통에 멈췄다. 내 마음속 어둠 속에서 거칠고 무모한 생각이 번쩍였다. 시선 끌기용 소란.
손이 떨렸다. 뚜껑을 열고 기름때 묻은 걸레 더미 위로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먼지 쌓인 작업대 위에서 성냥갑을 찾아냈다.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첫 번째 성냥은 꺼져버렸다. 두 번째 성냥에 불이 붙었다.
나는 그것을 걸레 더미 위로 던졌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는 광경은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나는 문을 활짝 열어둔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폭풍의 어둠 속으로 질주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며 머리카락을 얼굴에 달라붙게 하고, 순식간에 나를 뼛속까지 적셨다. 등 뒤에서 연기를 발견한 그들의 첫 번째 당황한 외침이 들려왔다. 돌아보지 않았다. 폐가 타는 듯하고 맨발이 진흙탕에 미끄러져도 그냥 달렸다. 별장이 등 뒤에서 멀어지고, 증오스러운 빛으로 남을 때까지.
마침내 나는 큰길 근처 배수구에 숨어 쓰러졌다. 추위와 공포로 온몸이 통제 불능으로 떨렸다. 내 가방. 작은 이브닝 백을 손에 꼭 쥔 채였다. 안에 휴대폰이 있었지만, 추적당할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그들의 거미줄의 일부였다.
단 하나만 빼고. 잊고 있던 옆 주머니에 넣어둔 명함 한 장. 몇 달 전 주원의 책상에서 발견했던, 은색으로 이름이 양각된 세련된 검은색 명함이었다. 권태하. 주원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최대의 사업 라이벌. 그때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아주 작은 반항심으로 간직해두었던 것이었다.
감각 없는 떨리는 손가ryo로 명함과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켰다. 엄지손가락이 번호 위를 맴돌았다. 미친 짓이다. 그가 날 도와줄 리 없어. 왜 도와주겠어?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내게 있었나? 영원히 갇히거나, 백만 분의 일의 확률에 걸거나.
나는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한 번, 두 번 울렸다.
밤처럼 깊고 차가운 목소리가 답했다.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