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직전의 차에서 약혼자를 구했다.
그 불로 등에는 끔찍한 흉터가 남았지만, 나는 그의 목숨을 살렸다.
그가 4년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나는 모든 걸 버리고 그를 간호했다.
그가 깨어난 지 6개월 후, 그는 컴백 기자회견 무대에 섰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 해야 했다.
대신 그는 관중석에서 웃고 있는 그의 첫사랑, 윤세라에게 세기의 고백을 했다.
그 후 그의 가족과 윤세라는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파티에서 내 드레스를 찢어 흉터를 만천하에 공개하며 나를 욕보였다.
윤세라가 고용한 깡패들에게 골목에서 폭행당했을 때, 강주원은 관심을 끌기 위해 내가 꾸며낸 짓이라며 비난했다.
내가 온몸에 멍이 들고 부서진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윤세라가 ‘무섭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약혼자인 나는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나의 모든 희생, 나의 고통, 나의 흔들림 없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나는 그저 동정심 때문에 갚아야 할 빚일 뿐이었다.
결혼식 날, 그는 윤세라가 배가 아프다고 연기하자 나를 리무진에서 내쫓았다.
웨딩드레스 차림 그대로 고속도로 갓길에 버려두고 떠났다.
나는 그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택시를 잡았다.
“공항으로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제1화
서은하의 손이 강주원의 팔에 놓였다. 차 안의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작지만 꾸준한 압력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주원아?”
그는 정면만 응시했다. 특별 주문한 맥라렌의 핸들을 쥔 주먹에 핏줄이 섰다. 도시의 불빛이 네온과 야망의 흐릿한 줄기가 되어 스쳐 지나갔다.
“해야 해, 은하야.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그의 목소리는 팽팽했다. 이건 레이싱의 스릴 때문이 아니었다. 왕좌를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다. 대한민국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JS그룹의 후계자, 강주원은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엔진이 포효했다. 힘을 약속하는 깊은 울림이었다. 저 앞에 날렵한 검은색 페라리 한 대가 비공식 출발선에서 공회전하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윤세라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도발적으로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열린 창문 너머로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유혹과 조롱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됐다.
강주원은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맥라렌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서은하를 가죽 시트에 처박았다. 세상은 속도와 소음의 터널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무모하지만 실력 있는, 천재적인 드라이버였다.
그때, 윤세라의 페라리가 날카롭고 의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의 뒷바퀴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쇠가 아스팔트에 긁히는 굉음이 울렸다. 서은하가 탄 쪽이 콘크리트 방호벽에 처박혔다. 모든 것이 끝나는 소리였다.
그녀는 슬로우 모션처럼 엔진 블록에 불이 붙는 것을 지켜봤다. 불길이 찌그러진 보닛을 핥았다. 강주원은 핸들 위로 쓰러진 채 의식을 잃었고, 관자놀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패닉은 순식간에 차가운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녀 자신의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그녀는 그의 안전벨트를 풀고, 그다음 자신의 벨트를 풀었다. 불길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타는 연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축 늘어진 그를 운전석 밖으로 끌어냈다. 잔해에서 겨우 벗어나는 순간, 차가 폭발했다. 폭발의 충격이 그들을 앞으로 내던졌고, 엄청난 열기가 등을 덮쳤다. 살갗과 내 미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듯한 작열통이었다.
의식을 잃기 전 그녀의 마지막 생각은 그의 이름이었다.
강주원.
4년 동안, 그 이름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그는 혼수상태였다. 살균된 하얀 병실에 누워 있는 아름답고 부서진 인형. JS그룹은 최고의 치료를 제공했지만, 밤낮으로 그의 곁을 지킨 것은 서은하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유망했던 미술가의 길, 친구들, 그리고 JS그룹이 그토록 경멸했던 ‘신흥 부자’ 집안에서 받을 상속 재산까지. 그녀는 그의 링거를 교체하는 법을 배웠고, 그가 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몇 시간이고 이야기했으며, 그녀의 등과 목 위로 뱀처럼 기어오르는 흉측한 화상 흉터를 향한 동정 어린 시선을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의 희생을 영원히 상기시키는 낙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깨어났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맞춤 정장을 입고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왕국으로 돌아온 왕이었다. 그의 회복 후 첫 공식 연설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서은하는 무대 옆에 서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최악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 목까지 올라오는 드레스를 입었다. 이 순간은 그녀의 것이기도 했다. 그가 자신을 구해준 여자,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공식적으로 감사하는 순간.
강주원은 매력적이었다. 기자들과 투자자들로 이루어진 청중을 손바닥 안에 쥐고 있었다. “제가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었던 건, 한 사람의 변함없는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에 젖어 울려 퍼졌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청중을 훑었다. 아주 잠깐, 서은하는 그가 자신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를 지나쳐 뒤쪽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았다.
윤세라. 눈부신 빨간 드레스를 입고 완벽하고 상처 하나 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 있었다.
“가평의 별장에서 별이 쏟아지던 밤, 오래전에 했던 약속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
그 말은 물리적인 충격처럼 서은하를 강타했다. 그건 그들의 추억이 아니었다. 그와 윤세라의 것이었다. 그가 언젠가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첫사랑 이야기.
그녀는 깨달았다. 이 성대하고 공개적인 고백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윤세라를 위한 것이었다.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4년간의 헌신, 고통, 희생… 나는 대체 뭐였을까? 그가 빚을 졌다고 느끼는 간병인? 임시방편?
청중은 그의 말을 헌신적인 약혼자에 대한 낭만적인 헌사로 오해하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은 감탄 어린 얼굴로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들의 축하는 독처럼 느껴졌다.
시야가 흐려졌다. 무대의 밝은 조명이 그녀의 흉터와 어리석음을 비추며 조롱하는 것 같았다. 드레스 아래로 느껴지는 거친 흉터 조직은 일방적인 사랑의 영원한 낙인이었다.
4년. 4년 동안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속삭이며, 그의 침묵이 약속이라고 믿었다. JS그룹의 주치의들이 포기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회사 지분을 팔아 실험적인 치료 비용을 댔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 차갑고 냉정한 강태준 회장과 싸웠다. 그는 그녀를 단지 후계자를 살리기 위한 필요 투자로만 여겼다.
강주원이 깨어났을 때, 그가 그녀에게 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결혼하자, 은하야. 너한테 내 목숨을 빚졌어.”
그는 빚을 졌다고 했다. 사랑한다고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깨달음은 헌신의 안개를 꿰뚫는 차갑고 날카로운 명료함이었다. 그는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은 감사함이었고, 그가 갚아야 한다고 느끼는 빚이었다.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나가야 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출구를 향해 돌아섰다.
강주원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봤다.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연설을 마쳤다. 복도에서 벽에 기댄 채 서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은하야? 괜찮아? 막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어.”
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정말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가 아닌, 낯선 사람을 보았다. 남자의 몸을 한, 감정적으로 눈먼 소년.
“왜 그런 말을 했어? 가평 얘기 말이야.” 그녀가 간신히 속삭였다.
그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말이 그렇게 나왔어. 세라가 거기 있었고. 난 좀…”
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때, 윤세라가 다가왔다. 순진한 걱정의 가면을 쓴 채였다. “주원아. 정말 아름다운 연설이었어. 그리고 은하 씨, 피곤해 보이네요. 이 모든 게 너무 벅차겠죠.”
강주원의 관심은 즉시 윤세라에게로 향했다. 그의 몸이 물리적으로 서은하에게서 돌아섰다.
“괜찮아, 세라야?”
“나… 나도 모르겠어.” 윤세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기사님이… 날 그냥 두고 가버렸어.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 아파트에 가스가 새서 오늘 밤 거기서 잘 수도 없는데.”
너무나 명백한 거짓말, 너무나 투명한 조종이었다. 하지만 강주원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걱정 마. 내가 데려다줄게. 시그니엘에 스위트룸 잡아줄게.” 그는 서은하에게 돌아섰다. 그의 말투는 무심했다. “은하 넌 차 가지고 집에 가. 이건 내가 처리해야 해.”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윤세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복도를 따라 그녀를 안내하며, 서은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다.
예상했던 고통은 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이상하고 텅 빈 평온함이 찾아왔다. 해방감이었다.
끝났다. 그녀가 4년 동안 붙잡고 있던 희망이 마침내, 자비롭게도, 죽었다.
그녀는 차를 타지 않았다. 뜨거운 뺨을 식혀주는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집까지 걸었다. 아파트에서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았다. ‘국경 없는 의사회 아프리카 의료 봉사.’
그녀는 예전 의대 예과 자격과 장기 간병인으로서의 경험을 나열하며 지원서를 작성했다.
한 시간 후, 메일함에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합격 통지서였다.
그녀의 출발일은 지금으로부터 3주 후였다.
강주원과 결혼하기로 한 바로 그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