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박씨 그룹 후계자 박윤호, 고씨 가문의 영애 고영미와 약혼! 세기의 정략결혼 재계를 휩쓸다!>
거대한 LCD 화면 속, 남자는 명문가 영애와 나란히 서 있었고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TV에서는 이 장면이 끊임없이 재방송되고 있었고, 소파에 앉아 있는 우나희의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달칵."
그때, 별장 대문이 열렸다.
박윤호는 담배 냄새를 풍기며 들어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텅 빈 식탁으로 시선을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아직 밥을 안 했어?"
우나희가 고개를 돌리자, 울어서 붉게 부어오른 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의 차갑고도 화려한 얼굴에는 평소의 온순함은 온데간데없고, 섬뜩할 정도의 적막함만 남아 있었다.
"박윤호, 우리 헤어지자."
재킷을 벗던 박윤호의 손이 멈칫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
남자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가, 길쭉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질투하는 거야?"
그러자 우나희는 고개를 돌려 박윤호의 손을 뿌리쳤다.
"나희야, 억지 부리지 마."
박윤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저 정략결혼일 뿐이야, 두 그룹 간의 깊은 결속이지. 너도 잘 알잖아, 우리 아버지는 내가 신분도 배경도 없는 고아를 박 사모님으로 들이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널 사랑한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야. 내 마음속의 진짜 박 사모님은 너뿐이야."
말을 마친 박윤호가 몸을 숙여 입을 맞추려 하자, 우나희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박윤호를 바라보았다. 실망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네 사랑은 정말 싸구려구나!"
박윤호는 손을 들어 우나희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건성으로 말했다. "나희야, 사람은 너무 욕심부리면 안 돼."
"너도 내가 박씨 그룹의 황태자라는 신분을 노리고 나랑 만나는 거 아니었어?"
"짝―"
우나희가 박윤호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손끝까지 떨릴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른 우나희는 붉어진 눈시울로 그를 노려봤다. "박윤호, 넌 정말 최악이야!"
혀끝으로 볼 안쪽을 훑던 박윤호가 고개를 돌리자, 눈빛이 순식간에 음침해졌다.
"이보다 더 한 짓도 할 수 있어!"
"너 아직 대학도 졸업 안 했잖아. 만약 헤어지자고 하면 박씨 가문에서 당장 네 후원을 끊을 거야. 박씨 가문을 떠나면 넌 A시에서 발붙이고 살기도 힘들 텐데,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우나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눈앞의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바로 그녀가 3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였다.
왕년에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경시 최고의 귀족 학교에 파격적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가난한 학생이라는 이유로 입학하는 순간부터 고립되고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박윤호는 그녀의 삶에 비친 한 줄기 빛처럼, 사방에서 쏟아지는 악의를 막아주었다.
나중에야 그녀는 박씨 가문이 수년 동안 자신을 후원해 왔고, 박윤호가 바로 그 박씨 가문의 황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이어진 박윤호의 열렬한 구애에 우나희는 그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3년간의 비밀 연애, 알고 보니 박윤호는 그녀를 권력에 빌붙으려는 속물로만 여겼던 것이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뼈저린 고통이 밀려왔다!
"난 절대 후회 안 해!" 우나희는 붉어진 눈시울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가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박윤호의 악의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아원 부지 말이야. 개발업자가 그 땅을 사들여 철거하려고 하더군. 그곳이 없어지고 나면 너희 고아원은 어떻게 될까?"
그 말에 우나희는 내딛던 발걸음을 그 자리에 멈추더니 홱 돌아서서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박윤호, 고아원을 건드리기만 해봐!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박윤호는 긴장한 우나희의 모습을 보더니 오히려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내 능청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목숨을 걸어? 나희야, 네가 무슨 수로 나한테 덤비겠다는 거야?"
남자는 한 걸음씩 다가와 우나희 앞에 멈춰 서더니, 손끝으로 그녀의 뺨을 야릇하게 쓸어내렸다.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넌 반항할 여지조차 없어."
우나희는 혐오스럽다는 듯 고개를 돌려 박윤호를 외면했다.
박윤호는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내가 고아원을 건드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
"더 이상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말고, 얌전히 내 곁에 남아서 말 잘 듣는 애인 노릇이나 해. 그러면 고아원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우나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박윤호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박윤호, 넌 정말 비열해!"
박윤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 냄새를 맡았고, 눈빛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 정도 수단도 없이 어떻게 널 얌전히 내 말을 듣게 하겠어?"
"그만 고집부리고, 내일 밤 연회 잊지 마. 윤씨 가문이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들어."
우나희는 속으로 비웃었다. 알고 보니 이 일 때문에 급하게 찾아온 것이었다.
경시 최고의 의료 기업인 윤씨 가문은 몇 가지 중대한 프로젝트 협력을 모두 박씨 그룹과 성사시켰다.
외부에서는 모두 박윤호가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애초에 윤씨 가문이 우나희에게 의약 연구 개발 전문가 자리를 제안할 의향이 있었지만, 그녀가 박윤호를 돕기 위해 윤씨 가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기 때문에 윤씨 가문이 한 발 물러서서 박윤호와 협력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때, 박윤호의 휴대폰이 갑작스럽게 울렸다.
그는 화면을 힐끗 보더니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갈게."
이 말만 남긴 채, 그는 재킷을 집어 들고 우나희의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박윤호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우나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조금씩 차갑게 얼어붙었다.
'내 신분이 비천하다고 마음대로 쥐고 흔들며 협박할 수 있을 줄 알았다면, 박윤호, 넌 단단히 착각한 거야!'
우나희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싶다고? 절대 네 뜻대로 되게 두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