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혈액 창고에 연락해서 모든 Rh- AB형 혈액을 전부 이쪽으로 보내 달라고 하세요!"
응급실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의사가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환자 출혈이 심합니다, 지금 당장 수혈해야 해요!"
그 말을 듣자, 복도에 있던 간호사들이 즉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선생님!"
소지윤은 아직도 피가 멈추지 않는 두 다리를 이끌고 고통을 억누르며 힘겹게 의사 앞으로 다가갔다. "제 딸은요..."
"사모님, 아이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언제든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파인 소지윤의 다리 상처를 힐끗 보았다. "사모님의 다리 상처도 지혈 처리가 필요합니다... 남편 분은요?"
소지윤은 여러번 전화를 걸어 뜨거워진 휴대폰을 꽉 쥐고 있었고, 눈가에 일말의 절망이 스쳤다. "연락이 안 돼요."
한 시간 전, 소지윤은 유치원에서 연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앞좌석의 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뒷좌석에 있던 그녀와 연이는 동시에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렇게 위급한 시각에, 소지윤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서용준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의 모습을 본 의사는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따님이 희귀 혈액형이긴 하지만, 며칠 전 우리 시 혈액 창고에 대량의 희귀 혈액을 비축되어서 혈액 공급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이미 용성시에서 손꼽히는 의학 전문가 몇 분에게 연락해 응급 처치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이가 제때 수혈을 받고, 전문가들이 제때 도착하기만 한다면... 절대 문제없을 겁니다."
그 말에 소지윤은 그제야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쓸어내렸다.
소지윤은 감격한 나머지 의사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제 딸의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반드시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제 남편은 서씨 그룹의..."
"큰일 났습니다!"
그때, 간호사가 급히 뛰어 돌아와 소리쳤다. "시 혈액원에서 말하길, 모든 Rh- AB형 혈액을 서씨 그룹의 서용준 대표가 다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 분의 비서가 빈혈로 어지러워서 수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 소지윤은 머릿속에서 '쾅' 하고 폭탄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교통사고가 난 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서용준에게 서른 통이 넘는 전화를 걸었다.
서용준은 그녀의 전화를 받을 시간은 없으면서, 딸의 목숨을 살릴 혈액을 전부 가져가 빈혈로 어지러운 비서에게 줄 시간은 있었던 것이다!
"그 서 대표라는 분께 연락해 보세요, 우리는 지금 사람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요!"
"연락해 봤는데, 서 대표가 자기 비서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계속 연락해 봐요."
의사가 분노하며 욕설을 내뱉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 전문의들은요, 언제쯤 도착합니까?"
"그 전문의들도 서 대표 쪽에서 중간에 가로채 그 분의 비서를 진찰하러 갔습니다..."
그 말에 소지윤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벽에 몸을 기대어 쓰러지지 않으려 버티며, 떨리는 두 손으로 서용준의 비서 백소희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백소희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소지윤은 수화가 너머에서 서용준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소희의 어지럼증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당신들이 지금 혈액을 가져가고 소희의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어쩔 겁니까?"
소지윤은 휴대폰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을 주더니 거의 울부짖듯 소리쳤다. "서용준 전화 받으라고 해!"
백소희는 놀란 듯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준 오빠, 제가 아까 언니의 전화를 받으라고 했잖아요. 오빠가 안 받으니까 언니가 화났잖아요."
곧이어 전화기 너머로 서용준의 극도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지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소희가 몸이 안 좋아서 내가 사장으로서 잠깐 돌봐 주는 건데, 그것마저 질투해야겠어?"
소지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연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연이가 출혈이 심해서 지금 병원에 있어. 당장 수혈이 필요하고 응급 처치를 해 줄 전문가도 필요해."
"그러니까 당신이 혈액원에서 가져간 혈액이랑 전문가들을 당장 이쪽으로 데려와!"
"지금 당장 수혈하고 응급 처치하지 않으면, 연이가 죽을 수도 있어!"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서용준의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지윤, 내가 소희를 돌보지 못하게 하려고 연이가 죽어간다는 말까지 입에 담다니."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자기 딸을 저주하고, 네가 그러고도 애 엄마라고 할 수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서용준은 '뚝'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지윤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은 이미 꺼져 있었다.
거대한 절망감이 밀려왔지만 소지윤은 이를 악물고 서용준의 주변 사람들과 그의 친구들 번호를 찾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서용준을 설득해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전부 조롱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보고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표님께서 따님을 질투심에 내세울 도구로 삼지 말라며, 사모님 혼자서 잘 진정하라고 하셨습니다."
"형수님, 소희는 형수님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할 텐데, 굳이 아이까지 내세워 형을 협박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시간이 일 분 일 초 흐르면서, 소지윤의 마음속 절망도 조금씩 쌓여갔다.
응급실 문을 바라보던 소지윤은 눈물마저 거의 말라버렸다.
그녀의 연이는 이제 겨우 여섯 살이었다!
이제 막 시작된 연이의 인생이, 교통사고로 제때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해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용성 시의 혈액과 의학 전문가들은 모두 서용준 대표님에 의해 통제되었습니다."
의사는 바닥에 주저앉은 소지윤을 보며 차마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아이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유일한 방법은 옆 도시인 해성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해성에서 혈장을 가져오려면, 일반적인 운송 방식으로는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까지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요..."
'해성...'
소지윤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저한테...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서둘러 차단 목록에서 번호 하나를 찾아내어,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당신이 말했죠, 내가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약속만 하면 어떤 조건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그 말, 아직 유효한가요?"
수화기 너머에서 낮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효해."
소지윤은 두 눈을 감았다. "제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생명이 위태로워요. Rh- AB형 혈액이랑 중증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전문가 몇 분도 필요해요..."
"네가 있는 병원 옥상에 헬기장이 있어?"
소지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한 시간 뒤면 전문의들과 혈장이 모두 도착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