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범아, 나 너무 아파. 나 좀 병원에 데려다 줄 수 있어?"
곽지범은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지만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 오늘 바빠. 왕 비서가 갈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왕 비서한테 말해."
나연정은 전화기 너머에서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유난히 힘이 없었다. "오늘이 너의 결혼식이라는 거 알아. 이제 우리 연락도 못 하고, 만날 수도 없는 거야?"
곽지범의 곁에 앉아 있던 오세영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웨딩드레스 자락을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
매번 같은 수법이다!
나연정은 항상 이 방법으로 곽지범을 그녀의 곁에서 불러낼 수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두 사람의 결혼식인데도 예외는 없는 걸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에 곽지범은 긴장한 듯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무슨 소리야! 언제든지 너는 항상 나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
"난 이제 아무것도 없어..." 나연정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오세영 씨한테서 너를 빼앗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제 너마저 잃게 된 것 같아. 지범아, 나 너무 힘들어..."
곽지범이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려 했지만,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그는 순간 안절부절못하며 휴대폰 화면을 계속 켰다 껐다 했다.
곽지범의 불안한 행동을 지켜본 오세영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곽지범은 그녀의 정략결혼 상대였지만, 오씨 가문에 돌아온 후 유일하게 그녀에게 선의를 베푼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 관계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곽지범의 곁에 나연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세영은 곽지범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작은 따뜻함이라도 꼭 붙잡고 싶었다.
"앞에 차 세워!"
오세영의 생각은 곽지범의 한마디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 결혼식 끝나고 가면 안 돼?" 오세영은 다급하게 물었다.
"오세영, 왜 이렇게 철이 없어! 회사에 중요한 일이 생겼단 말이야!" 곽지범은 무의식적으로 오세영에게 소리쳤다.
속고 있는 고통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 오세영은 그의 말에 반박했다. "나연정을 만나러 가는 거 맞지? 지난번에 나한테 어떻게 약속했어! 지난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
오세영의 어깨에 올린 곽지범의 손이 살짝 굳어지더니 시선을 피했다. "연정이가 몸이 안 좋잖아. 네가 좀 이해해 주면 안 돼?"
오세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우리 결혼식을 내팽개치고 나연정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나한테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거야?!"
곽지범은 그녀를 달래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음엔 더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해 줄게. 어때?"
오세영은 마음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것을 느끼며 곽지범을 쳐다보았다. 목소리도 떨려왔다. "이번 결혼식에 A시에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 나 혼자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야?"
곽지범은 그녀의 집요한 태도에 짜증이 난 듯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오세영,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연정이는 의지할 곳이 없어. 나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 지금 연정이의 병세가 불안정한데, 꼭 사람이 죽어야 직성이 풀려?!"
곽지범의 말에 오세영은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말은 마치 한 박아지의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그녀의 온몸을 차갑게 만들었다.
곽지범은 오세영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내려."
운전기사는 백미러를 흘깃 쳐다보며 난처한 듯 말했다. "도련님, 여긴 고속도로에요..."
"차 세우라고 했어!" 곽지범은 인내심을 잃고 운전기사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운전기사는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어 속도를 줄이고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곽지범은 차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며 차갑게 말했다. "내려."
"곽지범, 내가 오늘 이 차에서 내리면 우리 사이는 완전히 끝이야!" 오세영이 말했다.
한때 그녀와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말했던 곽지범을 바라보며 오세영은 손톱으로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이것은 그녀가 곽지범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곽지범은 오세영이 그저 화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정이 병원에 데려다 주고 바로 너한테 갈게."
오세영은 곽지범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웨딩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눈빛을 본 곽지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갑자기 오세영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리 없어!'
곽지범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씨 가문 사람들이 오세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세영은 그를 제외하고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곽씨 가문과 오씨 가문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세영이 화를 낸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곽지범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출발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오세영이 고속도로를 걷자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이 그녀의 베일을 날렸다.
눈빛이 점점 차갑게 식은 그녀는 손을 들어 베일을 잡아당겼다.
멀리서 달려오는 빨간색 페라리를 발견한 오세영은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어 차를 가로막았다.
귀를 찢는 듯한 브레이크 소리가 들리더니 페라리가 그녀의 웨딩드레스 자락을 스치며 멈춰 섰다.
그제야 오세영은 스포츠카 안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곽지성은 예쁘게 생긴 눈으로 오세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 꼬리를 올리며 조롱했다. "오세영 씨, 결혼식 당일에 고속도로에서 자살이라도 하려는 거에요?"
차 안에 있는 독설을 내뱉는 남자를 본 오세영은 갑자기 몸을 숙이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곽지성 씨, 나랑 결혼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