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은 이미 위암 말기입니다. 보수적인 치료를 선택하면 두 달 정도 생명을 연장하실 수 있고, 수술 위험이 높으며 비용은 약 2억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수술이 성공하면 몇 년은 더 버티실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상의해 보세요..." 의사는 안타까운 어조로 마지막 통보를 내렸다.
심나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반년 전, 그녀는 남편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발견했지만, 남편은 늘 바쁘다는 핑계로 건강 검진을 거부했다. 그러다 일주일 전, 그녀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다.
오늘 그녀는 검사 결과를 받으러 왔는데, 남편의 병세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나연은 검사 결과를 손에 쥐고 넋이 나간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성훈은 이혼 합의서를 그녀에게 던졌다.
"심나연, 우리 이혼하자."
심나연은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그녀에게 짐이 될까 봐 이혼을 제안한 줄로만 알았다.
"당신 이미 알고 있었어?"
부성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사촌 동생이라 불리던 고은서가 배를 어루만지며 다가왔다.
"맞아. 내가 부성훈한테 말했어. 오늘 내가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면, 네가 의사랑 나누는 대화를 엿듣지 못했을 테고, 그럼 네가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아직도 몰랐을 거야."
"당신들 오해한 것 같아. 난..."
심나연이 해명하려 할 때,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온 시어머니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나연아, 어머니가 모진 말을 한다고 원망하지 마라. 우리 성훈이 월급으로 우리 가족 먹고 살기도 힘들어. 넌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인데, 굳이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니? 네가 착한 아이라는 거 잘 알아. 우리 성훈이한테 짐이 되고 싶진 않겠지?"
그 말에 심나연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남편은 암에 걸린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짐이 될까 봐 이혼을 제안한 걸까?'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부성훈을 돌아봤다.
"여보, 지금이라도 치료를 시작하면 늦지 않아. 돈은 걱정하지 마, 우리 집을 팔면 되니까."
시어머니는 그녀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집을 팔겠다고?"
부성훈도 평소의 부드러운 눈빛을 거두고 날카롭게 심나연을 쏘아봤다.
"안 돼."
부성훈은 그녀가 계속 자신에게 매달릴까 봐 걱정 되어 결국 실토하고 말았다. "심나연, 더 이상 숨기지 않을게. 사실 은서가 임신한 아이는 내 아이야. 이 집도 이미 은서 명의로 넘겨놨어."
심나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고은서는 부성훈이 사실을 털어놓자 그의 팔짱을 끼고 심나연을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던졌다.
"심나연, 정말 눈치채지 못했어? 난 부성훈의 사촌 동생이 아니야. 처음에 사촌 동생이라고 속인 건, 성훈 씨의 곁에 당당히 붙어있을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어. 네가 그걸 정말 믿을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5년 내내 우리 시중들어줬잖아."
"고은서가 한 말이 사실이야?"
심나연은 무의식적으로 시어머니와 부성훈을 돌아봤지만, 두 사람 모두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심나연은 손에 쥔 검사 결과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5년 전, 그녀와 부성훈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부성훈은 고은서를 집에 데려왔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갈 곳이 없는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했고, 그렇게 고은서는 부성훈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결혼 다음 날, 부성훈은 자신의 어머니가 수년째 누워 계셔 돌볼 사람이 없다며, 심나연이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 전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당시 심나연은 부성훈의 효심에 감동하여 기꺼이 제약업계를 떠나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부성훈이 '항생제약'의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그 5년 동안 심나연은 매일 침대에 누워있는 시어머니를 정성껏 돌봤다. 시어머니는 그녀의 꾸준한 마사지와 재활 치료, 약물 치료 덕분에 점차 회복되었다.
게다가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고은서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고은서가 임신 초기 태아가 불안정할 때, 값비싼 약과 전문적인 방법으로 태아를 보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심나연은 지난 5년 동안의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나연은 눈을 꼭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에는 차가운 무관심만 가득했다.
"그래,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
심나연은 이혼 합의서를 손에 쥐고 조항 하나하나를 훑어보다가 결국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가 5년 동안 쏟아 부은 모든 정성과 노력이 결국 빈손으로 쫓겨나는 꼴이 된 것이다.
심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후 차가운 시선으로 부성훈을 쳐다봤다.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고은서는 그녀가 순순히 서류에 서명하는 것을 보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우리가 기뻐하기도 바쁜데, 후회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고은서는 심나연을 동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리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건 허락해 줄 수 있어."
"우리 은서가 마음이 착하구나."
시어머니는 심나연을 돌아보며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심나연, 넌 아무 쓸모없는 전업주부일 뿐이다. 우리 성훈이한테는 은서 같은 신의만이 어울려. 우리 집에서 가사도우미라도 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 자체가 네게 큰 복인 줄 알아!"
심나연의 입가에 싸늘한 비웃음이 스쳤다.
"필요 없어요. 그 복은 어머니께서 직접 누리세요."
심나연은 다시 부성훈을 돌아보며 차갑게 말을 던졌다. "내일 오후 3시, 법원에 이혼 수속을 밟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