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 씨? 탁인화? 남편과 같은 연극단의 여배우였다.
나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꺼풀조차 들 수 없었다. 그저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그들의 대화를 흡수할 뿐이었다.
"당신 진짜 대단해, 학호 오빠. 조명 사고까지 위장하다니." 탁인화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보험금만으로는 부족해. 송이 명의로 된 재산도 다 내 것으로 만들고, 대중의 동정심을 얻어 모금까지 해야지. 완벽한 계획이야." 마학호의 목소리에는 내가 알던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술가의 모습은 없었다. 오직 탐욕과 비열함만이 가득했다.
"그럼 송이 언니는요? 병원비도 안 내주고, 꿈을 포기하라고 구박하는 '악처'로 만들면 돼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더 불쌍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탁인화의 말에 마학호는 낄낄 웃었다.
내 몸은 차가웠지만, 심장은 뜨겁게 타올랐다. 배신감과 모멸감이 뒤섞여 내 안에서 폭발하려 했다. 내가 사랑했던 남편이, 내가 모든 것을 바쳐 내조했던 사람이, 내게 이런 끔찍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니.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지난 몇 년간 마학호에게 헌신했던 나, 함송이는 죽었다. 이제는, 새로운 함송이가 되어야 할 시간이었다.
며칠 후, 나는 거짓말처럼 의식을 회복했다. 마학호는 내 병실로 달려와 "송이야, 정신이 들었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연기는 여전히 완벽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안에서 어떠한 진실한 감정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계산된 슬픔과 안도감만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마학호는 내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걱정 마, 송이야.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네가 깨어나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그가 돌아서자,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손이 닿았던 곳을 닦아냈다. 마치 더러운 것을 묻힌 것처럼. 내 안의 분노는 차가운 얼음처럼 단단하게 굳어갔다. 나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의 위선을 만천하에 드러낼 치밀한 복수를.
내가 퇴원한 후, 마학호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사고 소식을 알렸다.
"무대 조명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배우로서의 꿈,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그는 휠체어에 앉아 슬픈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은 예전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그는 연극 무대 위에서처럼 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댓글창에는 수많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힘내세요, 배우님!"
"재능 있는 분이 이런 비극을 겪다니… 너무 안타까워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마세요. 저희가 응원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가 병원비를 대지 않고 구박하는 '악처'라는 거짓 선동을 시작했다. 나는 그의 소셜 미디어를 몰래 지켜봤다.
마학호는 한 라이브 방송에서 일부러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직 아내가 소식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어째서 함송이 씨는 병원에 안 오나요?" 한 시청자가 물었다.
마학호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송이는... 아마 바쁠 거예요.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겠죠."
그는 나의 불참에 대한 질문을 교묘하게 회피했다. 그의 표정은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어딘가 공허했다. 그 눈빛이 내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그의 연기 학원에 다닐 때, 대본을 외우며 연습하던 그의 눈빛이었다.
"오랜만에 송이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는 슬픈 듯 웃으며 말했다. "제게 더 이상 꿈을 좇지 말고 현실을 보라고 하더군요. 병원비도 많이 나오고, 재활도 쉽지 않을 거라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그는 카메라를 향해 식탁 위에 놓인 밥을 보여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과 김치, 그리고 며칠 전에 사둔 국이 전부였다. 소박하다 못해 처량해 보이는 식단이었다.
"혼자라서 대충 먹어요. 송이가 해준 밥이 먹고 싶네요." 그는 한숨을 쉬며 젓가락을 들었다.
댓글창은 분노로 들끓었다.
"세상에, 저 밥이 말이 되나요? 아내가 있다는 사람이!"
"너무하다, 함송이! 남편이 아픈데 저렇게 방치해두다니!"
"아무리 힘들어도 저렇게 먹으면 안 되지. 함송이 씨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남편이 아픈데 병원에도 안 가고, 꿈을 포기하라고? 악처가 따로 없네!"
나는 그들의 댓글을 읽으며 텅 빈 눈으로 웃었다. 바쁠 리가 있겠는가. 나는 단 한 번도 마학호에게 병원비를 대지 말라고 하거나, 꿈을 포기하라고 구박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꿈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쳤다. 파티시에로서의 내 꿈은 잠시 미뤄두고, 그의 뒷바라지에 몰두했다. 그게 다 꿈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니었다.
마학호는 고통스러운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송이가 제 병원비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저도 이제는 제 앞가림을 해야죠."
그는 일부러 말을 흐렸다.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다.
"그럼 함송이 씨 돈은 어디에 쓰는 건가요?"
"남편 병원비는 안 대주고 자기 유흥에 쓰는 건가요?"
마학호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향해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선량하고 진실해 보였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거예요. 대중분들의 사랑이 저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언젠가 다시 무대 위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송이도… 언젠가 저를 이해해주겠죠."
나는 그의 연기에 소름이 돋았다. 완벽했다. 그는 내가 그를 떠난, 이기적인 악처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완벽한 연기 덕분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함송이, 당장 남편에게 사과해라!"
"저런 아내는 필요 없어! 마학호 씨, 이혼하고 새 삶 찾으세요!"
"진짜 마학호 씨 너무 불쌍하다… 저렇게 착한 사람이 왜 저런 아내를 만났을까."
어떤 시청자는 그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배우님, 혹시 후원 계좌라도 있으신가요?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맞아요! 저희의 작은 정성이 배우님께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후원 의사를 밝혔다.
마학호는 다음 날 바로 영상 하나를 더 올렸다.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저보다 더 어려운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분들께 작은 도움이라도 전해주세요."
그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치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영상 끝에 링크 하나를 첨부했다.
[사랑의 빛 재단]
나는 그 링크를 클릭했다. 그리고 실소를 터뜨렸다. 그곳은 마학호가 예전에도 자주 이용했던 유령 자선단체였다. 과거에도 그는 비슷한 수법으로 사람들의 돈을 가로챘었다. 그는 재능 있는 배우였지만, 그 재능을 오직 사기와 기만에 사용했다.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사람들은 그의 위선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그는 순식간에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정의로운 예술가'이자 '긍정 에너지 전파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악처'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내 이름, 함송이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학호 씨를 버린 파렴치한 아내', '탐욕스러운 악처'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