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나는 평창의 설산에서 약혼자의 목숨을 구했다.
그날의 추락은 내게 영구적인 시각 장애를 남겼다.
내 완벽했던 시력을 포기하고 그를 선택했던 그날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잔상처럼.
그는 내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절친 오윤서가 춥다고 불평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평창 결혼식을 몰래 부산으로 바꿔버렸다.
나는 그가 내 희생을 "감성팔이"라 부르는 것을 엿들었고, 내 드레스는 비웃으며 그녀에게 6천만 원짜리 드레스를 사주는 것을 지켜봤다.
결혼식 당일, 그는 제단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버려두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시작된 오윤서의 "공황 발작"을 돌보기 위해 달려갔다.
그는 내가 용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그는 내 희생을 선물이 아닌, 나의 복종을 보장하는 계약서쯤으로 여겼다.
그래서 마침내 그가 텅 빈 부산의 예식장에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입을 열기 전 그가 설산의 바람 소리와 예배당의 종소리를 똑똑히 듣게 해주었다.
"내 결혼식이 곧 시작될 거야."
내가 말했다.
"네 결혼식이 아니라."
제1화
서주아 POV:
내 약혼자는 그의 절친 오윤서가 평창은 너무 춥다고 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에게 세상 전부를 의미했던 결혼식 장소를 부산으로 바꿔버렸다.
나는 강태준의 사모펀드 회사 로비, 커다란 화분 뒤에 숨어 서 있었다.
그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숨이 턱 막혔고, 내 손에 들려 있던 평창 예배당의 정교한 건축 설계도는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지난 5년간, 평창은 우리만의 성역이었다.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다. 우리의 역사가 담긴 증거였다.
암벽 등반 중 끔찍한 사고로 낡은 밧줄에 매달려 있던 태준을 내가 발견했던, 눈 덮인 절벽.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다 추락하여 만성적인 신경학적 시각 장애를 얻게 된 바로 그곳.
때때로 세상의 경계가 아른거리며 흐릿하게 보이는, 내 완벽했던 시력과 그의 목숨을 맞바꾼 그날의 영원한 증표.
그런데 그는 그 모든 것을 부산과 맞바꾸려 하고 있었다. 오윤서를 위해서.
회의실 유리 벽 너머로 그가 보였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특유의 오만함이 뚝뚝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최진혁이 테이블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너 미쳤냐?"
진혁의 목소리가 낮게 웅얼거려 간신히 들렸다.
"아직 주아 씨한테 말 안 했다고?"
태준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시선은 스크롤하고 있는 휴대폰에 고정한 채였다.
"말할 거야. 괜찮아, 걔."
"괜찮다고? 태준아, 그 여자 바인더를 갖고 다녀. 우리 지난 분기 보고서보다 두꺼운 바인더. 1년 내내 평창 결혼식만 계획했다고. 그건… 알잖아… 걔한테는 전부야."
"결혼식이지, 무슨 우주선 발사냐?"
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에 섞인 짜증이 수천 개의 바늘이 되어 나를 찔렀다.
"그깟 산 타령하는 감성팔이도… 이제 지겹다. 그리고 부산이 훨씬 낫지. 파티 분위기 나고."
"윤서 파티겠지."
진혁이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말을 정정했다.
"고도가 높아서 힘들다고 징징대던데."
"추우면 천식이 도져."
태준의 말투가 부드럽게 변했다. 내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따뜻한 공기가 필요해."
"아, 그러셔. '천식'."
진혁이 손으로 따옴표를 그리며 비꼬았다.
"크로아티아 요트 파티 때는 멀쩡했던 그 천식 말이야?"
"그거랑은 달라."
"오윤서랑 엮이면 항상 뭐가 다르지."
진혁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진짜 다 바꾸는 거야? 걔 때문에?"
"걔 때문에 바꾸는 거 아니야."
태준이 마침내 휴대폰에서 고개를 들며 쏘아붙였다. 턱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부산이 더 재밌으니까 바꾸는 거라고. 분위기가 더 좋잖아. 주아도 이해할 거야."
그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아도 이해할 거야.
그것이 우리 관계를 요약하는 한 문장이었다.
늘 믿음직하고, 이해심 많고, 주기만 하고 바라는 건 없는 서주아.
그의 목숨을 구하고 그 흉터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동안, 그는 아무런 방해 없이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약혼녀잖아. 날 사랑한다고."
태준이 말을 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다시 떠올랐다.
"내가 어디에 있든 행복해할 거야. 그게 우리 사이의 약속 같은 거니까. 산에서 증명했잖아."
그의 말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그는 내 희생을 선물이 아니라 계약으로 보고 있었다. 나의 복종을 보장하는, 깨뜨릴 수 없는 계약서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태준의 얼굴이 환해지며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태준 씨, 자기야!"
오윤서의 가증스럽게 달콤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거 구했어?"
진혁이 연극이라도 하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기울였다.
"당연히 구했지."
태준의 목소리는 낮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몇 년 동안 내게는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는 목소리였다.
"널 기다리고 있어."
"어머, 세상에, 자기는 진짜 최고야. 키스해주고 싶어!"
그녀가 꺅 소리를 질렀다.
"그 발렌티노? 우리 같이 봤던 거? 하얀색?"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하얀색.
"바로 그거."
태준이 확인시켜 주었다.
"파리에서 직접 공수해왔어."
"6천만 원이라니, 태준 씨! 나 너무 버릇 나빠지겠어."
그녀가 감격에 겨워 말했다.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 보여줄게, 약속."
"그럴 줄 알아."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진혁이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다.
"드레스에 6천? 야, 너 누구랑 결혼하냐, 윤서야 주아 씨야?"
태준이 웃었다. 어떤 진짜 유머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웃음소리였다.
"윤서는 최고로 보여야지. 그날의 주인공이 될 거니까. 얼마나 예민한 애인지 알잖아."
예민하다고. 그 단어가 잔인한 농담처럼 허공에 맴돌았다.
내 웨딩드레스가 떠올랐다. 작고 우아한 부티크에서 찾은, 그 천문학적인 가격의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심플한 아이보리 실크 A라인 드레스였다.
나는 가슴이 터질 듯한 설렘을 안고 태준에게 사진을 보냈었다.
그는 딱 한 단어로 답장을 보냈다. 괜찮네.
결제할 시간이 되자, 그는 350만 원짜리 청구서가 엄청난 불편이라도 되는 양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카운터에 신용카드를 던졌다.
그는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스쿼시 게임에 늦었다고 불평하며 나를 재촉했다.
오윤서에게는 6천만 원. 나에게는 350만 원.
계산은 간단했다. 그리고 참혹했다.
로비의 시든 화분 뒤에 서 있던 그 순간, 강태준과 함께 쌓아 올린 내 5년의 인생이 먼지와 잔해 더미로 무너져 내렸다.
눈앞의 아른거림이 심해졌다. 세상의 경계가 흐려진 것은 신경 손상 때문이 아니라, 마침내 터져 나온 뜨겁고 소리 없는 눈물 때문이었다.
그는 단순히 감정적인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사랑이라는 벽돌과 내 희생이라는 시멘트를 이용해, 그녀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저 그 밑에 묻혀 잊힌 기초 공사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