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 호텔.
창유리가 투명할 정도로 깨끗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보일 수 있었다...
"심건우, 제발 이러지 마. 나 곧 결혼한단 말이야!"
소지윤의 뒤통수는 남자의 커다란 손에 쥐여 있었다.
그녀는 산소를 완전히 빼앗겼다.
통유리창에는 그녀의 요염하고도 처참한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드레스는 반쯤 벌어져 있었고, 등 뒤의 지퍼는 끝까지 내려가 있었으며, 외출하기 전 단정하게 묶었던 똥 머리는 지금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공들인 메이크업도 반 쯤 지워져 있었다.
"부탁한다고?" 심건우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험악하게 말했다. "네가 나한테 뭘 부탁하는데?"
그의 손가락이 구멍이 뚫린 그녀의 드레스 사이로 파고들자, 소지윤은 참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커튼 좀 쳐줘..."
말을 마친 그녀의 눈꼬리가 붉게 물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참으로 가련하게 느껴졌다.
"하." 심건우는 몸을 돌려 창턱에 걸터앉았다. 등을 밖으로 향한 채 탄탄한 두 팔을 벌려 소지윤을 품에 가두었다.
그의 말투에 섞인 웃음기는 장난보다는 조롱에 훨씬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한테 네가 나랑 몰래 만나는 게 들킬까 봐 겁나?"
그의 목소리는 점차 낮아졌고, 마치 지옥으로 끌어내리려는 듯했다.
'몰래 만난다'는 단어가 듣기에 아주 수치스러웠다.
소지윤은 그의 어깨너머로 맞은편 객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적극적이야?" 조롱하는 말이 독사처럼 그녀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심건우는 그녀의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자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
애원하는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나왔고, 소지윤이 고개를 숙이자 눈부시게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심건우의 시선이 옮겨갔다.
멀지 않은 곳, 짙은 회색의 차가운 톤을 띠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소지윤이 가져온 서류였다.
그녀는 약혼자를 대신해 협력 서류를 전달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침대 위로 배달하게 될 줄이야.
심건우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작고 갸름한 턱을 쥐고, 강제로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소지윤, 8년 전에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내가 기억나게 해줄까?"
소지윤은 온몸을 움찔하며, 그를 노려본 채 벌벌 떨었다.
8년 전, 그녀는 유흥업소를 전전했다.
엄마를 살릴 돈을 벌기 위해, 거의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심건우는 그녀의첫 번째 손님이었고, 그 후 그녀는 그에게 3년 동안 스폰을 받았다.
그녀가 임신하고, 그는 재벌가 영애와 정략결혼을 하면서 이별 위자료를 쥐여주고는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소지윤은 그를 4개월 동안 기다렸는데, 결국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녀의 아기는 뱃속에서 죽고 말았다.
그녀 역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소지윤은 이 모든 것이 과거가 될 줄 알았지만, 5년 후 그가 다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높은 곳에 군림하며 생사를 좌우하는 제국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면 소지윤의 약혼자 회사를 파산시킬 수도 있었고, 다시 살릴 수도 있었다.
"저 서류는 아직 책상 위에 있어. 내가 사인만 하면 네 약혼자는 100억의 투자를 받을 수 있지."
"나를 어떻게 기쁘게 해야 하는지는 너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심건우는 인내심을 잃고 그녀의 손을 꽉 쥐어 자신의 허리춤으로 가져가며, 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풀어."
두 사람은 5년 만에 만났다.
피부가 닿자, 모든 것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 같았다.
밤이 깊도록 두 사람은 얽혀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소지윤은 그제야 간신히 모을 움직일 수 있었다.
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자국이 남았다.
"네 약혼자한테서 전화 왔어." 심건우는 평온한 표정으로 소지윤을 스윽 훑어보며 말했다. "내가 대신 끊었어."
"너!"
소지윤은 정신을 차린 후, 서둘러 옷가지를 집어 들어 앞을 가리고 카펫 위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있었는데, 전부 서진우가 걸어온 것이었다.
카톡 대화창에도 그가 보낸 메시지가 몇 개 와 있었다.
[서류는 잘 전달했어?]
[왜 전화를 안 받아?]
[자기야, 너무 걱정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심건우가 묵는 호텔 찾았어. 지금 1층인데, 너 안에 있어?]
"그가 왔어."
소지윤은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객실 전화기가 울렸다.
소지윤이 말리기도 전에 심건우가 수화기를 들었고, 무언가 묻더니 차갑게 말했다. "올라오라고 하세요."
소지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심건우,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속셈이야?"
"일부러 그 사람을 올려보내서 이런 꼴을 보게 하려는 거야?"
"그래, 나 5년 전에 너랑 만났어. 천문학적인 이별 위자료도 받았지. 하지만 넌 나한테 목숨 하나를 빚졌잖아. 나 곧 결혼하는데, 왜 기어코 나를 망가뜨리려는 거야?" 소지윤은 아랫배를 만지며, 예전에 아이를 잃었던 고통을 다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