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5, 출소 후에는 아이랑 같이 잘 살아. 다시는 법 어기는 일을 하지 말고!"
교도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심수정은 대답하지 않고 곧장 교도소 정문을 나섰다.
교도소를 나설 때 뒤돌아보지 않는 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교도소 밖 바닥은 낙엽으로 뒤덮여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다.
늦가을, 찬바람이 불어오자 심수정은 흠칫 몸을 떨었다.
"응애, 응애..."
품에 안긴 아이가 바깥 공기를 느꼈는지 불안한 듯 몸을 뒤척이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 유나 착하지. 울지 마. 엄마가 여기 있어."
몸으로 바람을 막으며 아이를 달래던 심수정은 심유나의 얼굴을 바라보자 가슴 한켠이 저릿해났다.
교도소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줄 몰랐다. 석 달이 지나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교도소 환경은 몹시 열악했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괴롭힘까지 더해진 바람에 그녀는 조기 출산을 하고 말았다. 그 탓에 여섯 달이 된 지금도 딸은 너무나 작고 야위었고, 울음소리마저 새끼 고양이처럼 가늘었다.
눈시울이 빨개진 심수정은 아이의 부드러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나아,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 우린 이제 자유야."
말을 마친 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옆에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
거의 동시에, 검은색 카이엔 한 대가 교도소 앞에 멈춰 섰다. 이어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며 서민준의 차가운 옆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교도소 정문을 바라보며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평온한 그의 눈빛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심수정을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운전기사가 버스 정류장에서 낯익은 여자의 얼굴을 발견하고 바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나오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는 황급히 말을 고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걸로 봐서, 사모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민준은 버스 안의 여자를 힐끗 바라봤다. 심수정과 제법 닮긴 했지만,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이 여위어 있었다.
그의 기억 속의 심수정은 고집이 세고 항상 날을 세우고 있는 여자였다.
그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저도 모르게 1년 반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밤, 그와 심수정은 전례 없는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다.
다툰 이유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었다. 심수정은 근거 없는 소문을 듣고 그가 그녀의 여동생 심은아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도 모자랐는지 그녀는 이혼 합의서까지 내밀며 이혼을 요구했다.
심수정의 근거 없는 의심에 서민준은 잔뜩 짜증이 났다. 그 상황에서 그녀가 강경하게 맞서기까지 하자 술에 취한 그는 이성을 잃고 강제로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
그날 밤의 광란을 떠올린 서민준은 피곤한 듯 미간을 문질렀고 눈빛에 혼란이 스쳤다.
두 사람은 계약결혼을 한 사이였다. 그저 집안의 결혼 압박과 외부의 의심을 막아 줄 완벽한 아내가 필요했던 서민준은 결혼 후 3년 동안 한 번도 심수정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와 진짜 부부가 된 뒤, 서민준은 자신이 심수정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날 밤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심수정이 서씨 상업기밀을 훔쳤다는 대형 뉴스가 터졌다.
증인과 물증이 모두 갖춰져 있었지만, 심수정은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모습에 서민준은 더욱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보다 더 큰 것은 실망이었다. '이미 서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앉았는데도, 왜 만족하지 못하고 나를 배신한 걸까?'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그는 즉시 법무팀에 연락해 심수정을 중죄로 고소하라고 지시했고, 합의도 거절한 채 그녀를 꼭 감옥에 가두겠다고 고집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마땅한 처벌을 받는 게 당연했다.
그는 1년 반의 수감 생활이면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숙하기에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화가 완전히 가라앉은 그는 그녀가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기만 한다면, 지난 일은 덮어 줄 생각이었다.
"대표님, 30분 넘게 기다렸습니다. 더 기다리실 겁니까?"
운전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회상에서 깨어난 서민준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가 중요한 회의까지 미루고 직접 그녀를 데리러 왔건만, 그런데 그녀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성질을 부리고 있는 게 틀림 없었다.
서민준은 냉소를 흘렸다. '교도소에 다녀왔는데도 고집은 여전하단 말이지? 됐어, 나도 괜한 짓을 할 생각은 없어.'
"해만 빌라로 돌아가."
그는 차갑게 말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창문을 올렸다.
출소한 심수정은 갈 곳이 없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제 발로 집에 돌아올 터였다. '네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지 지켜볼고 있을 게.'
차가 해만 빌라 정원에 들어섰다. 순간, 서민준은 심수정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했다.
'그 여자, 역시나 지 발로 집에 돌아왔군.'
빠르게 계단을 오르는 그의 걸음이 조금 다급해 보였다. 1년 반 만에 만나는 그 입만 열면 거짓말인 여자가 이번에는 또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 그는 지금 당장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