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손에 자란 그녀는 자기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좋아요. 하지만 할아버지, 저도 조건이 있어요. 남씨 가문 사람들에게 제 정체를 알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그들이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만약 1년이 지났는데, 그들 중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전 떠날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제 결혼 문제는 제가 알아서 결정할게요."
노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며칠 뒤, A시 기차역 출입구 앞에는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잘생긴 남자 네 명이 한 곳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갑고 도도한 스타일부터 햇살처럼 밝은 스타일까지, 넷은 저마다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탓에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전부 그들에게 쏠려 있었다. 만약 경호원들이 그들 곁을 지키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연락처를 달라고 모여 들었을 것이다.
"날이 이렇게 더운데, 할아버지는 왜 굳이 우리 넷더러 그 꼬맹이를 마중하라는 거지? 우리가 아주 한가한 줄 아나 봐?” 남씨 형제 중 막내인 다섯째 남승우가 불평을 터뜨렸다.
"그러게. 기차를 타고 오는 걸 보면 촌뜨기인 게 틀림없어." 톱스타이자 새로운 국민 남신으로 떠오른 넷째 남재윤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로 맞장구쳤다.
"우리 다섯 형제가 시골에서 온 아가씨에게 선택을 받는 꼴이다니. 할아버지께서 어제 말씀하실 때 난 농담인 줄 알았어." 셋째 남수호도 거들었다.
"큰형이 너무 부러워, 회사에 회의가 있다는 핑계로 안 나왔잖아."
둘째 남경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잔뜩 썩어 있었다.
그때 기차역 출구에서 붉은색에 꽃무늬 자수가 놓인 옷을 입은 소녀가 걸어 나왔는데 촌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거기다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스타일까지, 정말이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었다.
남승우가 남재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재윤이 형, 쟤 좀 봐. 요즘 세상에 저런 옷을 입는 사람이 정말 있었네, 난 TV에서만 봤어. 하하하."
그런데 뜻밖에도 출구를 빠져나온 소녀는 곧장 네 사람에게 다가오더니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남씨 가문 도련님들 맞으시죠? 저는 소한별이라고 해요."
네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 남재윤의 표정이 제일 썩어 있었는데,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네가 소한별이야?"
'할아버지가 선녀처럼 아름답다고 한 여자가 얘라고?'
눈앞의 소한별은 옷차림만 촌스러운 게 아니었다. 피부도 거무스름한 데다 얼굴에는 점이 여러 개나 있었고, 바비 핑크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소한별은 홀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말이 사실이었네요. 다들 너무 잘생기셨어요."
'뭐, 대충 봐줄만하네. 일반인 치고는 잘생긴 편이지. 하지만 아무리 잘생겨도 여신인 나한테는 어림없지.'
남승우는 하마터면 욕을 퍼부을 뻔했다. '아무리 시골에서 왔다지만 이렇게까지 촌스러울 수가!?'
"소한별,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
"네?" 소한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결국 남씨 형제들 중 둘째이자 남씨 그룹 부대표인 남경환이 입을 열었다. "일단 차에 타. 자세한 건 돌아가서 얘기하자."
그렇게 다섯은 차를 타고 떠났고, 소한별과 남경환이 중간 줄에 앉았다.
소한별은 창밖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우와, 대도시 건물은 정말 높네요!"
나머지 네 사람은 입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 상황이 바로 말로만 듣던 촌뜨기의 도시 구경인가 싶었다.
그때, 소한별이 우연히 남경환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또다시 감탄했다. "우와! 이 시계 정말 예쁘네요! 적어도 몇십만 원은 하겠죠?"
'몇십만 원? 둘째 형의 시계는 무려 60억이라고!!!'
할 말은 잃은 네 사람은 소한별이 자신을 약혼자로 선택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
차가 남씨 가문에 도착하자, 소한별은 저택을 보고 또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와, 집이 정말 크네요!"
'뭐야, 쳇. 우리 집 정원의 10분의 1도 안 되잖아.' 소한별이 속으로 시큰둥해하던 그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남승우가 한마디 쏘아 붙였다. "그만 좀 해, 이 촌뜨기야! 세상 물정 모르는 티 좀 내지 말아 줄래? 더는 못 봐 주겠어."
곁에 있던 세 사람 역시 더는 참기 힘들었던 터라,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