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송은아는 커피를 든 채 사장실 문 앞에서 몸이 굳어있었다.
문은 꽉 닫혀 있지 않았다.
문틈으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한 여자를 짓누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의 몸은 통유리창 앞에서 엉켜 있었다.
남자가 감탄했다. "은교야, 참 대한해."
"넌 참 착해!"
거친 몸짓과 뒤엉킨 숨소리까지, 둘은 아주 즐기는 듯 했다.
커피잔이 송은아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며 쨍하는 소리를 냈다.
사무실 안의 두 사람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고, 시간은 마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
잠시 후, 고도윤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현장을 들킨 당혹감은커녕, 오히려 방해받았다는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셔츠 옷깃이 열려 있는 채로 하은교를 돌아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너그러운 말투로 말했다. "문 잠그라고 했잖아."
"깜빡했어요." 하은교가 애교를 부리며 느긋하게 어깨끈을 추슬렀다. 그녀는 송은아를 훑어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분이 바로 송 비서님이구나. 정말 나랑 닮았네."
그 말은 독을 바른 바늘처럼 정확하게 송은아의 심장을 찔렀다.
온몸이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는 고도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저 여자 누구야?"
하지만 고도윤은 그녀를 마치 방을 잘못 찾아온 직원 보듯 쳐다볼 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서랍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 책상 위에 내던지고는 그녀에게 명령했다. "마침 잘 왔어. 사인해."
송은아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고집스럽게 되물었다. "저 여자 누구냐고?"
고도윤은 짜증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하은교. 내 연인이고, 네 은인이기도 하지."
"네가 얘랑 닮지 않았더라면, 넌 죽었다 깨어나도 나랑 결혼 못 했을 거야. 그러니 얘한테 감사해야지."
송은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뒤집어쓴 듯, 뼛속까지 시린 한기를 느꼈다.
지난 3년간의 무시와 냉대도 지금 이 한마디만큼 서럽지는 않았다.
자신을 하은교의 대역으로 삼아 속이고 기만해놓고, 이제 와서 하은교에게 감사하라고 한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쥔 송은아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도윤, 이 미친 놈!"
하은교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부드럽게 말했다. "송 비서님, 당신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사랑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때 저와 도윤 씨가 오해로 헤어지지 않았다면 당신에겐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쟤랑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고도윤이 비꼬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쟤는 내 침대에 오를 자격조차 없었어."
그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송은아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난도질했다.
송은아가 굳은 채 움직이지 않자, 고도윤은 이혼 합의서를 앞으로 쓱 밀며 재촉했다. "눈치껏 굴어. 빨리 사인해."
송은아의 시선이 합의서로 향했다. 고도윤은 이미 서명을 마친 상태였는데, 성의 없이 휘갈겨 쓴 필체는 그가 이 결혼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선을 위로 옮겨 조항을 확인한 그녀는 순간 몸이 굳었다.
모든 재산과 지분은 고도윤에게 귀속되고,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송은아는 이를 악물고 짓씹듯 말했다. "고도윤, 날 맨몸으로 쫓아내려는 거야?!" 고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난 3년간 사모님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너 너무 욕심부리지 마."
송은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비웃었다.
과거 그녀는 조직에 쫓기다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고도윤이 그녀를 구해줬다. 그는 다정한 말로 그녀를 열렬히 구애했고, 그녀는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모든 건 그의 첫사랑과 꼭 닮은 얼굴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혼 후 그녀는 현모양처 역할을 자처했다. 고도윤의 냉대에도 그저 남편이 사업에 몰두하느라 자신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노력해서 그의 사업 성공을 도우면, 그의 마음도 돌아설 것이라고 믿었다.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없었다면 GK는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고도윤은 그녀의 모든 노력을 가볍게 묵살해 버렸다.
' 그래, 이제 나를 애 먹이겠다는 거잖아, 그럼 다 같이 망해보지 뭐!'
송은아는 양손으로 이혼 합의서를 붙잡고 힘껏 찢어버렸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 종잇조각이 눈처럼 흩날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고도윤과 하은교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 고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험악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송은아, 너 미쳤어!"
송은아가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나를 쫓아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럼 성의를 보여줘. 그러니까 이혼 합의서를 제대로 만들어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 폴더를 하은교를 향해 세게 집어 던졌다.
"당신이 사랑하는 하은교는 영원히 상간녀일 뿐이야!"
날아오는 서류 폴더에 하은교는 비명을 질렀지만 피하지 못했다. 폴더에 이마를 맞은 그녀가 아파서 신음을 내뱉었다.
깜짝 놀란 고도윤이 재빨리 다가가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은교야!"
"송은아, 너!"
그가 욕설을 내뱉기도 전에 송은아가 거칠게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사직서를 제출한 송은아는 회사 건물을 나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지금 GK 빌딩 앞이니까, 바로 사람 보내서 데리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