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 병원.
"의사 선생님, 저 임신한 거 맞나요?" 송지윤은 검사지를 손에 꼭 쥐고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의사는 검사지를 힐끗 쳐다보더니 눈살을 깊게 찌푸리며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가씨, 지금 저랑 장난하는 거예요? 피임약을 오랫동안 복용했는데, 어떻게 임신할 수 있어요?"
그 말에 송지윤은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에 순간 멍해졌다.
'피임약?'
매달 부부 관계를 맺은 후, 고서준은 항상 그녀에게 '종합 비타민'을 건넸다.
그는 그녀의 체질이 약하다며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지윤은 3년 동안 그의 말에 크게 감동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자신에게 3년 동안 먹인 것은 다름 아닌 피임약이었던 것이다.
심장이 세게 조여 오는 느낌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고서준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 순간, 휴대폰 화면에 한 뉴스가 떠올랐다.
<고씨 그룹 고서준 대표, 200억에 '천사의 심장' 낙찰! 여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경매장에서 점천등까지 걸다!>
송지윤은 기사 제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기사와 함께 올라온 사진은 경매 현장 사진이었다.
고서준은 어두운 색 정장을 입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옆모습은 차갑고도 고귀한 기품을 풍겼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부드러운 옆모습에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심청미였다.
고서준의 소꿉친구인 그녀는 3년 전 유학을 떠났고, 최근에 막 돌아왔다고 들었다.
송지윤은 눈을 깜빡여 보았지만, 건조한 눈시울이 아파올 뿐 눈물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한없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심청미는 고서준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여자였고, 나 송지윤은 고서준이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내일 뿐이니까.'
당시 고서준이 곤경에 처했을 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송지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위해 칼을 막아냈고, 그 대가로 얼굴에 큰 흉터를 남겼다.
칼이 자신의 얼굴을 가르는 순간에도, 송지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 후, 고서준은 그녀와 결혼해 평생 책임 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그때의 고서준은 첫사랑이 유학을 떠난 탓에 우울해져서 매일 술로 슬픔을 달래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 3년 동안, 송지윤은 순종적인 고 사모님 역할을 연기하며 그가 돌아오기를,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기를 기다렸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기를 바랐다.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그는 송지윤에게 임신할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 고서준은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공개적으로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고, 송지윤은 그제야 그의 마음에 다른 여자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송지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은 무딘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안겼다.
송지윤은 그제야 비로소 이혼을 결심했다.
그녀가 일호 공관 별장에 돌아왔을 때, 가사도우미인 주 이모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사모님, 사모님은 점점 더 예의가 없어지는 것 같네요. 외출하신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돌아오시는 거에요?"
주 이모는 비록 고서준의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였지만, 고서준의 유모였던 그녀는 자신의 신분이 일반 도우미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송지윤도 주 이모가 자신에게 이토록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고서준이 묵인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고서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송지윤은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썼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건방지군!" 송지윤은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주 이모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가사도우미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사모님인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주 이모는 얼굴을 감싸 쥐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모님, 사모님이 감히 저를 때렸어요? 저는 도련님의 유모예요!"
"나는 고서준의 아내예요." 송지윤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주 이모가 서준 씨의 유모라고 해도, 결국 고씨 가문에서 돈을 주고 고용한 가사도우미일 뿐이에요."
주 이모는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더 이상 말대꾸하지 못했다.
송지윤은 몸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갔다.
뒤에서는 주 이모의 불만이 들려왔다. "사모님이면 뭐해? 심 아가씨가 돌아왔으니, 사모님 자리는 곧 다른 사람의 것이 될 텐데."
그 말에 송지윤은 자리에 멈춰 섰다.
가정부조차 고서준의 마음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는데 오직 송지윤만이 3년 동안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상관없었다.
이제는 송지윤이 고서준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방으로 돌아온 송지윤은 옷장을 열고 미리 준비해 둔 작은 캐리어를 꺼냈다.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가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고작 이 정도였다.
그녀는 잠시 방을 둘러보았다.
이 방은 송지윤이 직접 꾸몄지만, 그녀의 물건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송지윤은 입술을 꼭 깨물며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번호를 찾아 눌렀다.
"여보세요, 나 집에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