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서주원은 내 세상의 태양이었다.
나는 그의 약혼녀로, 모든 파티에서 그의 팔짱을 끼고, 그의 이름과 함께 속삭여지는 존재였다.
그리고 단 5분 만에, 나는 길 건너편 차가운 타일 바닥에 서서 그가 내 쌍둥이 언니, 하은과 결혼하는 것을 지켜봤다.
우리가 혼인 신고를 미뤄야 했던 이유는 수천 가지였다.
그의 모든 신경을 쏟아야 하는 수조 원짜리 합병.
미룰 수 없는 적대적 인수.
절대 놓칠 수 없는 모나코 출장.
내가 직접 고른 드레스와 고심해서 선택한 꽃으로 꾸며질 우리의 진짜 결혼식은 늘 저 너머, 아른거리는 약속처럼 존재했다.
“내년 봄엔 꼭 하자, 하연아. 약속할게.”
그는 내 머리카락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는 무슨 말이든 믿게 만들었다.
“이 계약만 성사시키면, 내 모든 시간은 네 거야.”
나는 그를 믿었다.
바보 같았지만, 그를 사랑했기에 믿었다.
평생 굶주렸던 내 안의 작은 부분이 마침내 채워지고 있었다.
그의 눈 속 온기가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내 손을 잡는 방식이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카페의 먼지 쌓인 화분 뒤에 서서, 나는 그가 하은의 손가락에 심플한 금반지를 끼워주는 것을 지켜봤다.
5년 전, 식장에 그를 홀로 남겨두고 어떤 뮤지션과 함께 흥미진진한 삶을 좇아 도망쳤다가, 결국 망가지고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바로 그 하은이었다.
피곤한 얼굴의 공무원이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주원은 창밖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세상은 저 차가운 사무실 안에 있었다.
구청 문이 활짝 열리고, 그들이 강렬한 서울의 햇살 속으로 걸어 나왔다.
나와 똑같이 생긴 언니, 하은은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적어도 그게 그녀의 이야기였다.
췌장암 4기.
그렇게 무심하게 버렸던 남자와 마침내 결혼하는 것이 ‘죽기 전 소원’이라고 했다.
그녀는 혼인 신고서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새빨간 드레스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흰 종이는 마치 승리의 깃발 같았다.
그녀는 특정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그 깃발을 흔드는 듯했다.
그녀가 이겼다. 또다시.
“오, 주원 씨.”
그녀는 가짜 눈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울먹였다.
“정말 미안해요. 5년 전에 당신에게 했던 짓, 정말 미안해요.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그녀가 몸을 돌렸고, 처음으로 그녀의 눈, 아니 나의 눈이 길 건너편의 나와 마주쳤다.
느리고 의기양양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번졌다.
“그런데 말해봐요, 주원 씨.”
조용한 오후, 길 건너편까지 똑똑히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 애를 정말 사랑하긴 했어요? 아니면 그냥 나였던 건가요?”
시간이 멈췄다.
노란 택시들이 의미 없는 색의 흐름으로 번졌다.
도시의 소음은 희미한 웅웅거림으로 잦아들었다.
나는 주원을, 나의 주원을, 수많은 밤 나를 안아주고,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나를 봐주겠다고 맹세했던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1초. 2초. 10초. 영원 같은 시간.
폐가 타는 듯했다.
축축한 시멘트처럼 무겁고 짙은 차가운 공포가 내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나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텅 비어 있었다. 낯선 사람의 눈빛이었다.
“사랑했냐고?”
그는 하은의 질문을 되풀이했지만,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판결. 사형 선고.
“하연아.”
그의 입술에 오른 내 이름은 모욕이었다.
“이 사람은 하은이야.”
그랬다.
내가 5년 동안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던 진실.
나는 서하연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하은이 아닌 존재’였다.
대용품. 예비 부품. 똑같은 얼굴을 한 편리한 대체재.
하은의 거짓 눈물은 사라지고, 반짝이는 승리의 미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녀는 주원의 목에 팔을 감고 그에게 키스했다.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깊고 소유욕 넘치는 키스였다.
그도 그녀에게 화답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엉클어뜨리는 방식은, 수백만 번 내 머리카락을 만졌던 방식과 똑같았다.
세상이 기울었고,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나를 두 동강 낼 것 같은 울음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게 끝이구나.
전부 거짓말이었어.
검은색 세단이 끼익 소리를 내며 길가에 멈춰 섰다.
문이 활짝 열리고, 내 세 오빠들—도혁(Derrick), 도현(Blake), 도준(Kane)—이 미소를 머금은 채 쏟아져 나왔다.
“소식 듣자마자 달려왔어!”
맏오빠 도혁이 샴페인 병을 들어 보이며 외쳤다.
“축하해야지!”
그들은 하은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걱정과 애정으로 뒤섞여 시끄럽게 울렸다.
“하은아, 괜찮아?”
“침대에서 나와 있으면 어떡해!”
“얼른 집으로 가자.”
나의 오빠들.
지난 5년간 나의 보호자였던 사람들.
평생 갈망했던 따뜻함으로 마침내 나를 대해주기 시작했던 사람들.
그들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재회의 축제에 나타난 유령이었다.
나는 그들이 정복의 영웅인 하은을 차에 태우는 동안 떨면서 서 있었다.
주원은 그녀의 등을 보호하듯 감싸며 뒤따랐다.
차 문이 쾅 닫히고, 그들은 사라졌다.
그들은 나를 길가에 버려두고 떠났다.
한 번도 진정으로 내 것이었던 적 없는 삶의 잊혀진 액세서리처럼.
무릎에 힘이 풀렸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카페의 차가운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부딪힌 충격의 아픔은 멀고 중요하지 않은 통증이었다.
나는 하은보다 3분 늦게 태어났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
그녀는 밝고 활기차서 부모님, 오빠들, 만나는 모든 사람을 매료시켰다.
나는 조용하고 잊혀진 존재였다.
그녀는 칭찬을 받았고, 나는 물려받은 옷을 입었다.
그녀는 학교 연극의 주연이었고, 나는 합창단원이었다.
그녀는 JK 그룹의 후계자이자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서주원을 차지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내 마음은 조용히 아파하는 관객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도망쳤다.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식장에서 그를 버렸다.
우리 집안은 망신을 당했다.
JK 그룹은 격노했다.
그녀를 아꼈던 오빠들은 더 이상 하은이라는 동생은 없다고 맹세했다.
“이제 우리에겐 너 하나뿐이야, 하연아.”
도준 오빠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굳은 눈으로 말했다.
일주일 후, 술에 취해 망가진 주원이 내 오피스텔로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그는 내 얼굴을 감싸 쥐고 하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숨결에서는 위스키와 슬픔의 냄새가 진동했다.
“왜 날 떠났어, 하은아?”
그는 내 뺨과 턱선을, 우리의 턱선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내 눈을 보고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절망의 순간, 그는 내게 제안했다.
“나랑 결혼해 줘, 하연아.”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들에게 보여주자. 그녀에게 보여주자고.”
나는 그를 절실히 사랑했다.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대체품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가 나를, 오직 나만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기도했다.
그래서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지난 5년은 꿈만 같았다.
주원은 내게 애정을 쏟아부었다.
내 그림을 전시할 갤러리를 사주었다.
우리는 세계를 여행했다.
그는 나를 안고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오빠들, 도혁, 도현, 도준은 내가 항상 꿈꿔왔던 오빠들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나를 야구장에 데려가고, 투자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했다.
그들은 나를 보호해주고, 따뜻하고, 곁에 있어 주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진정으로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고 있다고.
그리고 2주 전, 하은이 돌아왔다.
그렇게, 꿈은 산산조각 났다.
사랑, 애정, 보호—그 모든 것이 고무줄처럼 그녀에게로 되돌아갔고, 내게는 그것이 있던 자리의 쓰라린 공허함만 남았다.
목이 메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통스럽고 부서진 소리는 이내 흐느낌으로 변했다.
뜨겁고 쓸모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개를 산책시키던 한 남자가 연민과 경계가 섞인 표정으로 나를 멀찍이 피해 갔다.
나는 대역이었다.
임시방편.
진열대의 상품처럼, 원래 제품이 재입고될 때까지 깨끗한 상태로 보관된 것.
더 이상은 안 돼.
그 생각은 압도적인 어둠 속의 불꽃이었다.
더 이상 대체품으로 살지 않겠어.
나는 뻣뻣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창문에서 몸을 떼었다.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웠지만 억지로 움직였다.
그들이 모두 함께 사는 저택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그림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쓸데없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닦아내자마자 새로운 눈물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안 해.”
나는 무심한 도시를 향해 속삭였다.
“당신들의 애정의 찌꺼기 따위 받지 않겠어. 당신들의 동정도 받지 않겠어.”
본능적이고 사무치는 고통이 가슴을 꿰뚫었다.
너무나 깊은 고통이라 물리적인 통증처럼 느껴졌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잠시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다시 몸을 바로 세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걷다가, 매끈한 검은색 택시 한 대가 내 옆에 섰다.
생각 없이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
기사가 물었다.
한 주소가 떠올랐다.
최상위 부유층의 자산을 전문으로 다루는 부동산 회사 본사.
할머니가 이용하셨던 곳이다.
할머니가 남겨주신, 손대지 않고 잊고 있던 신탁 자금이 문득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청담동 소더비 인터내셔널 리얼티요.”
쉰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40분 후, 나는 애버내시(Abernathy) 씨라는 남자 맞은편의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양복은 흠잡을 데 없었고, 그의 걱정은 진심이었지만 신중했다.
“서하연 씨.”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폐 속에서 떨렸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의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은 유령 같았다.
“섬을 사고 싶어요.”
놀랍도록 안정된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당신이 가진 것 중에 가장 외지고, 사람이 살지 않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