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날.
약혼자였던 강태준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말로 우리 인생이 시작될 거라고 약속하면서.
7년 전, 그는 내 부모님과 함께 내게 애원했다.
입양된 동생, 최세희가 저지른 죄를 대신 뒤집어써 달라고.
세희는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고, 사람을 치고 달아났다.
그들은 세희가 너무 연약해서 교도소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내게 선고된 7년은 그저 작은 희생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청담동의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태준의 전화가 울렸다.
세희가 또 ‘발작’을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웅장한 현관에 나를 혼자 내버려 둔 채, 그녀에게 달려갔다.
곧이어 집사가 다가와 내가 3층의 먼지 쌓인 창고 방에 머물러야 한다고 통보했다.
부모님의 명령이었다.
세희가 돌아왔을 때, 내 존재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언제나 세희가 우선이었다.
그 애 때문에 내 대학 장학금도 빼앗겼고, 그 애 때문에 내 인생의 7년도 잃었다.
나는 그들의 친딸이었지만, 그저 쓰고 버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날 밤, 비좁은 방에 홀로 누워 있을 때였다.
교도관 한 분이 몰래 쥐여준 싸구려 대포폰이 진동했다.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8년 전, 내가 지원했던 기밀 직책에 대한 채용 제안이었다.
새로운 신분과 즉각적인 해외 이주 패키지가 포함된 조건.
탈출구였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답장을 입력했다.
“수락하겠습니다.”
제1화
내가 교도소에 가게 된 날을 기억한다.
판사나 배심원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내 가족 때문이었다.
7년 전, 입양된 동생 최세희가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사람을 치고 현장에서 도망쳤다.
피해자는 살아남았지만, 죄는 중했다.
나를 낳아준 서씨 집안의 부모님이 나를 앉혀놓고 말했다.
친언니인 서지민도 그 자리에 있었다.
“세희는 몸이 약하잖니.”
엄마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감옥에 갈 순 없어. 그 애는 망가져 버릴 거야.”
“네가 대신 가주면 안 되겠니?”
아빠는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몇 년만 버티면 돼.”
나는 거절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그들은 나를 차에 쑤셔 넣었다.
그들의 차가 아니었다.
경찰차였다.
내 약혼자, 강태준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못 할 일이 없는 금융계의 거물이었다.
그가 모든 것을 꾸몄다.
그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눈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가득했다.
“연우야, 네가 나오면 바로 결혼할게.”
그가 약속했다.
“딱 7년만 참아줘. 이게 널 더 끔찍한 운명에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나는 그가 말하는 ‘더 끔찍한 운명’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배신감만을 이해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7년이 흘렀다.
묵직한 철문이 미끄러지듯 열리고, 나는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세상은 너무 밝고, 너무 시끄러웠다.
매끈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태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여전했다.
몸에 딱 맞는 명품 수트를 입은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잘생겼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었다.
그가 나를 안으려고 두 팔을 벌렸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팔을 떨어뜨렸다.
“연우야.”
나는 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교도소에서 지급한 싸구려 옷차림.
푸석한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
나는 깡마르고, 온몸이 날카로운 각과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7년간의 교도소 밥과 고된 노동이 나를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깎아놓았다.
반면 그는 방금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 대비가 물리적인 충격처럼 다가왔다.
“나 여기 왔어.”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했잖아. 결혼하자. 우리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
그 약속은 공허하게 들렸다.
아득한 과거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한때 가졌던 사랑, 교도소 초반 몇 년을 버티게 했던 절박한 희망은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들은 어디 있어?”
오랫동안 쓰지 않아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태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부모님하고… 지민이는… 못 왔어. 오늘 아침에 세희가 또 발작을 일으켜서. 급하게 병원으로 가셨어.”
역시.
최세희.
언제나 최세희였다.
부모님이 몇 년 전 입양한 연약하고 병약한 소녀.
그녀는 그들의 전부였다.
나는 그들의 친딸이었지만, 그저 뒷전이었고, 쓰고 버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나는 희망에 부풀어 나를 낳아준 서씨 집안을 찾았던 날을 기억했다.
고아였던 나는 드디어 내 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세희라는 완벽한 딸이 있었다.
나는 그저 불편한 진실일 뿐이었다.
태준은 나를 서씨 집안의 저택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곳은 내 집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한때 살았던 집일 뿐이었다.
내가 십 대 때부터 나를 봐왔던 집사는 경멸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3층 뒤편 방을 사용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뚝뚝 묻어났다.
“세희 아가씨가 돌아왔을 때 방해받길 원치 않으십니다.”
뒤편 방은 먼지 쌓이고 잊힌, 창고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들은 항상 나를 그곳에 두었다.
눈에 띄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곳에.
태준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부모님께 말씀드릴게, 연우야. 이건 아니야.”
하지만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어머님이셔.”
그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병원으로 가봐야겠어. 세희가 날 찾는대.”
그는 그녀를 선택했다.
또다시.
물론 그럴 줄 알았다.
그는 항상 그녀를 선택했다.
나는 깊은 공허함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봐.”
그가 떠났다.
나는 웅장한 현관에 홀로 서 있었다.
내 가족의 집 안의 유령처럼.
나는 뒷계단을 통해 나를 위해 마련된 작고 비좁은 방으로 올라갔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아래층 거실에서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그 애는 들여보냈나?”
엄마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네, 사모님. 창고 방에 있습니다.”
집사가 대답했다.
“좋아. 거기 있도록 해. 세희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니까. 태준이는 병원으로 가고 있고. 걔는 뭐가 중요한지 알지.”
돌처럼 굳었다고 생각했던 내 심장에 차갑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내 작은 방의 문을 닫고 뭉툭한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마음씨 좋은 교도관이 쥐여준 싸구려 대포폰이 진동했다.
이메일이었다.
제목은 ‘국립 연구소 - 기밀 직책 채용’이었다.
제안이었다.
기밀 미술품 복원 부서의 일자리.
내 인생을 도둑맞기 전인 8년 전에 지원했던 자리였다.
새로운 신분과 이주 패키지가 함께 제공되었다.
탈출구였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답장을 입력했다.
“수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