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유채리의 자작극에 놀아나 요트 위에서 나를 버리고 그녀를 구하러 갔을 때, 나는 마침내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이 괴물 같은 몰골의 은둔자와의 정략결혼에서 도망치게 해달라고 애원했을 때, 나는 탈출구를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걱정 마. 내가 그와 결혼할게.”
제1화
첫 번째 신호는 강태준의 몸을 관통하는 깊은 전율이었다.
나는 그의 등에 손을 얹은 채 움직임을 멈췄다.
“괜찮아? 열나는 거 아니야?”
그의 피부는 땀으로 얇게 젖어 있었지만 뜨겁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긴장해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우리는 5년을 만났고, 3년을 같이 살았다.
나는 그의 등의 모든 선, 숨소리의 모든 변화를 알았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괜찮아.”
그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 이번 주에 일이 좀 많았어.”
나는 그의 어깨 긴장을 풀어주려 애썼다. 손가락으로 뭉친 근육을 꾹꾹 눌렀다.
“물이라도 갖다 줄까? 아니면 아스피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 태산테크의 압박은 엄청났다.
그는 금융 스캔들의 잿더미 속에서 가문의 이름을 혼자 힘으로 부활시켰고, 무에서 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그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아니, 하진아.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그는 내 손길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그냥… 자게 해줘.”
그는 완전히 등을 돌리고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그가 만들어낸 거리는 침대 위 몇 센티미터보다 훨씬 더 넓게 느껴졌다.
나는 어둠 속에 누워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잠들기에는 너무 거친 숨소리였다.
뱃속에서 차가운 덩어리가 뭉쳤다.
뭔가 잘못됐다.
한 시간쯤 뒤,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클라이언트에게 보낼 그래픽 디자인 제안서를 마감해야 했고, 방 안의 불안한 공기 때문에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맨발로 거실로 나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소파에 앉았다.
막 일을 시작하려는데, 내가 가장 아끼는 펜을 침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살금살금 침실 문 쪽으로 다가간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침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거친 신음.
고통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다른 무언가였다.
지극히 사적인 소리.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나는 복도 그림자 속에 숨어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채리야.”
그 이름은 유령이었다.
우리가 이미 묻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속삭임.
유채리.
그의 전 여자친구.
그의 집안 재산이 증발하자마자 그를 버렸던 나르시시스트 사교계 명사.
그리고 지금, 태준이 다시 IT 거물이 되자 갑자기 우리 도시로 돌아와 가십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는 여자.
나는 몸을 떨며 앞으로 기울여,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엿보았다.
달빛이 침대 위로 한 줄기 비쳤다.
태준은 등을 대고 누워 눈을 감고 있었고, 한 손은 이불 아래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절박한 갈망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단 한 번도.
“채리야.”
그가 다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는 날것 그대로의, 고통스러운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발…”
그 소리가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것은 모독이었다.
그는 우리가 함께 쓰는 침대에서, 다른 여자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여자가 아니라, 바로 그녀를.
우리가 함께한 모든 세월 동안, 모든 은밀한 순간들 속에서, 그는 이런 열광적이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한 열정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나와 함께일 때 그는 따뜻하고,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완벽한 남자친구였다.
세심하고, 관대하고, 가문의 유산을 재건한 남자.
하지만 이건… 이건 집착이었다.
이건 병이었다.
그리고 나는 끔찍할 정도로 명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그의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안식처였다.
나는 그가 폭풍을 갈망하는 동안 딛고 서 있는 안정된 땅이었다.
나는 그의 대체품이었다.
뱃속의 차가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얼음 같았다.
속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내 인생이 무너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구경꾼이 된 것 같았다.
그때, 협탁 위에서 그의 휴대폰이 날카롭게 울리며 그 순간을 깨뜨렸다.
태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휴대폰을 더듬어 찾았고, 발신자 표시를 보자마자 잠기운이 가셨지만 즉시 경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우야? 무슨 일이야?”
최진우는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태준에게 감히 쓴소리를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너 미쳤냐?”
진우의 목소리는 전화기 너머로도 날카롭게 들렸다.
“방금 유채리 SNS 최신 글 봤어. 시내에 새로 생긴 클럽에서 네가 아직도 자기 손아귀에 있다고 떠들고 다니던데.”
태준은 몸을 일으켜 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진우가 쏘아붙였다.
“지난주 갈라쇼에서 유채리가 ‘넘어졌다’는 이유로 하진이 공개적으로 망신 주고 달려갔잖아. 요트 엔진에 불났을 때도 유채리 먼저 안전한지 확인하겠다고 하진이 혼자 내버려 뒀고. 근데 이제 이것까지? 태준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요트 화재.
그는 나에게 모두가 안전하게 내리는지 확인했을 뿐이라고 했다.
거짓말.
언제나 유채리가 문제였다.
“채리는… 복잡해.”
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걔한테 빚진 게 있어.”
“빚진 거 없어! 걔는 너한테 빚더미랑 상처만 남기고 떠났어. 하진이가 네 곁을 지켰잖아. 하진이가 네가 재기하는 걸 도왔다고. 그 애는 널 사랑해, 이 멍청아.”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숨을 참았다.
내 모든 미래가 그의 다음 말에 달려 있었다.
“알아.”
태준이 마침내 말했다.
그 두 단어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진이는 착해. 친절하고. 안정적이야.”
“하지만 넌 그 애를 사랑하지 않지.”
진우가 체념한 듯 평탄한 목소리로 단정했다.
“사랑할 수 없어.”
태준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인정했다.
“채리랑 있을 땐… 모든 것이었어. 그게 날 거의 파괴했지. 난 거기로 돌아갈 수 없어. 안 돌아갈 거야. 하진이는… 하진이는 안전해. 이게 더 나아.”
“그래서 그냥 이용하는 거라고? 그냥 안주하는 거라고? 그거 잔인한 거야, 태준아. 하진이는 네 빌어먹을 대체품 이상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
“그런 거 아니야.”
태준이 주장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정확히 그런 거야.”
진우가 말했다.
“너 그 애를 잃게 될 거야.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넌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고.”
“안 떠날 거야.”
태준이 오싹할 정도의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 애는 날 사랑하니까.”
그는 잠시 멈췄다.
“설령 떠난다고 해도, 그게 최선일지도 몰라. 난 그 애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
전화가 끊겼다.
나는 문에서 조용히, 기계적으로 물러났다.
거실로 비틀거리며 들어서자, 파노라마 창밖의 도시 불빛이 의미 없는 얼룩으로 번져 보였다.
내가 떠나도 그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안전하다고 했다.
안전한 항구라고.
하지만 항구는 배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억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내가 인생이라고 착각했던, 정교하게 구축된 거짓말의 급류.
우리의 첫 만남은 대학교 파티였다.
나는 조용한 그래픽 디자인과 학생이었고,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태준의 여동생인 강채원에게 끌려왔다.
공기는 값싼 맥주와 향수 냄새로 가득했다.
그때 그가 들어왔다.
강태준은 그냥 잘생긴 게 아니었다.
그는 전율 그 자체였다.
그가 방에 서 있는 방식은 다른 모든 것을 배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단순한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모든 시선을 끄는 타고난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즉시, 희망 없이 그에게 사로잡혔다.
“저게 내 오빠야.”
채원이 눈을 굴리며 속삭였다.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마. 싫어하니까.”
그는 캠퍼스의 전설이었다.
똑똑하고, 야심 차고, 악명 높을 정도로 냉담했다.
여자애들이 끊임없이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정중하지만 깨지지 않는 차가움으로 모두를 거절했다.
나는 그저 군중 속의 한 얼굴이었고, 멀리서 그를 동경하는 것에 만족하며, 내 스케치북은 그의 비밀스러운 초상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유채리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이었다.
시끄럽고, 화려하고, 그를 향한 추격에 끊임없이 공격적이었다.
그녀는 몇 달 동안 그를 쫓아다녔다.
활기차고, 요구가 많은 자연의 힘처럼.
모두가 충격에 빠졌지만, 난공불락의 왕자였던 태준은 마침내 굴복했다.
그는 그냥 그녀와 사귄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숭배했다.
나는 한번 그들이 중앙 광장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목청껏 터져 나오는 즐거운 웃음소리였다.
그는 그녀를 들어 올려, 마치 그녀가 그의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빙빙 돌렸다.
그는 그녀의 생일 선물로 차를 사주었고, 학자금 대출을 갚아주었으며, 심지어 술집에서 그녀를 모욕한 남자와 주먹다짐까지 했다.
그는 사랑에 홀린 남자였다.
나는 조용하고 타는 듯한 질투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태준의 집안 재산이 무너졌다.
그의 아버지가 대규모 횡령 스캔들에 연루되었고,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 소식이 터진 날, 유채리는 짐을 쌌다.
그녀는 그에게 “자선 사업 대상”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태준은 산산조각 났다.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그의 작은 아파트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채원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그를 확인해달라고, 음식을 가져다 달라고, 그저 그가 살아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몇 주 동안, 나는 그의 문밖에 식사를 두고 왔다.
문 밑으로 격려의 쪽지를 밀어 넣었다.
나는 그저… 머물렀다.
어느 날, 그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는 수척해 보였고, 눈은 퀭했다.
그는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여기 있었어?”
그가 오랫동안 쓰지 않아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는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내 수년간의 조용한 숭배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길고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너 나 좋아해, 하진아?”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가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며 옆으로 비켜섰다.
“사귀자. 어쩌면 네가 그녀를 잊게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그때조차도 내가 리바운드라는 것을, 그의 회복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사랑에 빠져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내 헌신이 그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조용하고 꾸준한 사랑이 결국 그녀의 시끄럽고 파괴적인 열정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5년 동안, 나는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가 세 가지 일을 하고, 그의 청구서를 지불하고, 그의 첫 작은 IT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것을 도우며 그를 지원했다.
태산테크가 마침내 성공했을 때, 그는 항상 그가 되어야 했던 남자가 되었다.
강력하고, 성공하고, 뛰어난 남자.
그는 나에게 선물 공세를 퍼부었고, 호화로운 휴가를 데려갔으며, 세상에 내가 그를 구한 여자라고 말했다.
그는 완벽한 남자친구였다.
그는 친절했다.
그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오빠였다.
그는 내 인생의 사랑이었다.
나는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그의 마음을 치유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치유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밑에서 여전히 곪고 있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유채리가 다시 부유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도시에 돌아온 순간, 그녀는 그 반창고를 바로 찢어버렸다.
그는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 데이트를 취소했다.
휴대폰을 보며 미소 짓고 있을 때, 나는 그녀의 이름이 화면에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가 있을 법한 파티에 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야근 회의 중이라고 말했다.
경매는 첫 번째 공개적인 균열이었다.
그는 자선 갈라에서 상을 받고 있었고, 경매를 위해 유채리와의 저녁 식사를 “기부”했다.
역겹고 뒤틀린 권력과 복수의 게임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통제권을 가진 사람,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가 무대 위에 서서 남자들이 그녀에게 입찰하는 것을 지켜볼 때, 그의 눈에는 승리감이 아니라 익숙하고 절박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여전히 집착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아파트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내 인생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견딜 수 없는 명확한 그림을 형성했다.
그의 모든 친절, 모든 관대함은 모두 연기였다.
그것은 그가 자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한 거짓말이었다.
그는 나를 상처 주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그는 나에게 잘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잘해준다”는 버전은 편안함과 안정성으로 지어진 감옥이었고, 그의 마음이 다른 여자에게 묶여 있는 동안 내가 떠나지 못하게 설계된 것이었다.
그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는 나라는 아이디어를 사랑했다.
그는 내가 쉽고, 충성스럽고, 유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랑했다.
나는 유령, 그가 진정으로 가질 수도, 진정으로 놓아줄 수도 없는 사람을 위한 대체품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어두운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내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너무 깊은 고통으로 커져 있어서 마치 가슴에 물리적으로 구멍을 뚫은 것 같았다.
5년 동안, 나는 내 사랑이 충분하다고 믿으며 그를 중심으로 내 인생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애초에 경쟁 상대도 아니었다.
나는 다리를 떨며 일어섰다.
욕실로 걸어가 거울 속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뒤돌아보는 여자는 바보였다.
사랑스럽고 헌신적인 바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뜨겁고 따가웠다.
그리고 또 한 방울.
나는 흐느끼지 않았다.
고통이 너무 깊어서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조용하고 내적인 비명이었다.
나는 더 이상 대체품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안전한 항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결심이 얼음덩어리처럼 내 영혼에 자리 잡았다.
나는 떠날 것이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카운터 위에서 내 휴대폰이 윙윙거렸다.
채원이 보낸 문자였다.
엄마한테 들었어. 권씨 집안에서 결혼 계약 마무리 짓고 있대. 나 그 괴물이랑 결혼해야 해. 하진아, 나 못해. 제발, 나 좀 도와줘.
정략결혼.
몇 년 전 태준의 집안과 강력한 구 재벌 권씨 가문 사이에 사업 동맹을 확보하기 위해 맺어진 거래였다.
채원은 그 후계자인 권도혁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10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은둔자로, 흉측한 몰골에 잔인하다는 소문이 파다한 남자였다.
채원은 음악가 남자친구와 절실히 사랑에 빠져 있었고, 겁에 질려 있었다.
내 심장의 폐허 속에서 미치고 무서운 아이디어가 번쩍였다.
그것은 탈출구였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내 손가락은 모든 것을 바꿀 메시지를 입력했다.
걱정 마, 채원아. 내가 처리할게. 넌 그와 결혼하지 않아도 돼.
내가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