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은 시동생의 임신한 내연녀의 발을 주무르는 것을 본 순간, 내 결혼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가족으로서의 도리’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그녀를 우리 집에 들였다. 그리고 서약보다 그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보란 듯이 펼쳐 보였다.
결정적인 배신은 그녀가 어머니의 유품인 값을 매길 수 없는 목걸이를 훔쳐 의도적으로 부쉈을 때 일어났다.
그 신성모독에 격분해 내가 그녀의 뺨을 때리자, 남편은 그녀를 감싸며 내 뺨을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그는 다른 가문 회장의 딸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신성한 불문율을 어겼다. 그것은 전쟁 선포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에 맹세코 그의 가문 전체에 피의 복수를 안겨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을 걸었다. 그의 왕국이 무너지는 시작이었다.
제1화
서아린 POV:
남편이 죽은 시동생의 임신한 내연녀의 발을 주무르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내 결혼 생활이 끝장났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인생도 곧 끝장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강태준의 최측근 이사이자 형제나 다름없었던 강태민이 묻힌 지 한 달이 지났다. 태강 그룹의 저택에는 무겁고 조용한 슬픔이 내려앉아 복도마다 유령처럼 떠다녔다. 강태준은 그 슬픔을 마치 제2의 피부처럼 두르고 있었다. 이미 차가운 그의 태도 위에 얼음 막이 한 겹 더 씌워진 듯했다. 그는 서울을 장악한 태강 그룹의 회장이었고, 그의 권력은 공포와 무자비한 일 처리 능력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다. 슬픔은 그를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하고, 더 멀게 만들었다.
그때 윤세라가 나타났다.
그녀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와 이제 막 불러오기 시작한 배를 하고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났다. 아이가 태민의 아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남은 그의 마지막 흔적이라고.
강태준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우리와 함께 살 것이라고 통보했을 뿐이다.
“가족으로서의 책임이야.”
그는 텅 빈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성안에 군림하는 왕처럼, 거대하고 차가운 거실에 서서 명령을 내렸다.
그 자리에 계셨던 나의 아버지, 서진혁 회장님은 의아하다는 듯 눈썹 한쪽을 치켜 올리셨다. 강태준이 눈치채지 못했거나, 혹은 애써 무시했을 미묘한 불쾌감의 표시였다. 나 자신의 항의는 목구멍에서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보호가 필요해, 아린아. 태강의 핏줄을 가졌어.”
나는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내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다.
“보호는 다른 문제예요, 태준 씨. 그녀를 여기에, 우리 집에 살게 하는 건…”
그가 내 말을 잘랐다.
“이건 가문의 화합을 위한 거야. 이 얘기는 끝났어.”
그렇게, 회장 부인으로서의 내 지위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나는 그저 장식품, 이 집의 일부일 뿐 파트너가 아니었다.
윤세라의 침입은 처음에는 미묘했다. 조용한 조종술의 대가였다. 그녀는 실크 가운을 입은 유령처럼, 항상 최적의 타이밍에 최악의 장소에 나타나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가 이사 온 지 며칠 후, 나는 목격하고 말았다. 강태준이 부부 욕실에서 나왔을 때였다. 수건 한 장을 허리에 아슬아슬하게 두른 채, 그의 검은 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대리석 바닥을 적셨다. 윤세라는 바로 그 앞에 서서, 보송보송한 새 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속삭였다.
불길한 예감이 나를 꿰뚫었다. 그것은 지극히 사적이고 가정적인 행동이었다. 아내의 역할이었다.
그다음은 악몽이었다.
그녀는 밤늦게 우리 침실 문을 두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아린 씨, 태준 씨. 제가… 제가 태민 씨 꿈을 꿔서요.”
강태준은 한마디 말도 없이 일어났다.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 어둠 속을 가로질러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는 몇 시간이고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차갑고 거대한 킹사이즈 침대에 홀로 남겨졌다.
서울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와 결혼한 4년 동안 내가 공들여 쌓아온 ‘착한 아내’라는 가면이 금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위해 내 그림을, 내 친구들을, 내 화려했던 빨강과 금색 옷들을 모두 포기했다. 완벽하고 얌전한 재벌가 며느리가 되기 위해. 나는 그를 위해 나 자신을 지웠다.
오늘 밤, 그 가면의 마지막 조각이 산산조각 났다.
주방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차가운 돌바닥을 맨발로 밟으며 소리 없이 걸어갔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심장이 멎었다.
윤세라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발은 강태준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발바닥 아치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의 크고 강한 손은 내가 몇 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부드러움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부드럽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궁극적인 배신이었다. 섹스도, 비밀스러운 연애도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 집에서, 이렇게 공개적이고 다정한 봉사 행위. 그것은 그녀가 내 자리를 차지했다는 선언이었다.
수치심은 뜨겁고 숨 막히는 물리적인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었고, 더 나아가 우리 가문, 서진 가문의 이름에 대한 깊은 모욕이었다.
나는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나 서재로 향했다. 비상용으로 보관해 둔 보안폰을 꺼냈다. 아버지의 개인 번호를 누르는 내 손가락이 떨렸다.
아버지는 첫 신호음에 전화를 받으셨다.
“아린이냐?”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작고 부서진 소리를 냈을 뿐이다.
“그놈이 무슨 짓을 했느냐?”
서진혁 회장님의 목소리는 갑자기 조용하고 치명적으로 차분해졌다. 그는 알고 계셨다. 당연히 알고 계셨다.
“그가 우리 가문에 깊은 수치를 안겼어요, 아버지.”
나는 재처럼 씁쓸한 단어들을 속삭였다.
“아버님의 힘이 필요해요. 절대적인 힘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자신의 서재에서, 이미 복수의 톱니바퀴를 굴리고 있을 사자굴의 왕, 아버지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서진 가문은 네 곁에 있다, 내 딸아. 언제나. 우리는 강태준의 합법을 가장한 사업체에 피의 복수를 시작할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차가운 결의가 나를 덮치며 수치심을 꺼뜨렸다. 나는 더 이상 착한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장미였고, 마침내 내 가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위층으로 올라가 손님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윤세라가 그곳에 있었다. 강태준의 흰색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있었다. 헐렁한 천이 그녀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그것은 또 다른 소유권 주장이었고, 내 인생의 또 다른 조각을 훔치려는 시도였다.
나는 그녀에게 똑바로 걸어가, 시선을 고정했다.
“벗어.”
내 목소리는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