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삶을 겪은 기은채는 이 세상에서 가장 흉포한 것은 맹수가 아니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낮으로 함께하며 살을 맞대고 지낸 반려자라 할지라도, 당신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옥으로 직접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남자는 검은색 가위를 쥐고 고산 철쭉 한 그루를 진지하게 다듬고 있었다.
손가락 뼈는 옥처럼 희고, 손끝은 깨끗하고 길쭉했다.
연회색의 편안한 실내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갑고 거리감 있는 기운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다름 아닌 소씨 가문의 이전 수장이다.
하지만 한 번의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게 되면서, 권력을 빼앗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모든 사람들은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씨 가문의 천재가 이젠 장애를 가진 폐인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창조한 상업 제국 역시 조카인 소예준에게 일찌감치 삼켜져 버렸다.
그러나 두 번의 삶을 겪은 기은채는 소예준을 번번이 편집증적으로 미치게 만들고, 극한의 긴장감으로 압박했던 사람이 바로 지금 꽃을 다듬고 있는 이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소예준의 작은 아버지, 소한결이다!
그가 비록 폐인이 되었을지라도, 여전히 소예준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큰 폭판이었다.
이번에 그녀는 바로 이 폭판을 터뜨릴 작정이다.
"소한결 씨." 그녀는 가볍게 허리를 굽히며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저를 들어오게 하셨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남자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고, 찰칵찰칵하는 가위 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희귀한 고산 철쭉으로, 지난달 국제 화훼 시장에서 20억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된 것이다.
기은채의 하얀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그녀는 겁먹지 않고 오히려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근맥이 괴사하여 다시 이을 수 없고, 매년 수억 원의 치료비를 써도 헛수고일 뿐이지만, 저는 할 수 있습니다."
기은채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전생에 그녀가 해외로 도피해 있던 시절, 근맥을 회복시킬 수 있는 특수 물질을 성공적으로 연구해 낸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경험이 있으니, 만약 그녀가 즉시 연구에 돌입한다면 시간상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 충분히 늦지 않을 터였다.
"제가 지금 당장 당신의 두 다리가 통각을 느끼게 할 수 있고, 반년이면 당신을 일어서게 할 수 있습니다."
등 뒤에서 일제히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경호원들은 눈앞의 여자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감히 이렇게 큰소리를 치다니, 한결 대감을 농락한 대가가 어떤지 알고나 있는 걸까?
이 말이 나오자, 남자는 마침내 움직임을 보였다.
그가 천천히 휠체어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칼로 조각한 듯 깊은 눈동자는, 단 한 번의 눈길만으로도 짙고 어두운 위압감을 뿜어내어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유, 그리고 조건."
뜻밖에도 남자는 그저 위험하게 눈을 가늘게 뜨더니, 뼛속까지 시린 차가운 단어 몇 개를 천천히 내뱉었다.
기은채는 그 말을 듣자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서둘러 하얀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웠다. "당연히 우리에게 공통의 적이 있기 때문이죠. 저는 그 사람과 죽을 때까지 싸울 것 입니다."
"다른 요구는 없습니다. 딱 1년, 이 1년 동안 제가 당신을 완벽하게 치료하고 소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테니, 당신은 저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고 제가 안심하고 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혼전 계약서를 써도 좋습니다. 1년 후 이혼할 것이며, 절대 질척거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재산도 단 한 푼도 필요없습니다."
그녀는 이것이 호랑이에게 가죽을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두 번의 삶에 걸친 원수를 갚기 위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길뿐이었다.
소예준은 극도로 이기적이고 무서운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신비한 뒷배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한결과 맞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를 흔들려면 반드시 의지할 곳이 있어야만 했다.
이 말이 나오자, 소한결 곁에 있던 경호원과 비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여자는 대담할 뿐만 아니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틀림없었다!
이건 그야말로 한결 대감의 지뢰밭 위에서 쉴 새 없이 펄쩍펄쩍 뛰고 있는 격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고, 그저 눈동자 깊은 곳에 미세한 파동이 일었을 뿐이었다.
"소예준과 결혼하기 싫어?"
"네!" 기은채는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이전에 소예준과 3년 동안 연애를 했고, 모든 사람들의 눈에 그녀는 이미 소예준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고 비춰져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말을 꺼내면 다른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가 이어갈 질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기다린 시간은 고작 몇 초뿐이었다.
남자는 손을 들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검은색 마스티프의 커다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좋아. 하지만 설마 입만 놀려서 나와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를 속인 사람은 어떤 최후인지 알고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여유롭게 휠체어 등받이에 기댔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무서울 정도로 매서웠다.
그의 말은 비록 맑고 침착했지만,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기은채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뒷마당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