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박한별은 침대에 누워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신혼 첫날밤, 그녀는 홀로 빈 방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목숨으로 협박해, 그녀를 강제로 배씨 가문 사생아와 결혼시켰다.
그 생각에 박한별의 눈에 분노와 실망이 스쳤다.
"아, 아파. 조금만 살살해 주면 안돼?" 그때, 문 밖에서 여자의 교태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남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조금만 참아. 곧 기분 좋아질 거야."
벌떡 몸을 일으킨 박한별은 방문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옆방은 바로 안방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다른 여자와 야릇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박한별은 침대에서 내려와 물컵을 손에 들고 안방으로 향했다.
비록 핍박을 못 이겨서 한 정략 결혼이긴 했지만, 그녀는 이런 더러운 일까지 참아 줄 생각이 없었다.
안방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남자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흰색 셔츠의 단추는 전부 열려 있었는데, 탄탄한 가슴 근육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그는 무기력하고 방탕한 모습이었다.
남자의 품에 안겨있던 요염한 여자가 도발하듯 박한별을 쳐다봤다.
배지혁은 박한별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입 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웃었다.
"무슨 일이야? 너도 같이 즐기려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별은 물컵에 담긴 물을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 "뻔뻔한 새끼!"
물 방울이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려 그의 셔츠를 적셨다. 화가 난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앉은 여자에게 말했다. "먼저 나가 있어."
여자는 아쉬운 듯 교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배 도련님..."
"꺼져!"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겁에 질린 여자는 빠르게 방을 나섰다.
박한별은 그제야 아버지 박민준이 왜 그녀의 여동생을 배씨 가문에 시집 보내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알고 보니 배지혁은 늑대 같은 남자였던 것이다.
박한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박민준은 그녀의 어머니를 버린 후, 그녀까지 외국에 버렸고 그녀가 죽든 살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홀로 생활한 10여 년 동안, 그녀는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몰래 익혔다
박씨 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역전시킬 능력이 없었던 박민준은 사치스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박한별을 떠올렸고, 그녀를 국내로 불러들여 불 구덩이 속에 밀어 넣었다.
만약 실종된 어머니의 행방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에 박씨 그룹을 파산시켰을 것이고, 박민준의 지시를 따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박한별은 방을 나서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배지혁이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잡고 품에 끌어 안았다.
"놔! 이게 무슨 짓이야?!" 박한별은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 신혼 아내가 이렇게 성깔이 있는 줄 몰랐네? 내 흥을 깨뜨리고 도망가려고?"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박한별의 귀를 간지럽혔다.
순간, 박한별은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박한별은 구역질이 났다. "만지지 마!"
배지혁은 박한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왜 피하는 거야? 너, 이걸 원한거 아니었어?"
박한별은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오해야, 하도 시끄러워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참지 못했을 뿐이야."
그녀의 거부에 배지혁은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 그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만지지 말라고? 네 부모가 널 나한테 팔아 넘겼다는 걸 잊지마. 내가 원하면 넌 언제든지 얌전히 내 침대에 누워야 해."
더 이상 그녀와 시덥잖은 말다툼을 하기 싫었던 배지혁은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더니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목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맞추려 했다.
박한별은 등골이 오싹해 났다. '이 자식, 소문대로 변태였어!'
'바람둥이일 뿐만 아니라 변태적인 욕망까지 가진 놈이야!'
"잠깐만!" 박한별은 그의 손을 피하며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배지혁, 그 전에 너와 거래를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