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혁, 마지막으로 묻지. 아내와 첫사랑 중 한 명만 살릴 수 있어. 누구를 선택할래?"
해변의 낡은 부두, 납치범의 위협에 고수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임시영은 가련하고 연약해 보였다.
그녀는 고수혁 앞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수혁아, 나는 상관없어. 김유나 씨를 선택해. 김유나 씨는 네 아내잖아. 너만 행복하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반면, 놈들 손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김유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녀와 임시영은 동시에 납치 되었다. 납치범은 매일 같이 고수혁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3일 전, 고수혁은 임시영을 선택했다. 결과 놈들은 김유나의 손톱을 전부 뽑아 버렸다.
2일 전, 고수혁은 역시 임시영을 선택했다. 결과 놈들은 김유나의 얼굴을 처참하게 망가뜨렸다.
1일 전, 고수혁은 또다시 임시영을 선택했다. 결과 놈들은 김유나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김유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10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를 바라보며 속으로 빌었다. 그가 5년 간의 부부의 정을 떠올려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그러나 고수혁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임시영! 임시영을 선택하겠어! 당장 풀어 줘!"
김유나가 입을 벌렸다. 연이은 고문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녀는 목이 완전히 쉬어 버린 상태였다. "고수혁... 왜..."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야 말로 고수혁의 아내인데, 그런데 그는 왜, 나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
고수혁이 그녀를 흘끗 바라 봤다. 싸늘한 눈빛 속엔 혐오가 가득했다.
"왜냐고? 다 네가 시영이를 질투한 탓이야!"
"지난 2년 동안, 너는 임시영을 해치려고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어. 이번 납치도 어쩌면 네가 꾸민 자작극일지도 모르지!"
"너 목숨을 걸기 좋아하잖아. 목숨으로 시연이한테 빚을 갚는다고 생각해."
김유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
그러나 고수혁은 그녀의 변명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조심스럽게 임시영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고수혁의 품에 안긴 임시영은 애처롭게 흐느꼈다.
그러나 고수혁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그녀는 김유나를 향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입모양으로 뭐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김유나, 너는 또 졌어!'
김유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 모든 것이 임시영이 꾸민 일이었다!
'안돼…'
그녀의 목에서는 부서질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고수혁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수혁은 그녀를 돌아보며 냉혹하게 말했다.
연민은커녕, 오로지 혐오만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했지? 난 시영이를 선택했어. 뭘 기다려?"
김유나가 바다에 던져지던 그 순간, 그녀는 부두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섞인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수혁아, 너는 나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어… 김유나 씨가 네 아내잖아. 만약 김유나 씨가 정말 죽는다면... 나는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낄 거야…"
고수혁은 끝까지 뒤들 돌아 보지 않았다. 그는 품에 안긴 여자를 부드럽게 달랬다.
"김유나가 너한테 진 빚을 갚는다고 생각해. 정말 죽는다고 해도... 자업자득이야."
차가운 바닷물에 완전히 잠긴 순간, 그녀의 마음 속의 증오는 극에 달했다.
할아버지, 세 오빠, 그녀는 그들과 가족관계를 끊는 것도 감수하고 고수혁과 결혼했다.
그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꿈도 포기했고 꽃다운 청춘을 전부 그에게 바쳤다.
생사의 갈림길에 올라선 그녀의 머릿속엔 단 한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그 개 같은 놈들에게 복수 할거야!'
"김유나! 언제까지 죽은 척할 거야?!"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귓가에서 울렸다.
김유나는 눈을 번쩍 뜨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차가운 바닷물도, 질식할 것 같은 절망도 없었다. 코끝에는 익숙한 우디 계열 향수 냄새만 맴돌 뿐이었다.
이내 고수혁이 앞에 나타났고 화를 내며 말했다. "김유나, 네가 임시영을 질투한다는 건 알아. 임시영이 귀국한 이후, 너는 걔를 괴롭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하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악독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 임시영의 음식에 독을 넣다니!"
김유나는 자리에 얼어붙었다.
'음식?'
'독?'
'이 장면… 이 대화…'
그녀는 2년 전으로 회귀했다!
그것도 임시영이 처음으로 자작극을 벌여 본인의 음식에 독을 넣은 그 날로 회귀한 것이다!